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1글 시즌4 [episode 86]
더위가 찾아오면서 주말이 더 힘들어졌다. 가뜩이나 '쉰다'는 것에 대해 젬병인 나는 늘 주말이 되면 여유와 잉여 사이에서 당연함과 자괴감 사이의 널을 뛴다. 고로 쉬어도 피곤하고 불안하다. 그렇다고 딱히 뭘 하는것도 아니면서 마음만 부산스럽다.
하루 종일 집에 있으니 삼시 세끼 해 먹는 것도 귀찮아서 늦은 아침과 이른 저녁 두 끼로 대충 때우자고 가족끼리 협의를 했다. 그런데도 싱크대에는 늘 설거지 할 그릇이 쌓여있다. 먹으려고 준비하는 과정으로부터 시작해 먹고 나서 치우는 과정이 두 번 연속되는 사이에 싱크대가 비어있을 틈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아!! 왜 설거지는 끝이 없는 거야?"라고 외친다. 질문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아들은 가끔 손수 나서 설거지를 하기도 하고 요리를 하기도 한다.
급속한 체력 저하로 어쩔 수 없이 헬스클럽으로 떠밀린 나는 운동에도 젬병이지만 이제는 더 이상 스스로와 타협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에 열심히 운동을 간다. 말 그대로 가는 것에만 열심이다. 그런데 이 헬스클럽이 운동복과 수건 값을 따로 책정해 받으면서도 운동복과 수건의 상태가 그야말로 거적때기 수준이다. 운동복이야 그렇다 치고 수건은 도저히 쓸 수 없어 집에서 수건을 챙겨간다. 매일매일 나오는 빨래 양이 부쩍 늘어났다.
그래서 빨래를 하고, 널고, 거두며 "아! 빨래는 왜 끝이 없는 거야?"라고 외친다. 이 또한 질문이 아니란 걸 알기에 주변에선 별다른 반응이 없다.
그러던 지난 일요일 유튜브에서 흘러나온 소리에 귀가 번쩍 뜨였다.
"헤엄치지 않으면 가라앉습니다."
어느 채널, 누구의 멘트였는지 모르겠지만 순간 빠직하고 전기가 올랐다. 수면 위를 유영하는 백조도 열심히 발을 놀리고 있고, 물속에 사는 물고기도 끊임없이 등, 가슴, 꼬리지느러미를 젓는다. 그 행동을 멈추면 죽는 거다. 고귀하고 거창한 행동이 아닌, 아무 의미 없는 그런 행동이 백조를, 물고기를 살게 하는 거다.
밥을 짓고, 그릇을 닦고, 옷을 빨아 널고 거두고, 청소를 하고, 일터로 나가는 이 반복되는 일들 너머 거창하고 이상적이며 행복한 일들이 있을 거라 기대하지만 사실 삶의 본질은 하찮은 것 같은 이런 일들인 것이다. 이런 일들을 하지 않고서는 우리는 삶이라는 거대한 바다에 익사하고 마는 것이다.
잘 산다는 것은 어쩜 헤엄치는 것에 관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가라앉지 않는다는 것은 가장 사소한 일인 것 같지만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 당연함을 외면하고 거창한 것을 찾느라 헤엄치는 것을 잊고 살았던 몇 년 사이 나는 가라앉고 있었던 것이다.
"헤엄치지 않으면 가라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