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지지 않는 사랑

소중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

by 이수정


오랜 전 이야기입니다. 아들이 5살 정도였으니 13년 전 이야기겠네요.



기업체 직원들을 대상으로 강의하는 일이 주업이다 보니 시간의 활용은 자유로운 편이나 활동범위는 전국구였습니다. 당시만 해도 3층짜리 부모님의 연립주택 2층에 세를 들어 살았기에 자연스럽게 아이 키우는 일에 친정 엄마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제 아이가 첫 손주였기에 친정 엄마, 아빠는 당신들의 정성을 모두 쏟아부었고, 세심하나 유난스럽지 않은 양육 덕분에 아이는 온화하고 건강하게 자랐습니다.



그날도 지방 강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하이힐을 신고 3~4시간 서서 강의를 하는 일이 그리 녹록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기차 혹은 고속버스를 타고 다녀와야 하는 지방 강의라면 집에 돌아오는 모든 시간을 지배하는 것은 어서 빨리 구두를 벗어던지고 푹신한 침대에 눕고 싶다는 간절함이지요.



해가 떨어져 어둑어둑 해지고, 지하철역을 나와 골목으로 접어들자 30미터 앞에 우리 집이 보입니다.



"이 일병 조금만 더 힘을 내게! 고지가 저기야!"라고 중얼거리며 다다른 대문, 그리고 그 대문을 넘어 현관을 향해 가는데 문틈으로 들려오는 소리 "촤~촤~촤~촤~촤~"



압력밥솥의 추가 흔들리며 김이 나는 소리입니다. 일찍 온 남편이 앉혀놓은 거 겠지요. 아픈 발에 집중하느라 미처 배가 고픈 걸 느끼지 못했는데 그 순간 시장감이 밀려옵니다.



방 2칸짜리 작은 집. 지은 지 오래된 탓에 현관문이 살짝 내려앉아 문을 열 때마다 귀에 거슬리는 새시 마찰음이 납니다. 그렇지만 그 소리에 아들은 "엄마!"하며 쪼르르 달려 나와 천사 같은 얼굴로 저를 반깁니다.



모든 고통이 사라지는 순간! 강사 캐릭터로 전장에서 싸우다 체력, 정신력 게이지가 사망 직전까지 방전되었는데 갑자기 나타난 꼬마 마법사의 강력한 힐 한방으로 만피가 됩니다.



아이는 제 손을 잡아끌며 어린이 집에서 만들어온 작품을 들고 오늘의 커뮤니케이션을 시작하려 합니다.

너무 행복한 순간인데, 마법사의 힐링으로 에너지도 채워졌는데... 그 순간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눕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죠



"동동아(애칭)! 오늘 재미있었어? 엄마가 동동이 재미있는 이야기 지금 너무 듣고 싶은데, 엄마가 멀리 시골 갔다 오느라 너무 힘이 들었어. 그래서 30분만 쉬었다가 동동이랑 이야기하면 안 될까?"


그러자 아이는 여전히 웃음을 거두지 않은 채


"응! 엄마! 엄마 조금 쉬었다가 이야기 해두 돼. 엄마 많이 힘드니까~"


제법 어른 스런 말투입니다. 그래서 제가 다시 물었죠


"엄마 힘든 거 동동이도 알아? 어떻게 알아?"


그러자 아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마음은 이어져 있으니까!"



온몸을 지탱하던 뼈가 사르르 해체되고 뱃속에서부터 용암 덩어리 같은 것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더니 눈과 코가 찡해 옵니다. 그 순간 아이는 마법사가 아니라 저의 존재를 있게 한 전지전능한 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뱃속에서 나온 작은 아이, 세상을 4년밖에 살지 않은 그 아이가 그 순간엔 나를 온통 감싸는 거대한 존재가 되어 있었습니다.



나와 아이는 맨 처음 탯줄로 연결되어 있었겠지요. '너는 누가 뭐래도 내 아기야!', '엄마는 누가 뭐래도 내 엄마야!'라는 신호로 절대자가 묶어놓아 준 줄! 그렇게 열 달 동안 탯줄을 통해 엄마와 아기는 교감을 하고, 어느 순간 그런 줄 따윈 없어도 세상에 엄마와 아이의 관계로 당당하게 존재할 수 있는 순간, 아이는 태어납니다.



탯줄을 자르고 나면 이제 아이는 스스로 숨을 쉬어야 하고 스스로 먹어야 하고 또 스스로 걷고 그리고 스스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제가 전쟁터 같은 삶의 터전에서 치고받고 싸우며 살듯, 아이 또한 그런 삶을 살아야겠지요. 그러나 '보이지 않지만 이어져있다'는 것은 두 개의 지점을 전제하기에 아이의 고통을 위로하는 것 또한 나일것입니다.



이어진 우리의 마음처럼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들은 모두 보이지 않는 것들! 하마터면 잊고 살 뻔했을지도 모를 것들을 깨우치게 해 준 5살짜리 아이가 어느새 18살이 되었습니다.



아이가 중학교를 졸업하며 쓴 편지에 이런 문장이 있었습니다.



"한 번도 멈추지 않고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니 저는 그 감사함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그 사랑은 제가 멈추지 않아서가 아니라 멈추어지지 읺는 사랑이었으니까요!



아아! 아이가 자라 자신의 아이를 낳으면 알게 되겠죠. 세상에는 절대로 멈출 수 없는 사랑이 있다는 것을요.

우리의 마음이 이어져 있는 한 그 사랑은 영원히 존재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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