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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로 돌아가는 길

삶을 여행처럼

by 청빛
누구나 한 번쯤은 자기 자신에게 돌아가야 하는 순간이 있다.
그때의 길은 외롭고 고요하지만, 그 안에는 우리가 잊고 살던 생명의 언어가 깃들어 있다.
항암의 시간은 나에게 그런 길이었다.


나는 종종 홀로 여행을 떠나곤 한다. 그 끝에는 진정한 나를 만나고 싶다는 조용한 그리움이 있었다. 그게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지만, 그 열망은 나의 내면 어딘가에서 늘 부드럽게 빛나며 나를 이끌었다.


그 오래된 부름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이어졌다. 세상을 향해 걷던 발걸음이 멈춘 자리에서, 나는 또 다른 여행을 시작하고 있었다. 암이라는 이름의 여정은 밖으로 향하던 나의 인식을 안으로 부드럽게 돌려세웠다. 그 길은 낯설었고, 때로는 고독했다. 하지만 그만큼 진실했다.


항암의 시간도, 혼자 떠난 여행도, 모두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그건 세상을 떠도는 길이 아니라, 나 자신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길을 잃을까 봐 망설이면서도 발을 내디딜 수 있었던 건, 그 어딘가에 나로 향하는 길이 있을 것이라는 조용한 믿음 때문이다. 그 믿음은 외부의 약속이 아니라, 내 안의 생명이 건네는 확신 같은 것이었다.


돌아보면, 진정한 여행의 아름다움은 낯선 풍경을 보는 데 있지 않았다. 내가 가장 사랑했던 여행은 몸으로 세상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들이었다.

티베트 고원의 투명한 공기 속을 걷던 여행,

870km 국토대장정의 여정,

그리고 절벽길을 따라 스치던 차마고도의 바람 같은 순간들은 수많은 여행 중에서도 유난히 내게 깊이 남아 있다. 그 길 위에서 나는 온몸으로 세상을 느끼며 걸었다. 바람이 피부에 닿고, 흙냄새가 숨결에 스며들 때마다 삶은 단순히 살아가는 일이 아니라, 감각으로 다시 태어나는 경험임을 배웠다.

아침마다 이슬에 젖은 풀 냄새가 코끝을 스쳤고, 해가 오르기 전의 공기는 살짝 서늘했다. 발이 흙길과 닿는 소리, 숨이 가빠질 때마다 느껴지는 호흡의 박동, 저녁마다 산등성이 위로 붉게 번져가던 노을 한 조각까지 그 모든 것이 나를 “지금, 이 순간”에 살아있음을 느끼게 했다.

하루에 몇십 킬로미터씩 걸으며 마주한 것은 끝없는 산맥과 낯선 마을만은 아니다. 함께 걷던 이들과 나누던 해맑은 웃음, 비 오는 날 서로의 짐을 들어주던 따뜻한 손, 말없이 건네던 물 한 모금, 그 모든 것이 말로 다 할 수 없는 연대였다.

몸이 지칠수록 마음은 단순해졌고, 생각이 줄어들수록 세상은 더욱 선명해졌다. 내 안 깊은 곳에서 진실함과 순수함이 천천히 깨어났다. 한 걸음, 또 한 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 섬세한 떨림이 나의 중심을 흔들며, 오래 잠들어 있던 생명의 숨결을 되살려주었다.


노을이 지고 바람이 식어갈 무렵, 이 길이 나를 어디로 데려가든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중요한 건 ‘도착’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한 걸음을 내딛고 있는 나 자신이었다. 걸음이 쌓여 길이 되었고, 그 길 위에서 나는 조금씩 ‘나’로 돌아가고 있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알게 된다. 사랑도, 마음의 평화도, 용기도 결국 내 안에서 흘러나온다는 것을.


지금도 투병의 길을 걷다 보면, 그때의 바람이 문득 마음을 스친다. 아마 그 길은 여전히 내 안에서 이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끝나지 않은 순례처럼, 살아 있는 매일이 또 하나의 길이 되어 나를 이끌고 있다.

누군가와 함께 걷든, 혼자 머물든, 그 모든 순간이 존재의 길 위에 서 있는 일이었다.


이 몸은 삶을 여행하기 위한 옷이었다.




세 번째 항암 차시를 끝내고, 이제 네 번째 치료를 앞두고 있다.

암 투병이라는 낯선 길 위에서 나는 또 한 번의 ‘순례’를 시작하고 있었다.


나는 ‘삶을 여행처럼’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하루하루를 새로운 눈으로 머물러 보는 것

지금 여기의 공기와 감정을 온전히 느껴보는 것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안아주는 것

예기치 못한 우회로가 주는 선물을 느끼고, 우연히 만나는 이들에게 순수한 마음으로 다가가는 것 말이다.


나는 병원에 머무는 동안, 이곳이 새로운 여행지의 낯선 숙박시설이라고 생각해보곤 했다.

아무도 대신 걸어줄 수 없는 길 위에서, 나는 내 몸의 지도와 마음의 나침반을 따라 한 걸음씩 나아갔다. 그 여정은 불확실했지만, 그 불확실함 속에서 오히려 나는 나를 더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처음엔 이 병이 나를 삶의 저편으로 밀어낼 것이라 생각했다. 여행지에서의 이방인처럼, 나는 항암의 시간 속에서도 종종 두려움, 외로움과 맞닥뜨렸다. 그러나 두려움보다 더 깊은 곳에는 언제나 용기가 있었다. 오히려 내가 진짜로 ‘살아있음’을 가장 선명하게 느끼게 해주는 문이 되어주었다.


삶이 나에게 다가온 것인지, 아니면 내가 비로소 삶의 깊은 품 안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던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삶이 멀어진 것이 아니었다. 암이라는 이름으로 내 앞에 놓인 이 시간이 나를 생명의 더 깊은 자리로 이끌고 있다는 사실이 선명해졌다. 항암으로 몸에 힘이 빠질수록 현재의 감각은 민감해졌고 과거의 기억은 조금 흐려졌다. 내세울 나도, 용서하지 못할 것들도 이곳에선 없었다. 병 앞에선 인간이 쌓아온 이름표와 서사가 참 단순하게 벗겨졌다. 남은 건, 그저 숨 쉬는 나였다.

그 길 위에서 나는 조금 더 겸손해졌고, 조금 더 고요하게 내 안의 것들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살아 있는 몸 하나, 그것만으로 충분히 거룩한 존재임을 그때 처음으로 온전히 느꼈다.


나는 암에 걸린 지금 이 순간조차도 다른 이의 삶과 바꾸고 싶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외로움 앞에서 무력한 나도, 때론 숨어버리고 싶은 나도 괜찮았다. 오히려 지금 이 시간이야 말로 내 안의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시간이었다.

그 길 위에서 나는 자주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무엇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그 여정 속에서 배운 가장 단순하고도 위대한 진실은 이것이었다.


그 누구도 내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없다는 것.


나의 아픔을 대신 겪어줄 수 없으며, 이 길은 결국 나의 길이라는 것.

항암의 여정 속에서도 나는 여전히 나만의 고유한 삶이 있음을 확신했다. 아무리 병이 내 몸을 흔들어도, 삶의 주체는 언제나 나 자신이었다.


가족이든, 내 몸을 돌봐준 고마운 의료진이든 그들에게 의지하고 싶은 마음속에는 ‘사랑 받고 싶은 마음’이 숨어 있었다. 누군가가 없으면 안 된다고 느껴질 때, 내 곁에 꼭 있어야 한다고 붙잡으려 할수록 내 안의 힘은 점점 흐려졌다. 몸이 아프고 마음이 흔들릴수록 외부의 위로·보호에 더 기대고 싶어졌다. 사랑받고 돌봄받고 싶은 마음은 때로는 나를 살리는 힘이 되어주었지만, 또 어떤 순간에는 내 안에서 자라나야 할 힘이 고요히 멈추게 하기도 했다.

나는 천천히, 믿음의 방향을 다시 나의 내면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누군가와 거리를 둔다는 것은 영원히 떠남이 아니다. 내 힘이 다시 자라고, 순수한 사랑이 다시 흐를 수 있도록 여백을 두는 일이다.


항암 치료를 받는 동안, 가족이 곁에 있어주길 간절히 바랄 때가 있었다. 모든 것이 낯설고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 한편엔, 각자에게는 각자의 길이 있고, 그 길 위에서도 서로를 향한 사랑은 여전히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유지되는 불안한 평화가 아니라, 서로의 존재가 각자의 자리에서 온전히 빛날 수 있는 사랑, 그것이 내가 믿는 사랑의 형태였다.

다행히 가족의 헌신적인 돌봄이 아니라 암 요양병원과 완화치료 병원의 도움을 받으며 이 여정을 함께 조율해갈 수 있는 길이 있었다. 무게를 나누는 일은 꼭 가족과만 함께하는 것이 아니었다. 서로 다른 자리에서 만난 사람들, 순간을 나눈 인연들조차 나의 여정에 작은 빛을 더해주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가족들에게 마음으로 의지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의존하지 않으려 했을 때, 내 안에서 예상치 못한 자유가 피어났다. 이제는 그들이 곁에 있어도, 혹은 멀리 있어도 나는 그것 또한 괜찮다고 느꼈다. 나를 지탱하는 힘이 이미 내 안에 존재하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사랑 속에 있었고, 각자의 삶 또한 제 자리에 단단히 서 있었다. 서로의 삶을 짊어지지 않아도, 우리는 연결되어 있었다.


타인을 향한 소유와 애착을 내려둘 때, 사랑은 오히려 더 넓게 흘러간다. 상대가 아닌 나 자신에게 애착의 뿌리를 내릴 때, 사랑은 소유하려는 마음에서 존재 그 자체의 존중으로, 결핍감에서 충만한 감사로 변해갔다. 그 변화는 내 안의 여정이 한 걸음 더 깊어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누군가의 사랑에 기대면서도 나 자신의 중심을 잃지 않는 법을 조금씩 배워가는 중이다.


항암 1-2차시 35일 머문 첫번째 숙소/ 외출은 안되었고, 시간에 맞춰 식사가 들어왔다. 나는 이곳에서 치료시간 이외, 책을 읽거나 가벼운 산책, 명상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사랑은 관계를 통해 배우지만, 결국 자기 존재로 돌아오는 길이다. 그 길 위에서 사랑은 누군가를 붙잡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로서 존재하도록 돕는 힘이라는 것을 알아간다.

상대가 주었던 온기와 도움, 그리고 용기는 내 안에서 자라났다. 그 사랑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나의 일부가 되어 조용히 흐르고 있다. 진짜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형태를 바꿀 뿐, 늘 나를 살아 있게 하는 힘으로 남는다.


홀로 있는 시간 속에서 나는 더욱 깊어졌다. 이 시간을 온전히 겪어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였을 때, 비로소 내 안의 ‘성숙한 나’, 아픈 나를 안아줄 수 있는 큰 나가 깨어나기 시작했다. 고독은 나를 고립시키는 벽이 아니라, 나를 나에게로 돌려보내는 문이었다. 그 모든 순간들이 나를 내 안으로 데려가고 있었다.


그곳에서 삶은 결코 나를 떠난 적이 없었다는 것을 느꼈다. 매 순간 나를 통해, 나를 향해,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가만히 생각해 본다.

이 암투병의 여행이 끝나 있을 때, 그 끝에는 어떤 내가 서 있을까.


몸이 살아 있는 지금, 이 자리에서 여전히 나는 여행 중이다. 나는 여전히 삶이라는 길을 걷고 있다.


답을 찾기보다, 그저 걸으며 배워가는 중이다.


고통 속에서도 살아 있음을 느끼고, 불완전함 속에서도 빛을 찾는다.


어쩌면 인생은 완성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렇게 한 걸음 한 걸음 빛을 찾아가며

나에게로 되돌아오는 여행인지도 모르겠다.



난생 처음 홀로 비행기에 올라 미국 땅을 밟았던 그때—모든 것이 처음이었지만 세상이 두렵기보다 낯설게 빛나 보였다. 나의 지금 매 순간도 그러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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