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수정 Mar 01. 2019

모퉁이에 숨어 나를 기다리는 환희

인생이 우리에게 주는 보상

3월 1일, 휴일 같지 않은 공휴일. 삼일절 백주년 기념행사로 도시는 분주했고, 일찌감치 일과를 시작한 나는 오전 일을 마치고 다음 미팅 시간까지 3시간의 여유가 있어 점심과 커피를 해결할 만한 곳을 찾고 있었다. 


인테리어가 잘 된 브런치카페 앞을 지나가다가 생각보다 저렴한 가격에 크림슾이 곁들여진 버거식 핫도그 메뉴가 있기에 들어가 주문을 했다. 그러나 평일 점심메뉴였기에 주문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다시 나갈까 잠시 고민하다가 다른 메뉴를 골랐다. 


*** 오픈 샌드위치와 커피를 주문하니 13,500원. 3시간 정도 있어야 하니 맨 구석의 자리에 앉았다. 잠시 후 커피가 나오고, 생각보다 더 많은 시간이 흐른 후 샌드위치가 나왔다. 그런데 내 앞에 놓인 샌드위치는...





기대 이상이었다. 한 폭의 그림을 만난듯한 느낌. 


삶의 모퉁이에 숨어 있다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순간에 갑자기 나타나 나를 감동케 하는 것들.

작고 사소하고 생경한 아름다움들.


비쥬얼도 좋지만 맛도 기대 이상이었던 오픈 샌드위치




그때도 그랬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상황에서 예상치 못한 모습의 현실과 마주치고

지금까지 느꼈던 모든 부정적 감정이 보상받는 반전의 순간




벨기에에서 네덜란드 국경을 넘어가는 기차는

때아닌 폭설로 

칙칙폭폭의 리듬을 포기한 채 치이익치익 포오옥 포옥으로 움직였고

예상보다 늦은 시간에 도착한 암스테르담 중앙역 앞은

온통 발끝에 힘을 주어 걷지 않으면 어깨에 맨 배낭 때문에 뒤로 넘어갈 만큼 미끄러운 얼굴로 날 맞이했다.


구글맵에 의지해 찾아가야 했던 호텔은 예상보다 너무 먼 거리에 있었다. 예상을 빗나간 것은 거리뿐만이 아니었다. 숙박 앱으로 보았던 호텔의 전경은 마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같은 느낌이었거늘, 막상 눈앞에 서있는 호텔은  작 았 다. 너무 작았다. 


 

숙박 앱에서 본 암스테르담의 에스테 레야 호텔 전경




어깨는 무너질 것 같았고, 지칠 대로 지친 나는 호텔의 전경에 실망했지만 어쩔 방법이 없었다. 


'일단 오늘 밤만 지내면 되니 내일 맑은 정신으로 다음 일을 수습하자'


머리와 어깨, 가방 위에 살포시 앉은 눈들을 털어내고 운동화도 몇 번 털어낸 후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호텔의 내부는 상상 이상으로 우아하고 아름다웠다. 작지만 아름다운 여배우를 만난 듯, 그 단단한 카리스마가 나를 둘러쌌다. 그러나 그런 느낌을 즐길 여유도 없이 얼른 객실 키를 받아 들고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엘리베이터를 타자 긴 한숨이 나왔다. 안도의 한숨이자 실망의 한숨이기도 한...



객실 호수를 확인하려 손에 들린 객실 키를 들여다보니 조금 생소한 느낌이 들었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호텔은 명함 크기의 카드키를 주었는데, 내 손에 들린 키는 말 그대로 열쇠, 진짜 열쇠였다. 체크인을 하느라 정신이 없어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는데, 로비의 분위기와 정말 잘 어울리는 열쇠였다.

묵직한 타슬과 객실 호수가 적힌 원형 펜던트가 함께 달린 열쇠는 마치 시간을 거슬러 신비한 곳으로 나를 데려가려는 듯 내 손 안에서 빛나고 있었다. 




네델란드에 왔으니 하이네켄을 마셔야지



210호. 좁고 천장이 낮은 복도를 지나 도착한 210호의 문 앞, 열쇠를 꽂아 객실 문을 열려고 하니 하루 종일 겪었던 많은 일들이 주르륵 흘러갔다. 너무 힘들었던 하루, 얼른 들어가서 눕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문을 열자 내 눈앞에 벌어진 광경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상상했던 것보다 천만 배나 더 아름다운 방! 

마치 이 방에 오기 위해 일주일이란 시간을 여행했던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만큼, 모든 힘든 과정이 보상받는 마법 같은 순간이 내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나란히 놓인 작은 창문 밖으로 눈 내리는 암스테르담의 야경을 보며 또 한 번 삶의 모퉁이를 돌아 만난 이 아름다운 순간을 만끽하려고 애쓰다 스르르 잠이 들었다.


내리던 눈이 언제 그쳤는지 모르지만 날이 밝자 또 한 번 환희의 순간과 마주했으니, 밤엔 잘 보이지 않던 창밖 풍경이다.




내 방에서 아이폰으로 찍은 풍경, 지금도 내 폰의 배경화면으로 사용하고 있는 이 모습은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 기억 속의 환희다. 


<계속>

매거진의 이전글 당신의 나무를 잊지 말아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