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수정 Jun 18. 2020

사크라 콘베르사치오네

1일 1글 시즌4 [episode 81]

https://brunch.co.kr/@insightraveler/253


성 세바스찬에 대한 이야기를 했으니 그가 등장하는 작품 하나를 더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탈리아 베니스의 아카데미아 미술관에 지오바니 벨리니의 ‘산 지오베 제단화’가 있습니다. 높이가 471cm가 되는 대작입니다. 성 세바스찬에 대한 정보 없이 이 그림을 만나게 된다면 여러 가지 의아함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등장인물이 11명이나 되는데 모두가 자기 할 일에만 빠져 있는 듯 보이기 때문이죠. 가운데 푸른 옷을 걸치고 아기를 안고 있는 도상은 성모 마리아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습니다만 왼쪽의 한 노인은 옷을 벗고 있고, 오른쪽의 청년은 옷을 벗은 것도 모자라 몸에 화살까지 박혀 있으니 말입니다. 이런 형식의 그림을 이탈리아어로 사크라 콘베르사치오네(sacra conversazione) 즉, 성스러운 대화라고 합니다. 성모자상을 나타내는 주제 중 하나로 성인들과 천사가 옥좌에 앉은 성모와 아기 예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표현을 말합니다. 15세기 이후 이탈리아 회화에서 많이 다루어졌습니다. 

  이 제단화에 등장하는 인물은 왼쪽부터 성 프란치스코, 세례자 요한, 성 욥(giobbe) 그리고 앉아서 음악을 연주하는 세 명의 천사, 그 옆으로 성 도미니크, 성 세바스찬, 툴루즈(toulouse)의 주교였던 성 루드비코입니다. 1493년에 완공된 산 지오베교회는 베네치아에 퍼진 흑사병의 형벌로부터 구원을 열망한 시민들이 욥 성인에게 봉헌한 교회입니다. 산 지오베교회는 청빈 정신을 강조하는 프란치스코회 소속의 교회로 가난하거나 병든 자들을 위한 사역을 하는 수도회였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지오베교회의 제단화에는 욥 성인과 프란체스코 성인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흑사병으로 혼란스러운 시기에 욥 성인에게 교회가 봉헌된 이유는 종교적인 상식이 있어야 이해가 가능한 부분입니다. 욥 성인은 죄가 없었지만 온 몸에 부스럼이 나는 병에 걸렸고 가족을 잃는 등 온갖 불행을 겪습니다. 그럼에도 굳건한 믿음으로 결국은 축복을 받았기 때문에 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수호성인이 됩니다. 전염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은 성 세바스찬에게 했듯이 성 욥에게도 특별한 기도를 드릴 수밖에 없었겠지요. 그림 속 흰 수염에 나체로 서있는 인물이 바로 욥입니다. 대부분 욥 성인은 그림에서 옷을 입지 않은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그림의 가장 왼쪽에 있는 프란체스코 성인은 관람자를 향해 손과 발, 그리고 가슴에 난 성흔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흔이란 자연발생적으로 나타나는 상처를 말하는데, 특히 예수가 십자가 처형 시 못 박혔던 두 손과 두 발, 그리고 가슴 아래쪽에 나타납니다. 프란체스코 성인은 성흔을 최초로 경험한 인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회화에서 프란치스코 성인은 손과 발에 나타난 성흔과 청빈한 수도사의 복장으로 표현됩니다. 욥 성인과 프란치스코 성인 사이에 머리만 보이는 인물은 세례자 요한으로 십자가 지팡이와 거친 머리카락, 동물의 털가죽 옷을 입은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성 모자의 오른편에 삭발한 머리에 책을 들고 서 있는 인물은 성 도미니크입니다. 프란치스코회와 버금가는 강력한 전통의 수도회를 창설한 그는 형을 전염병으로 잃은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그 고통을 이해하는 성인의 자격으로, 성 세바스찬은 재난에서 살아남은 믿음과 힘의 상징으로 그림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성 루드비코는 왕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세속적인 것을 거부하고 23살의 나이로 사제서품을 받고 가난한 수도자로 툴루즈의 주교직을 수행했습니다. 자신의 재산을 모두 나누어준 후 청빈하게 살며 존경받았던 인물입니다. 


  마지막으로 중앙 하단에 악기를 연주하는 천사의 모습은 이 제단화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부분입니다. 성스러운 대화라고 불리는 이 형식은 아이러니하게도 등장하는 인물들 간의 실제적인 대화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림 속 대화는 영적으로 처리되기 때문에 오히려 거대한 침묵 속에서 성스러움이 극대화됩니다. 그러나 벨리니는 그 사이에 악기를 연주하는 천사를 등장시킴으로 관람자로 하여금 청각적 영역으로 감상을 확대시켜줍니다. 또한 그 연주가 이 그림을 향해 기도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한 벨리니의 의도였을 거라는 추측은 500년이 지난 후대의 관람자들마저도 그의 그림에 눈은 물론 귀까지 기울이게 하는 매력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종교화를 감상한다는 것은 성경과 교리에 관한 지식이 없이는 감상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종교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거나 기독교가 자신의 종교가 아닌 경우라면 흥미 자체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리스·로마 신화와 더불어 기독교는 유럽을 지배하고 있는 정신적인 뿌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동양도 대부분 서구적인 문화의 영향을 받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영화나 문학 등 우리가 즐기는 다양한 문화 콘텐츠들의 기저에 깔린 기본 가치를 이해하는 차원으로 종교화를 감상한다면 더 넓고 깊은 사유의 기회를 제공해 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림 속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