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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허락하는 용기

by 청빛


늦봄에 시작된 항암의 여정은 여름을 지나 가을의 문턱에 닿아 있었다. 바람은 어느덧 서늘해졌고, 햇살은 금빛보다 연한 빛으로 창턱에 조용히 머물렀다.

아직 아빠에게는 내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리지 못했다. 걱정을 얹고 싶지 않아 꾹 삼킨 말들이 마음의 깊은 바닥에서 나를 붙들고 있었다. 하지만 내게 온 이 병이,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아픔으로 가닿지 않기를 바랐다.

아빠는 내가 어디를 가든 늘 차로 데려다주고 싶어 하셨다. 낯선 경북 울진으로 첫 교사 발령을 받은 해였다, 노포동에서 울진까지 시외버스를 타면 갈 수 있었지만 아빠는 월요일 새벽 4시간이 걸리는 그 길을 운전해 데려다주고 다시 부산으로 돌아가곤 했다. "괜찮아, 버스로 가면 돼."라는 말도, 아빠에게는 소용없었다. 잠에서 깨어 차창을 반쯤 열면, 울진 바다의 시원한 바람이 뺨을 스쳤고, 나는 월요일 출근길이라는 사실도 잊은 채 환하게 웃곤 했다. 차창 밖 풍경은 바뀌었지만. 나를 기다리는 아빠의 모습은 한결같았다.

가장 익숙했던 풍경이 사실은 내게 가장 귀한 선물이었음을 이제야 조금 알 것만 같다. 그 다정을 마음 깊이 접어 넣으며 나는 오늘도 투병의 하루를 살아낸다. 이제는 내가 나를 기다릴 차례였다.


요양병원 생활은 낯설었다. 병실에 홀로 누워 지내는 날이 길어지자, 누군가의 빈자리가 절절하게 다가왔다. 그럴 때면 홀로 있음의 무게 앞에서 분명한 온기를 붙잡고 싶었다. 사랑은 소유가 아니니, 잃을 수도 없다. 그런데 부재는 왜 이토록 선명할까.

아마도 그건 태어날 때부터 누군가의 품에 안겨 삶을 시작했기 때문일 것이다. 첫 울음을 터뜨리던 순간, 나를 감싸던 손길과 따스하게 전해지던 눈빛은 내 몸 깊은 곳에 오래 남았다.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마다 나는 본능처럼 그 자리를 찾는다.


엄마와는 이틀에 한 번 통화를 했다. 밥은 얼마나 잘 나오는지, 오늘은 어떤 치료를 받았는지 등의 안부를 주고받는다. 그 짧은 대화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마음속 그림자를 소리 없이 헤아리고 있었다. 언제나 든든히 버티고 계셨기에 나는 부모님의 삶 이면에 깊이 숨어 있었을 아픔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다만 그 모든 침묵 속에 말해지지 않은 더 큰 사랑이 담겨 있다는 사실만은 가슴 깊이 느낄 수 있었다.

늘 단단하게 보이던 부모님도, 자식의 병 앞에서 약한 존재가 된다. 자식의 아픔을 지켜보며 이유 없는 죄인이 되어버린다. 그러니 이제는 내가 스스로 더 강인해질 차례였다.


요즈음에는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찼다. 한 층 계단을 오르는 일조차 쉽지 않아, 몇 번이나 걷다 멈추기를 반복했다. 항암 치료의 횟수가 쌓일수록 다리의 힘은 서서히 빠져나갔다.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을 지켜보노라면, 걷잡을 수 없는 무력감이 밀려왔다. 몸무게는 38킬로가 되었다. 밥 한 숟가락을 삼키는 일이 이토록 경건하고 소중한 의식이 될 줄은 몰랐다. 항암치료를 받은 후 2주 동안은 물만 먹어도 토해내는 날들이 이어졌다. 구토 방지 패치도, 부작용 완화 주사도 소용없었다. 그럴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극히 소박했다. 조급해하지 않고 묵묵히 나의 생명력을 믿어주는 일이었다. 한 숟가락이라도 편안히 넘길 수 있다면 그 자체에 감사했다.

식판 하나를 병실 문밖으로 내어놓는 일조차 벅찰 때가 있지만, 나는 내 몸이 허락하는 만큼 해내고 싶었다.


나는 남을 돌보는 데는 익숙했으나, 정작 나를 지키고 돌보는 일엔 인색했다. 나를 향한 사랑은 배우고 익혀야 했다.

"이만큼이면 잘하고 있어" 나는 작고 서툰 아이를 보살피듯, 하루에 내가 해낸 작지만 결코 작지 않은 일들을 스스로 격려한다. 오늘 어떤 음식을 삼킬 수 있었는지, 물은 얼마나 마셨는지, 기분은 어떠했는지, 잠은 몇 시간을 이어서 잘 수 있었는지, 그저 숨 쉬고 걸어내는 작은 발걸음까지 감사하다 여겼다. 그렇게 소소하지만 소중한 성취들을 헤아리며 하루를 조용히 살아낸다.

몸을 돌보는 일은 단순히 결과를 얻기 위한 행동이 아니라, 지금의 존재와 함께 머무는 사랑의 방식임을 배우는 중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이부자리를 가지런히 펴고 베갯잇도 단정하게 정리한다. 하루를 시작하는 작은 의식과도 같다. 나는 작은 일들에 사랑을 담고, 몸이 허락하는 속도만큼 나아가는 중이다. 그렇게 하는 동안 내 안에 충만함과 사랑도 함께 자라나고 있었다.


나는 아프기 전 억제하는 편이었다. 타인에게 맞추고, 스스로를 통제해야 안전하다고 믿었다. 아픔 앞에서 그런 내게 필요한 건 버티려는 의지가 아닌, 자기 허락이었다. 세상의 속도나 기대에 맞추지 않아도 지금 이대로 괜찮다고 그렇게 스스로를 허락할 때마다 눈물이 핑 돌았다. 진심으로 말하는 동안, 오래 나를 억누르던 규범과 자기 비난이 잠시 내려앉았다.


내가 나로 사는 것을, 타인에게 허락을 구해왔다. 마치 내 존재의 열쇠가 그들의 손에 쥐어져 있기라도 한 듯 눈치를 보며 내 마음을 접어두곤 했다. 괜찮다는 확인을 받아야만 안심했고,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는 보증을 얻어야만 한 발 내디딜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허락은 애초에 바깥이 아닌 내 안에 있었다.

내 약함과 강함,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은, 타인의 승인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되었다. 사랑받을 자격은 애초에 없었다. 허락은 언제나 내가 내게 건네는 것이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일 때 솟아나는 힘이 있다. 그것은 억지로 버티는 힘이 아니라, 내 존재를 온전히 허용할 때 저절로 흘러나오는 힘이다.

사랑은 내가 나를 품는 순간 내 안에서 흘러나왔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날이 이어져도 나는 여전히 사랑받아 마땅한 존재임을 잊지 않는 것.

괜찮은 척으로 관계를 붙들지 않고 괜찮지 않음을 말하는 용기가 성숙임을 아는 일.

누군가의 반응에 갇히지 않고 나의 중심에서 기꺼이 사랑을 선택하는 일.


그건 역할을 지닌 내가 아닌, 존재 그 자체인 나를 존중하는 여정이기도 했다.


©unsplash

매일 아침 나는 거울을 바라보았다. 환자복을 입고 있었지만, 여전히 삶을 새롭게 배워가는 한 존재가 있었다. 몸은 약해졌지만 눈동자만큼은 또렷했다. 그 속엔 더 이상 상처를 숨기지 않고 고통마저도 사랑의 일부로 품는 내가 있었다. 투병의 아픔은 나를 더 깊이 열었고, 슬픔은 소리 없이 내 마음의 벽을 허물었다.


나는 나를 믿어주는 만큼 단단해지고 있었다.

상처를 지닌 채로도 충분하다는 믿음,

고통을 지나면서도 존엄을 잃지 않을 수 있다는 울림, 그리고 사랑이 결코 외부에서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내 존재의 중심에서 흘러나온다는 깨달음이 조용히 찾아왔다.


암 병동의 침대에 누워 있던 이 느린 시간마저 삶이 내게 건넨 귀한 선물임을 잊지 않으려 나는 이 글을 쓴다.

삶을 품는다는 것은 좋은 경험만이 나를 살리는 게 아님을 받아들이는 일이며, 동시에 지금 이 순간의 나를 거절하지 않는 용기이기도 했다.


그건 지금 이 순간의 나를, 그리고 내게 주어진 삶 전체를 기꺼이 사랑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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