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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정 Apr 13. 2020

냄새는 기억에 저장된다.

1일 1글 시즌4 [episode 15]

"아름답다는 말은 어떤 감각을 이용해 평가하는 말인 것 같아?"


"아무래도 시각 아닐까? 눈으로 보았을 때 아름답다고 말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잖아?"


"그렇다면 음악은? 드뷔시의 달빛 같은 곡도 아름답다고 표현할 수 있잖아"


"그러네, 듣는 것도 아름답다고 표현할 수 있겠네, 그런데 음악을 들으면서 단순히 멜로디만을 아름답다고 평가하기보다는 그 음악이 우리의 시각적인 감각을 자극해서 나도 모르게 아름다운 그림을 함께 떠올려 아름답다고 말하는것 아닐까? 음악은 단지 시각화된 이미지를 떠오르게 하는 도화선 같은 작용을 하는거고..."


"글쎄... 하긴 나도 드뷔시의 달빛을 들을 때면 잔잔한 바다 위에 떠 있는 커다란 달과 그 달 빛을 온전히 품에안아 무한개의 빛으로 반사시키는 물결이 떠올라. 멜로디도 아름답지만 더불어 떠오르는 심상도 아름다워"


"그렇다면 음악은 우리의 공감각을 자극하는 거네!"


"혹시 후각적인 아름다움을 느껴본 적 있어?"


"후각적인 아름다움이라..."


"오래전 일을 마치고 녹초가 되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지하철을 내려서 마을버스로 환승을 했고, 당시 우리 집이 저 북한산 아래쪽이어서 숲길 같은 도로를 지나가야 했어. 늦봄이었을 거야. 창문을 활짝 연 마을버스가 덜컹거리며 달릴 때마다 버스 안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제법 시원했거든. 그 날, 난 심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번아웃 상태였고, 마을버스 하차벨 아래에 머리를 기대고 흔들리는 버스의 리듬에 맞춰 머리를 쿵쿵 부딪히며 하루를 곱씹고 있었어."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늘 그렇지"


"그때 버스가 우회전을 했고 왼쪽 좌석에 앉아있던 내 몸은 창틀 쪽으로 더욱 쏠리고 그 순간 창밖에서 아주 향기로운 냄새가 버스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버스 안이 그 향기로 가득 차고 말았어. 아주 짧은 시간이었는데 토토로에 나오는 고양이 버스가 하늘을 막 날기 시작하는 그 순간과 같은 느낌이 드는 거야. 보드랍고 폭신한 고양이 버스에 타고 시간여행을 하는 느낌.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동화적이고도 아름다운 비현실의 순간을 가져온 것은 다름 아닌 라일락의 향기였어."


"라일락 향기가 토토로의 고양이 버스를 소환했구나" 


언제 한 번 타볼 수 있으려나...네코 버스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내게 왜 라일락 향기와 토토로가 연관되었을까? 아무튼 어디선가 봤는데 냄새는 기억에 함께 저장된데. 그래서 어떤 특별한 냄새들이 그 냄새와 함께 저장된 기억을 꺼낸다는 거지. 정말 그렇잖아? 특정한 냄새들이 소환하는 사람이나 장소 아니면 사건들."


"그래서 그런 노래도 있잖아.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샴푸 향이 느껴진 거야~ 스쳐 지나간 건가 뒤돌아보지만 그냥 사람들만 보이는 거야~"


"오늘도 길을 걷다가 라일락 향기가 훅 밀려와서 잠깐 멈추어 주변을 둘러봤어. 어디에 라일락 나무가 있는 건가 하고. 막 스쳐지나 온 옆골목에 라일락 한 그루가 이제 막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어. 뒷걸음질 쳐서 골목 입구에 서서 한참을 바라보았지. 나의 수많은 봄 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더라고. 내 스무 살의 봄 밤도, 내 서른 살의 봄 밤도, 내 마흔의 어느 봄 밤도, 그리고 오십이 지난 지금의 봄 밤도 모두 향기롭고 사랑스러워. 며칠 전 까지만 해도 노란 개나리와 하얀 벚꽃의 찬란함에 찬사를 보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봄을 완성하는 것은 라일락의 향기인 것 같아. 눈으로 보았던 아름다움보다 향기로 느낀 아름다움이 훨씬 더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는 걸 보면 아름답다는 단어는 후각과 더 깊은 관련이 있는 단어일지도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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