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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정 Mar 06. 2019

내 삶에 다시 돌아온 봄

인생의 신비

운전대를 잡고 있던 친구가 어이없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와~ 벌써 개나리가 폈네?"라고 감탄하듯 뱉은 나의 말에 "헐... 질 때가 다 되었구먼..."이라고 말하면서 였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4월이 중반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사실 그 해에 개나리를 본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무채색의 겨울을 환송하는 황금 나팔 같은 개나리가 지천이었을 텐데 뭐에 눈이 팔려 그 황금 잔치를 못 본 걸까?


미술 전공자로 나름 색채에 민감하다고 자부했건만 게다가 꿈도 총 천연색으로 꾸는 내가 어떻게 계절의 색이 바뀌는 것도 모르고 있었던 거지? 당황스러웠다.


친구는 "너 요즘 많이 바빴구나?"라는 말로 그 상황을 정리했지만, 나는 내심 그 해의 봄을 통째로 잃어버린 것 같아 속상했다.


봄이 오면 내가 보내는 문자 메시지는 "찬란한 봄날을 즐기세요."라는 말로 끝나곤 했는데, 정작 나는 그 찬란한 봄을 즐기지도, 느끼지도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흐르는 시간을 쫓아 가느라 고개를 들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 이후 다시는 봄을 놓치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연일 미세먼지 경보를 알리는 스마트 폰 알람 때문에 하루에 한두 번 마음이 덜컹하는데 내일은 7일 연속 미세먼지 경보가 발령될 예정이란다. 목이 칼칼하고 머리가 띵한 것이 미세먼지 때문이야 하며 인터넷 포털 사이트를 열자 어제는 없었던 연둣빛 개구리가 뛰어다닌다.


경칩(驚蟄)이다. 1년의 24절기 중 세 번째 절기로 동지로부터 74일이 지난날이다. 초목의 싹이 돋아나고 동면하던 벌레들도 땅속에서 나오며 기지개를 켜는 그야말로 만물이 소생하기 시작하는 시기다.


조만간 나무들은 한겨울 내내 견뎌온 자신을 축하하듯 연두색 샤워를 할 것이고, 성격 급한 벚나무들은 어린아이 볼때기처럼 토실토실한 분홍 꽃봉오리를 수줍게 내밀 거다. 검고 탁한 외투를 벗어던진 사람들은 자신이 입을 수 있는 가장 화려한 색의 옷을 고르느라 고민할 것이고, 몇 번의 봄비가 내리면 시인들은 아름답거나 혹은 슬픈 시를 쓸 것이다.


오늘 아침, 외투를 입다가 다시 벗어 털 달린 모자를 떼어냈다. 다시는 봄을 놓치지 않으리라 다짐한 순간부터 나는 봄이 올 기미가 보이면 등을 움츠리고 발톱을 세운 고양이처럼 내 눈앞에 나타날 봄을 주시한다. 이제 곧 개나리가 필 것이고 개나리가 지고 나면 벚꽃이 필 것이다. 그 사이 목련이 피었다 질 것이고, 산수유는 소리 소문 없이 벚꽃에게 여왕자리를 넘겨줄 것이다.


한 달 남짓. 우리가 완연한 봄을 즐길 수 있는 시간. 그렇다. 봄은 짧아서 아름답다. 그 짧은 시간 속을 충실하게 채우는 찰나의 환희를 우리는 발견해야 한다. 벚꽃이 봉우리를 터뜨리는 그 순간, 봄바람에 꽃 비 내리는 그 순간, 개나리 진 그 가지에 여리디 여린 아기 잎사귀 펴지는 순간, 앉았던 나비가 떠나며 얹았던 가지가 흔들리는 순간. 수많은 찰나의 환희를 준비하고 있는 우리의 삶은 딱 우리가 찾는 만큼만 풍요로움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이번 봄에 놓치지 않을 것은 자연의 찰나뿐이 아니다.

개나리가 질 때 되어서야 봄을 알았듯, 내 삶의 봄을 놓치고 나서야 후회했던 나.

그러나 놓쳤던 그 봄이 다시 돌아왔든 내 삶의 봄 또한 다시 돌아온다는 인생의 신비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다시 봄


나의 삶도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다시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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