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진단 날
낡고 익숙한 자아의 옷이 벗겨질 때, 비로소 마주하게 되는 내가 있다. 그 속에는 오랫동안 숨겨두었던 진실한 내가, 조용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 암 진단을 받은 곳은 난임 병원이었다.
“자궁도 깨끗하고 난소도 아주 건강해요.” 의사의 밝은 말은 한 줄기 희망처럼 다가왔지만, 임신은 생각처럼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임신하길 바랐지만, 남편의 검사 과정에서 난임 요인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시작된 시험관 시술은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의 하루를 조심스럽게 만들었다.
시험관 시술을 이어가던 어느 날, 병원에서 면역 억제제를 처방받았다. “환자분의 면역 지수가 높아 착상에는 방해가 될 수 있어요.”
면역억제제는 암이나 질병으로부터 지켜주던 NK세포의 활동을 인위적으로 멈추는 주사였다. 생명을 맞이하기 위해, 나를 지켜오던 면역의 힘을 잠시 낮춰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순간 마음 한쪽이 조용히 흔들렸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그러나 분명한 이질감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 느낌을 붙잡지 않았다. 괜히 예민한 사람으로 보일까 싶어 스스로를 설득한 채, 내 안의 감각보다 누군가의 판단을 더 믿기로 했다.
면역억제제 링거를 다섯 병 맞고, 2주가 지났을 때였다. 물혹 하나 없던 난소에 2센티의 혹이 생겼다. 담당 선생님은 초음파 사진을 확인하고선 다음번 방문일까지 지켜보자고 했다. 그리고 다음 방문일, 혹은 5센티로 자라 있었다. 불과 열흘 사이였다. 초음파 화면 위에 어둡게 맺힌 작은 점을 바라보며, 의사의 설명은 이어졌지만,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머릿속은 이상하리만큼 고요했다. 놀란 것도 울컥한 것도 아니었는데 무언가 미세하게 어긋난 느낌만 또렷했다. 시간이 갑자기 압축되는 기분이 들었다. 몸 안에서 내가 모르는 속도로 어떤 일이 진행되고 있는 듯했다. 수술 당일에는 9센티까지 자라나 있었다.
시험관 담당 의사는 곧바로 나를 부인암과로 의뢰했고 며칠 후 나는 PET-CT와 여러 검사를 받았다. 검사 결과를 들으러 올 때 반드시 보호자와 함께 방문할 것을 당부했다. 혹여 수요일에 오라는 연락을 받게 되면, 그건 상황이 좋지 않다는 뜻이라고 했다. 수요일은 다학제 회의가 있는 날이다. 여러 과의 의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검사 결과를 함께 판독하고 치료 방침을 논의하는 날이었다.
왜 나는, 당연히 수요일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을까.
날씨조차 좋았던 수요일. 연차를 내고 병원 복도에서 이름이 불리우길 기다린다.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네 명의 의사가 한 자리에 앉아 있었다. 드라마에서처럼 의사가 근심 가득한 얼굴로 “유감이게도 암입니다” 라고 말하는 장면과는 사뭇 달랐다. 그것보다 훨씬 더 담담하고, 오히려 압도적이었다. 빔프로젝트를 돌려가며 네 명의 의사가 한 마디씩 다각도로 이야기하는 통에 무슨 말을 들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현석이가 나 대신 내용을 들어주었고, 종이에 빼곡히 적힌 결과지를 받아왔다.
암 선고란 이런 거구나.
다른 말들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어쨌든 암이라는 사실, 그리고 시험관 담당선생님이 복도에 기다리던 나의 손을 꼬옥 잡아주다 들어가셨던 건 따뜻하게 기억이 난다.
수술을 앞두고 암 담당 의사가 조심스레 물었다. “항암 전에, 마지막일지 모르는데 난자 채취를 하시겠어요?”
나는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대답했다.
“아니요. 하지 않겠습니다.”
의사의 말을 듣고 병원을 나오는 길, 복도 끝 창가에 잠시 멈춰 섰다. 가슴이 텅 빈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묘하게 가벼웠다. 오래 붙잡고 있던 것을 내려놓은 느낌이었다.
암이라는 문턱 앞에서, 나는 처음으로 온전히 나를 위한 선택을 했다. 두려움이 있었지만, 동시에 알 수 없는 해방감도 찾아왔다. 시험관 시술이 누군가에게는 생명을 품는 과정이겠지만, 내게 그 길은 더이상 나의 길이 아님을 분명히 알게 됐다.
누구의 뜻도 아닌, 내 몸과 삶을 내가 결정한 순간이었다.
몸은 때로 질병이라는 방식으로, 삶을 다시 바라보라고 속삭인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삶의 책임이 무엇인지, 그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 보았다.
나에게 삶의 책임이란, 세상이 정한 옳고 그름에 나를 끼워 맞추는 일이 아니라, 내가 어떤 존재로 살아가고 싶은지를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끝내, 나를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선택하는 것이기도 했다.
나는 너무 오랫동안 진짜 나로 살아갈 용기를 미뤄두고 있었다.
그 용기는, 누구도 대신 가져다줄 수 없는 것이었다.
내게 암이 왜 생겼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지금 이 삶 앞에 서있는 내가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였다.
수술 날짜를 메모한 종이를 호주머니에 넣으며, 나는 손끝으로 종이를 오래도록 만지작거렸다. 두려움도 있었지만, 그 안엔 분명한 결심이 함께 있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내 마음과 선택을 더 이상 누구의 책임으로 돌리지 않기로.
그리고 나의 선택을 더 이상 누구에게 설명하기 위해 애쓰지 않기로.
나의 진실을 포기하지 않는 이 선택이 내가 나를 살아내는 방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눈앞에 주어진 이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에 대한 결정은 결국 온전히 내게 있다는 것을 나는 받아들였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나의 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