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병이 아니라 그저 삶을 사랑하는 중입니다.

by 청빛
나는 하루를 버티는 사람이 아니라, 온전히 느끼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나의 항암치료는 4주마다 한 번씩 찾아왔다. 대학병원에서 사흘을 보내며 항암제를 맞고 나면, 남은 3주는 요양병원에서 지냈다.

캐리어에 텀블러와 담요, 세면도구, 여벌 옷을 차곡차곡 챙겨 넣었다. 가볍게 읽을 책 몇 권, 오랫동안 써 온 일기장, 손에 익은 연필 한 자루도 빠뜨리지 않았다. 짐을 싼다는 건, 내게 꼭 필요한 삶의 모습만을 남기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짐을 꾸리다 보니 이번에는 부디 더 아프지 않았으면, 하루를 버티는 일이 너무 힘들지 않았으면, 그리고 내게 꼭 필요한 온기가 이 시간 안에 함께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피어올랐다. 어느새 그 바람은 조용한 기도처럼 마음속에 자리를 잡았다.

투병을 시작한 후, 하루는 ‘살아가는 시간’이기보다는 ‘견뎌내야 하는 시간’이 되어 있었다. 외출이 허락되지 않는 병원 생활 속에서, 나는 계속 세상과 한 겹 떨어져 머물고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지금의 나에게 정말 필요한 건 이 순간을 꾹 참고 다시 힘을 내는 일이 아니라, 내가 살아 있다는 감각을 진짜로 느끼는 일이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본능적으로, 나를 숨 쉬게 해 줄 곳을 찾고 있었다.


집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지만, 충주 수안보가 문득 떠올랐다. 월악산 자락에 자리한 온천 마을, 어쩐지 거기라면 몸과 마음이 다시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수안보에 도착하자 가벼운 공기가 먼저 스며들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니 가슴 깊숙이 오래 눌려 있던 긴장이 천천히 풀려갔다.


그날 저녁엔 빗방울이 창문을 소리 없이 두드렸다. 흐린 하늘 아래 단단한 땅이 빗물에 촉촉하게 젖고, 젖은 낙엽의 냄새가 공기 사이로 번져갔다. 나는 그 빗소리에 마음을 의지했다. 똑똑 떨어지는 소리는 심장 박동과 하나처럼 겹치고, 그 리듬 속에서 설명할 수 없는 고요가 찾아왔다. 비록 병실에 홀로 앉아 있지만, 빗소리와 바람의 감촉 덕분에 자연이 나와 함께 호흡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아픔에 둘러싸여 있던 경계가 느슨해지며, 나는 더 넓은 호흡 안으로 가라앉았다.


나는 이미 나를 감싸고 있던 큰 흐름에 조용히 나를 맡겼다.

고통도, 회복도, 모두 거대한 순환의 한 일부처럼 느껴졌다.

그 흐름 속에서 변하지 않는 어떤 것이 내 안에 고요히 놓여 있음을 느꼈다.


삶은 나를 살리기 위해 흘러가고 있다는 감각이었다. 나는 그 감각을 가슴에 품은 채, 작게 웅크려 잠들었다.



그날 밤, 오랜만에 깊이 잠들었다. 자연은 ‘괜찮다’는 말 대신 조용히 나를 감싸 안아주었다.

겉으로는 아무것도 나아진 것 없어 보여도, 나는 다시 숨 쉬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언제 비가 내렸냐는 듯 창가엔 햇살이 머물러 있었고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공기엔 막 비에 씻긴 듯한 맑고 투명한 느낌이 남아 있었다.

이곳에서는 잠깐의 외출이 허락되었다. 오후의 치료를 마친 뒤, 나는 병원 근처의 작은 마을 길을 천천히 걸었다. 십 분쯤 걷다 보면 수안보 초등학교가 보인다. 오래 걷진 못했지만 천천히 걸음마다 숨 고르듯 한 발 한 발 내디뎠다.


오래된 담벼락 틈 사이로 이름 모를 풀들이 가느다랗게 고개를 내밀었고, 틈틈이 손톱만 한 꽃들이 조용히 피어 있었다. 누군가 손길을 내밀지 않아도, 알아봐 주는 이 없어도, 자기 자리에 묵묵히 살아내는 모습이 내 마음속에도 잔잔히 스며들었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연한 잎을 살짝 어루만졌다. 그 순간 내 마음도 함께 부드러워졌다. 조금 느려도 괜찮다는 듯, 지금 여기서 숨 쉬고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말없이 작은 존재들이 건네는 것 같았다. 마음 한 조각을 잠시 그 자리에 놓아두고 또다시 걸음을 옮겼다. 여전히 몸은 조심스러웠지만, 마음만큼은 조금 더 가벼워진 듯했다. 그때 학교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골목을 감돌아 바람 속으로 스며들 듯 소리가 사라졌다.


종소리의 여운 속에서, 상담교사로 일하며 아이들에게 건네던 한 마디가 조용히 떠올랐다.

마음이 얼어 있던 아이에게, 자꾸만 자신을 탓하며 작아지던 아이에게 나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렇게 느껴도 괜찮아 “

”괜찮아지지 않아도 이미 잘하고 있어 “

아이들을 향한 말이었지만, 그 말은 다시 나에게로 돌아왔다.

지금 이 순간, 그 말을 가장 필요로 했던 사람은 바로 나였다. 이미 잘 해내고 있다고, 오늘만큼의 하루면 충분하다는 걸, 그렇게 나는 다시 내 속도로 걷는 연습을 하고 있다.


나는 언제부터 ‘암 환자’라는 이름으로 나를 부르기 시작했을까. 병명은 몸의 상태를 설명해 줄 수는 있어도, 내가 하루를 어떻게 느끼며 살아가는지는 담지 못한다. 나는 환자라는 이름 이전에, 아픔 속에서도 숨 쉬며 살아 있는 한 사람이었다. 적어도 나만큼은 내 안에 남아 있는 힘을 믿어주고 싶다.


항암 기간 중 고통은 나를 시험하듯 따라붙곤 했다. 텅 빈 병실의 외로움과 잠을 이루지 못한 채 뒤척이며 견뎌야 했던 긴 시간들, 몸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던 체념까지. 그런 시간 속에서도 삶은, 그 아픔보다 한 걸음 앞에서 조용히 나를 부르고 있었다.


병이 나으면, 건강해지면 그때 비로소 진짜 삶이 펼쳐질 것이라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삶은 멀리서 기다리는 무언가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늘 나와 함께 흐르고 있었다. 나는 관계 속에서 살아 있었고, 누군가의 눈빛을 보며 마음이 따뜻해졌다. 조금이라도 웃을 수 있는 날이면, 조금이라도 몸이 가벼워지는 날이면 그 하루가 그토록 감사하게 느껴지곤 했다.


작게 움츠러들어 멈춰 있는 것만 같았던 순간에도, 나는 여전히 더 큰 흐름 안에 있었다. 숨을 쉴 수 있다는 감각, 살아 있는 몸이 보내는 미세한 신호, 사소한 온기 하나에도 마음이 움직이는 그 순간들 속에서 나의 삶은 이미 이어지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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