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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정 Jun 20. 2020

풍경화 감상하는 법 (1)

1일 1글 시즌4  [episode  83]

친구와 함께 여행을 다녀온 후에 각자 찍은 사진을 공유한 적이 있었습니다. 분명 같은 곳을 다녀왔는데 사진은 마치 다른 곳을 여행하고 온 것 같았습니다. 분명 같은 장소에서 같이 감탄하며 찍은 사진인데 사진의 구도가 다른 것은 물론 서로 감탄한 포인트도 달랐습니다. 어쩜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풍경을 기록한다는 것은 중립적이거나 객관적일 수 없는 다분히 주관적인 행위이기 때문이죠. 자연이 빚어내는 그림들-시시각각 변하며 흘러가는 구름,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나뭇잎의 다양한 색상들, 햇빛을 반사하는 호수의 잔물결 등을 볼 때 우리는 저절로 그 경이로움을 찬양합니다. 그리고 그 순간을 사진이라는 평면에 가두어 놓음으로 찰나에 느꼈던 감정을 지연시키고자 합니다. 감수성이 예민한 화가들은 어땠을까요? 


풍경화는 종교화에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성경의 어떤 장면은 그 주제를 묘사하는데 풍경이 중요한 필수 요소가 되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담고 있는 이야기의 본질적 이야기를 제외한 나머지는 화가의 상상력에 의해 비유적으로 표현됩니다. 그림이 제작되는 목적은 그것이 교회의 권위 확보가 되었든, 신도들의 신앙심 고취나 개인의 회개와 희생, 봉헌이 되었든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관람자들의 마음을 움직여야 했기 때문입니다. 


1459년 안드레아 만테냐의 <감람산에서 기도하는 그리스도>는 열 두 제자와의 최후의 만찬 이후 체포되기 직전 감람산에서 기도하는 장면을 그린 작품입니다. 멀리 가롯 유다를 앞세우고 예수를 체포하러 오는 군사들이 보이는데 제자들은 피곤에 지쳐 잠들어 있습니다. 애절한 표정으로 하늘을 향해 기도하는 예수를 위로하는 것은 하늘에서 내려오고 있는 천사뿐 입니다. 만약 이 장면이 감람산의 황량한 풍경을 묘사하는 부분이 없이 그려졌다면 그 느낌은 얼마나 달라졌을까요? 


감람산의 그리스도, 안드레아 만테냐(Andrea Mantegna), 1459, 유채와 템페라,  투르 미술관(프랑스)



르네상스 시대에 그려진 종교화의 배경은 실제 성경의 무대인 중동 지방이 아닌 유럽 대륙의 지형적 특성이 드러나게 그려졌습니다. 관람자들이 살고 있는 그곳에서 일어난 일인 것 같은 느낌을 주기 위한 의도였습니다. 시간이 흘러 종교화의 배경이 아닌 독자적인 풍경화가 그려지는데, 이 또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창조한 신을 향해 영광을 드러내는 행동이었습니다. 


19세기로 접어들면서 자연이 가진 본연의 모습을 관찰하고 표현함으로 관람자에게 자연의 아름다움과 강한 힘을 전달하고자 하는 화가들이 생겨납니다. 풍경화의 거장으로 불리는 존 컨스터블은 영국의 화가로 동시대의 영국 화가 윌리엄 터너와 함께 풍경화의 권위를 높인 화가로 불립니다. 


컨스터블은 24살이 되던 해 왕립 미술 아카데미 부설학교에 입학하고 스물일곱 살에 왕립 미술 아카데미에서 첫 전시회를 열지만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합니다. 당시 유행하던 풍경화는 성서와 신화를 이상화시켜 그린 장엄한 느낌의 그림이었는데 그에 비해 컨스터블의 그림은 자신의 고향인 영국의 남동부 지역을 있는 그대로 그린 풍경화였기에 상대적으로 너무나도 평범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풍경화의 핵심은 ‘날씨’라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컨스터블은 하늘의 구름을 면밀하게 연구하며 많은 연작을 그렸는데, 그의 그림이 '풍경화의 교과서'로 불리는 데는 구름의 표현이 풍경화의 묘사에 기여한 바가 매우 크기 때문입니다. 당시 컨스터블이 구름 묘사는 루크 하워드라는 과학자의 구름 연구 때문이었습니다. 루크 하워드는 기상학의 역사를 바꾼 과학자로 10살부터 평생 동안 날씨 관찰 일기를 썼다고 합니다. 처음엔 글로 구름을 관찰하다가 이후엔 그림으로 기록합니다. 그리고 구름에 이름을 붙입니다. 서른 살의 하워드가 구분한 일곱 가지 구름 분류방식 중 다섯 가지는 현재 세계 기상기구 WMO에서 하워드가 붙인 이름 그대로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구름연구Study of clouds, John Constable, 왼쪽부터 1821년, 1821년, 1822년



  하워드의 연구에 자극받은 컨스터블은 <구름 연구 Study of clouds>로 100여 점이 넘는 구름 그림을 그렸습니다. 


컨스터블보다 60~70년 뒤에나 태어난 인상파 화가들은 튜브 물감의 발명으로 야외에서 스케치 이외에 채색을 하는 것이 수월했지만 컨스터블이 살던 시절엔 그것이 여의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컨스터블은 인상주의 이전에 야외 제작을 한 최초의 화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존 컨스터블은 유채로 스케치를 하고 스케치의 뒷면에 날짜와 시간, 장소, 구름 모양, 색깔, 움직임, 대기의 상태까지 꼼꼼하게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작업실로 돌아와 일련의 유채 스케치들을 토대로 작업했습니다. 그가 큰 사이즈의 회화를 그리기 위한 준비 과정에서 그린 스케치들은 현재 그 자체로 중요한 가치가 있는 작품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습니다. 


                                                                           

The low lighthouse and beacon hill, 1820, 33 x 50.8 cm  /  yarmouth pier, 1822, 30.5 x 50.8 cm



세밀한 묘사로 자신이 본 것을 가능한 충실하게 그려낸 컨스터블의 <건초 수레>는 1821년에 영국에서 전시됐지만 주목받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3년 후 프랑스의 화상 존 애로스미스가 이 그림을 구입해 파리에 열린 살롱에 출품했는데, 이때 금상을 받으며 비로소 컨스터블은 프랑스 화단의 주목을 받게 됩니다. 비평가들은 그의 그림을 보고 진짜 풍경의 한 장면을 뚝 떼어내 전시장으로 옮겨 놓은 것 같은 그림이라고 찬사를 보냈습니다. 당시 프랑스는 루소의 영향으로 자연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에 컨스터블의 그림을 풍경화의 선구자적 방법론으로 받아들였던 것이었습니다. 


당시 컨스터블의 경쟁자였던 윌리엄 터너의 그림을 의식한 듯 상상에 근거한 풍경화를 경멸하며 직접 체험한 자연을 성실하게 그리는 것이 화가의 진정한 의무라고 생각한 컨스터블은 밀레로 대표되는 바르비종파와 이후 인상주의의 발전을 견인한 화가였습니다. 평생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의 시골 풍경을 주제로 어느 누구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구름을 연구하며 시시각각 변화하는 빛과 대기를 캔버스 위에 옮겨 놓으려 노력했던 컨스터블. 그의 그림들을 보고 있노라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의 봉준호 감독이 했던 수상소감이 떠오릅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다”


<건초 수레> John Constable, 1821, Medium oil on canvas, 130.2×185.4cm, London National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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