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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정 May 08. 2019

김영감님의 꽃 배달

다짜고짜 단편 소설

"김영감님! 오늘은 좀 빠르게 움직이셔야 겠는데요"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꽃 집 주인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높았다. 어버이 날, 스승의 날이 몰려있는 이 번주는 꽃 집 뿐 아니라 지하철 택배를 소일거리로 하고 있는 김한배에게도 대목이었다. 조그만 상사를 다니다 명예퇴직을 하고 어느새 60대 후반을 향하고 있는 김한배는 퇴직한 다른 친구가 아파트 경비자리를 소개해 주었지만 시간에 얽매인다는 이유로 고사했다. 그러나 솔직하게 말하자면 사람들을 대하는 일에 자신이 없어서였다.  


적은 금액이지만 매달 연금이 나오고있고, 퇴직금으로 받은 돈도 까먹지 않고 통장에 남겨 두었다. 그저 자신이 아직은 이 사회에 쓸모있는 사람임을 스스로에게 증명하고 싶어 일거리를 찾아봤지만 이 사회에 차고 넘치는 퇴직한 평범한 베이비부머가 딱히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만한 일은 없어 보였다. 아직은 건강에 이상이 없었고, 지하철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기에 선택한 일이 지하철 택배였다. 


지하철 역을 오르내리는 에스컬레이터가 고장만 아니라면, 지하철 역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배달지가 아니라면 지하철 택배일은 그나마 김한배가 할 수 있는 최적의 일처럼 보였다. 


다른 날 보다 일찍 호출이 왔다. 배달할 물건은 꽃 바구니. 분홍, 빨강 카네이션이 다른 종류의 꽃들과 어우러진 꽤 묵직한 바구니다. 그러고보니 오늘은 어버이 날. 점잖은 꽃 집 주인이 서두르는걸 보니 주문이 많긴 많은 모양이다. 


꽃 바구니를 들고 배달지인 국회도서관으로 향했다. 다행히 9호선 국회의사당 역에서 내리면 걸어서 3분도 안 걸리는 곳이라고 했다. 요즘은 핸드폰이 있어 배달받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장소를 확인하곤 하지만 김한배는 왠만하면 배달목적지를 사전에 꼼꼼히 확인하고 전화 없이 찾아간다. 물론 배달목적지를 확인하는 일도 와이파이가 되는 지역안에서만 한다. 배달 초반에 멋모르고 전화로 길을 물어 찾아가다가 전화요금 폭탄을 맞은적이 있은후론 나름대로의 방법을 찾은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환승이 문제였다. 당산에서 9호선을 갈아타기 위해 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9호선 플랫폼으로 가서 마침 들어오는 열차에 탑승을 했다. 당산에서 한 정거장 다음이 국회의사당이니 헤깔릴일도 없다. 느긋한 마음으로 다음역에서 내렸는데, 국회의사당 역이 아니라 여의도역이었다. 뭐에 홀린 기분이었다. 분명 한 정거장이 지난 다음에 내렸는데... 어쩔 수 없이 건너편 플랫폼으로가 거꾸로 가는 열차를 탔다. 한 정거장을 가서 내리니 국회의사당역이다. 이상해도 한참 이상하다. 혹시 치매인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다시 스크린도어 위에 있는 앞, 뒤 역의 이름을 살펴본다. 그 때 프랫폼으로 열차 한 대가 빠르게 진입을하더니 정차하지 않고 지나가버린다. 급행열차였다. 9호선은 급행과 일반열차가 한 대씩 번갈아가며 운행하고 국회의사당역은 일반열차만 정차를 하는 역이었다. 맨 처음 탄 열차는 급행열차였다. 드디어 의문이 풀린 김한배는 무거운 꽃 바구니를 들고 오르락 내리락 하며 땀을 뺀것이 억울하기 보다는 자신이 치매가 아니라는 점에 안도했다. 


국회 안에 있는 도서관에 도착하니 바구니를 전달할 사람이 있는 사무실로 들어갈 수 없었다. 도서관의 사무실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카드로 된 1일 열람권을 발급받아야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어쩌는 수 없이 전화를 걸었다. 젊은 여자가 곧 내려오겠단다. 잠시 꽃 바구니를 내려놓고 대기 의자에 앉아 있으니 목에 파란 줄의 이름표를 건 30대 후반쯤의 여자가 내려온다. 꽃 바구니를 보고 주저없이 다가오더니 수고하셨어요라는 인사말을 건네곤 바구니를 들더니 누군가에게 전화를 건다. 


"자기야! 지금 바구니 받았어. 이따가 6시에 이 앞으로와서 나 태우고 바로 어머니한테 가자. 그래! 이따봐"


김 한배는 가벼워진 손으로 다시 지하철역으로 향한다. 그러나 아까 우왕좌왕했던것 때문일까? 이제서야 피로감이 몰려온다. 오늘 저녁에 아들 내외가 온다고 하던데 오늘은 일을 그만해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는데 다시 호출이다. 


"김영감님! 배달 마치셨어요? 좀 늦으셨네요...얼른 와서 한 군데 더 배달좀 하셔야겠는데요?"


"아..저, 제가 오늘은 좀 힘이 들어서... 들어가봐야 할걸...."


"아유! 그러시면 안되요! 저희 사정도 봐주셔야죠. 한 군데만 더 가주세요. 아셨죠?"


김한배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전화는 끊어지고, 아직 이른 시간이니 한 군데만 더 다녀오자고 생각한다. 


몇일 전 아들이 전화를 걸어왔다. 오랜 시간 해외 주재원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아들은 그동안 바빠서 못 찾아뵜노라며 이번 어버이날엔 꼭 찾아오겠다고 했다. 


바쁘면 안 와도 된다. 괜히 어버이 날 이런거 신경쓰지 마라. 니들 잘 살면 된다. 라고 말했지만 아들 못보고 산지 벌썬 5년이 다 되어간다. 한국에 돌아온지도 6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얼굴도 못봤다. 아들이 주재원으로 가 있는 동안 며느리는 그 곳에서 일을 했다고 했다. 컴퓨터로 하는 일이라 외국에 나가서도 할 수 있다고, 둘이 같이 버니 좀 수월하지 않겠나싶어 며느리가 고맙다가도 아들 녀석이 밥은 잘 먹고 다니나 하는 걱정도 했지만 지들 삶이니 알아서 하겠지 싶었다. 


이런 저런 생각끝에 도착한 꽃 집에서 아까와는 다른 분위기의 꽃 바구니를 김한배의 손에 쥐어준다. 


"김 영감님! 이건 좀 비싼 꽃 바구니예요. 좋은 꽃으로 골라서 바구니 만들어 달라고 깐깐하게 주문한 손님이니 배달도 신경써서 좀 해주세요"


김한배는 아까보다 더 묵직한 바구니를 들고 전철을 탔다. 꽃들 사이에 카드가 꽂혀 있다. 


"아버님! 어버이날 축하드립니다." 


김한배는 지하철역에 들어서자 와이파이 신호가 꽉 차있는 폰으로 위치검색을 했다. 자주 가던 동네다. 역세권 아파트인데다 요즘 들어 땅값이 부쩍 오른 곳이다. 부잣집 사람들이라 꽃다발도 비싼걸로 시키는가보네. 라고 생각하며 지하철 승강장으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탄다.


퇴근 시간이 다가오자 지하철에 탄 승객들에 손에는 자그마한 카네이션 화분과 작은 꽃다발들이 들려있다. 다들 가족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는구나. 젊은 사람들, 오늘도 수고들 많이 했네....


배달지 아파트에 들어섰다. 다행히 정문에서 가까운 동이다. 단지가 깨끗하고 조경이 잘 되어있다. 

201동 705호. 5호와 6호 라인의 입구에 방범문이 있다. 마침 안에서 나오는 사람이 있어 엘리베이터까지 바로 갈 수 있다. 7층 5호에 도착해 벨을 누른다. 


"누구세요?" 안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꽃 배달 왔습니다."


문은 열리지 않고


"여보! 어서 준비해! 꽃다발 온 것 같아. 얼른 갔다 와야지, 아버님 기다리시면 어떻게해? 좀 있으면 차 막혀!"


문앞으로 걸어나오는 소리가 들리고 문이 열린다.


"생각보다 빨리 오셨네요! 좀 더 걸릴 줄 알았는데... 배달비는 얼마 드리면...."


문이 열리고 지갑에서 돈을 꺼내던 여자는 김한배의 얼굴을 보더니 한참을 그대로 서있다.


"아...아버님?"


5-6초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김한배는 왜 나를 아버님이라고 부르는걸까? 의아했다. 그런데 그러고 보니 많이 낯이 익은 얼굴이다. 


"아버님이 어떻게....?"


김한배는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난감했다. 아니 난감했다기 보다는 머리가 생각하는 일을 멈춘듯 했다.


그리고 겨우 꺼낸 한 마디


"아! 그럼... 지금.... 내가 나한테 배달을 한건가보구나...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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