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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정 Apr 17. 2020

술이 달다는 것은...

1일 1글 시즌 4 [episode 19]

요즘 핫한 꼬막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었다. 벌교에서 직송되는 꼬막을 삶아서 갖은양념을 하고 그것을 밥 위에 얹어먹는 메뉴다. 다양한 해산물을 기본으로 한 다른 메뉴들도 모두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함께 한 다섯 명이 각기 다른 메뉴를 시키고 파전 하나를 함께 나누어 먹기로 했다. 


개인의 식사가 다 나오고 난 후 커다란 접시에 담겨 나온 파전은 일단 크기로 우리를 압도했고 맛으로 두 번 압도했다. 파전이 나오자 자연스럽게 막걸리?라는 멘트가 나왔고 운전을 해야 할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반색했다.


녹색 막걸리병의 뚜껑 부분을 잡고 휘휘 몇 번 돌려주어 술의 맑은 부분과 가라앉은 부분을 적절히 섞어준다. 뚜껑을 열기 전 두 엄지 손가락을 모아 병의 목 부분을 꾹꾹 눌러준다. 뚜껑을 열었을 때 뿜어져 나올 수 있는 탄산을 조금 가라앉혀 주기 위해서다.


밥공기보다 조금 작은 검은색 멜라민 잔에 막걸리를 따른다. 잔 속의 막걸리는 보름달처럼 하얗고 탐스런 얼굴이다. 탁자 위에 네 개의 달이 둥실 떠올랐다. 잔을 들어 부딪힌다. 둔탁하지만 경쾌한 소리가 추임새를 넣는다.


달달하고 시큼한 막걸리가 혀를 감아 돌고 목구멍을 타고 흘러내려간다. '크~' 자동반사의 감탄사가 나온다. 그 소리와 함께 기억이 플래시백으로 재생된다.


어릴 적 같은 동네 살았던 친구가 아버지 심부름으로 막걸리를 사 가지고 오다가 호기심에 홀짝홀짝 마셔버려 정작 집에 와선 아버지 대신 인사불성이 되어버렸던 일, 대학교 축제 때 냉면그릇에 막걸리를 따라 주던 선배의 얼굴, 도시로 개발되기 전의 백마와 화사랑 그리고 첫사랑의 고백.


낮술은 우리를 현재에서 각자의 과거로 텔레포트시켰고 어느새 서로의 과거까지 공유하는 사이로 만들었다.


감탄을 자아낼 만큼 맛있었던 겉바속촉 파전과 달콤한 막걸리! 우리는 막걸리를 마시려고 파전을 먹었던 것인지 파전을 먹으려고 막걸리를 마시는 것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매우 만족스러운 점심 식사였다.


박새로이의 아버지 말처럼 술이 달다는 것은 오늘이 인상적이었다는 말일까? 아니면 막걸리와 파전이 맛있어서 오늘이 인상적이었을까? 


뭐든 어떠리,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 적당한 알코올, 이야기와 감정의 공유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가 아닐까. 막걸리와 파전만으로 행복해진 오늘,  행복의 조건은 이렇게 단순한 것들임을 또 한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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