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경이는 사랑뿐 아니라 암을 통해서도 찾아왔다. 내게 암은 사랑의 다른 이름이었다.
통증이 쉽게 가라앉지 않던 밤이었다. 병실은 고요했고, 내 숨소리만 또렷했다. 처음에는 통증을 피하려 애써봤지만 결국 다시 아픈 자리로 되돌아왔다.
통증이 심해지자 저항할 힘도 사라져 갔다. 고통 속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하나 둘 사라질 때, 내게 남은 것은 단 하나, 더 이상 이 감각과 싸우지 않겠다는 선택이었다. 온몸에 힘을 빼고, 내 몸이 느끼는 감각 앞에 나는 조용히 항복했다.
저항을 내려놓으니 몸의 긴장도 조금씩 풀려갔다. 통증을 밀어내려 애쓰던 마음이 힘을 잃자, 그 자리에 남은 것은 숨의 드나듦이었다. 숨은 내가 쉬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이어지고 있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끼던 순간에도 숨은 나를 다시 나에게로 데려오는 길이 되어주었고, 그 사실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었다.
나는 내 몸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그저 바라보고 있다. 모든 힘이 빠져나간 자리에서도 의식만큼은 오히려 또렷했다. 그 고요함 속에서 나는 아픔을 바라보는 또 다른 나를 바라본다.
깊은 밤, 병실은 적막 속에 잠겨 있었고, 심장의 박동 소리는 그날따라 유난히도 크게 울렸다. 그 순간은 나와 심장, 오직 둘만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 같았다. 마치 내가 심장과 하나 되어 움직이는 듯했다. 항암 치료로 온몸이 힘든 동안에도, 이상하게도 정신은 점점 깨어나고 있다.
나는 가만히 손을 가슴 위에 올렸다. '내가 여기 있다'는 느낌이 분명했다. 심장의 온기가 손바닥을 타고 전해졌다. 살아 있음이 감각으로 만져졌다.
누군가가 나를 위해 진심으로 기도해 준다면 그것은 사랑일 것이다. 내 안의 심장은 내가 태어난 그 순간부터 한 번도 쉬지 않은 기도와도 같았다. 아프고 상처받을 때에도, 기쁨으로 가슴이 벅찰 때에도 심장은 늘 가장 먼저 반응했다. 내가 울기 전에 먼저 아팠고, 기쁠 땐 먼저 뛰었다. 나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심장은 내 삶의 맥박을 지켜왔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살아 숨 쉬는 생명, 그 숨결은 고요한 우주의 박동과 닮아 있었다. 심장은 모든 것이 돌아오는 중심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온전히 내 안에 흐르는 사랑과 생명의 힘이 물결처럼 잔잔히 퍼져 나가는 것을 느끼고 있다. 평생 느껴본 것 중 가장 확실한 존재감이었다.
사랑은 이미 내 안에 있었다. 한 번도 나를 떠난 적 없었고, 나는 진심으로 사랑받고 있었다. 비로소 살아 있음이 생각이 아닌 생생한 감각으로 내게 와닿았다. 이 아픔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에 대한 두려움은 멀어지고, 남은 것은 심장이 계속 뛰는 이 움직임뿐이었다. 나는 병이 아니라 온전한 생명을 경험하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각자의 자리에서 나를 살리고 있는 이 몸 위에 손을 살며시 얹고, 하나하나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건넨다. 사랑을 전할수록, 이상하게도 그 사랑을 가장 먼저 받고 있는 쪽은 나였다. 나는 나를 돌본다고 생각했으나, 사실 몸이 나를 돌보고 있었다. 마음 깊은 곳에서 "너는 단 한 번도 혼자였던 적이 없었어"라는 말이 울려 퍼지는 듯했다.
그 후 나는 깊은 명상에 들었다. 그 순간만큼은 통증과 아픔들도 희미해졌다. 명상 속에서 내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환하게 빛나는 것을 느꼈다. 그 빛은 너무나도 따뜻하고 눈부셔, 그 빛이 곧 나임을 그리고 우리 모두가 그 빛임을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그 속에선 외로운 나도, 뭔가 잘못된 나도 없었다. 애초에 ‘나’라고 할 만한 것도 없었다. 내가 가진 것, 내가 붙들고 있던 이름, 역할 그 모든 것이 그저 껍질에 불과했다.
오랜 시간 ‘나’라고 믿어왔던 경계가 천천히 녹아내렸다. 나는 아픔에 갇힌 작은 존재가 아니라, 커다란 생명과 연결되어 숨 쉬고 있음을 알았다.
혼자라는 감정은 사실은 가장 오랫동안 품어온 착각일지도 모른다. 가장 깊은 단절감을 느끼는 바로 그때, 나는 동시에 가장 깊은 연결 속에 있었다. 깊은 동굴에서 빛을 기다리고 있을 때 내 안의 빛은 단 한 번도 길을 잃은 적이 없었고, 홀로 웅크리고 있을 때조차도, 보이지 않는 실타래는 나와 세상을 촘촘히 이어 주고 있었다.
나는 삶이 얼마나 정교하고 섬세한 힘으로 나를 붙들고 있는지 본다. 통증은 마치 나를 살리기 위한 신호처럼 느껴졌다. 아픔이야말로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가장 직접적으로 알려주는 방식이었다.
숨을 쉬고, 통증을 느끼며, 그 와중에도 나의 안녕을 바라는 몸의 움직임. 이 모두가 사랑이 아니면 무엇일까.
그날 이후 나는 진짜 나를 잊고 있는 것 같은 순간마다 우주와 이어진 나를 떠올렸다.
연결된다는 것은 무언가를 더해 하나가 되는 일이 아니라 처음부터 하나였음을 다시 기억해 내는 일이다.
나는 그저 사랑과 하나가 되어 있었다. 그 순간 내 안에 고요히 차오른 것은, 설명할 수 없는 깊은 감동과 감사였다.
나는 아픔조차 감사하다 여겼다. 부러 감사하려 하지 않아도 고마움이 저절로 피어났다.
그때부터 몸은 내가 살아 있음을 기쁨과 평온이라는 신호로 더 자주 보내기 시작했다. 이 느낌들은 꽤 오래 지속되었고, 그때마다 세상이 한층 환하고 선명하게 보였다.
내 안에서 사랑이 커질수록 타인에 대한 감사도 자연스레 함께 샘솟았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지 새삼 깨닫는 순간들이 많아졌다.
어느 날은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조차 찬란하게 빛나보여, 이유 없이 미소가 흘러나왔고, 병원 곳곳에서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진심을 담아 조용히 건강과 사랑, 축복을 빌었다. 어느새 내 가슴은 사랑으로 가득 차 넘치기도 했고, 그 마음을 전하고 싶다는 순수한 열망이 차오르기도 했다.
그날 이후 사랑을 대하는 나의 마음도 조금씩 더 깊고 단단해졌다. 예전에는 사랑이 늘 밖에서 오는 것이라 믿었다. 누군가의 따뜻한 시선이나 다정한 말, 손길을 통해 사랑을 느꼈다. 그래서 관계가 더 깊어지길 바랐고, 끝나버린 관계의 뒤에는 오랫동안 그리움을 품곤 했다. 이별이 힘들었던 이유도 그 때문이다. 기억이 지워지면, 사랑 속에서 빛나던 내 모습마저 사라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 기억들을 그리움이라는 이름으로 오래 붙잡고 있었다.
하지만 심장 소리와 하나가 되는 순간 나는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사랑은 누군가에게서 받아야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내 안에 조용히 흐르고 있던 생의 힘이었다는 것을.
내가 이미 사랑이었음을 알게 되었을 때, 그 사랑은 어떤 의도도 없이 자연스럽게 나를 채우고 주변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어떤 사랑은 딱 떨어지는 이름 없이도 서로를 조용히 밝혀주었던 마음으로 남는다. 함께 웃었던 순간들, 따스한 눈 맞춤 속에서 존재와 사랑은 관계의 이름보다 언제나 조금 더 오래, 더 깊이 새겨진다. 사랑은 소유되지 않아도, 함께 머물지 않아도, 존재와 존재 사이에서 이미 살아 있다. 그리고 그 사랑은 가슴에서 자라 삶이 되어, 나를 다시 나에게로 데려오는 길이 된다.
사랑이 깊어질수록, 소유하려는 마음에서 멀어지고 자유에 가까워졌다. 인연을 놓아준다는 것은 그 사랑을 더 넓은 자리로 기도하듯 보내는 일이 되었다.
어쩌면 사랑은 잘 보내기 위해 하는 것이리라.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축복과 사랑과 감사를 담아, 당신의 안녕을 바란다.
세상은, 고통을 건넬 때, 그보다 더 큰 깨달음과 사랑을 함께 보내는지도 모른다.
감당하기 어려운 무게를 마주할 때, 삶은 다른 방식의 손길로 우리를 붙들어 주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