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을 몰랐다면, 나는 나를 만나지 못했을 거야

by 청빛



살아가면서 우리는 수많은 관계를 맺는다. 연인과 헤어지고, 친구와 멀어지고, 때로는 오랜 시간 공들인 것들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을 느낀다. 그런데 그 많은 이별과 상실 속에서, 우리는 정작 가장 먼저 잃어버린 것을 오랫동안 모른 채 살아간다. 바로 나 자신이다.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어쩌면 그런 나에게 건네는 조용한 질문일지도 모른다.


"지금 너는, 너 자신과 얼마나 진실하게 함께하고 있니?"




2차 항암을 마치고 눈을 떴을 때, 창밖의 빛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무심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그날도 병원에서 괜찮은 척, 밝은 척, 애써 웃으며 하루를 버텼다.

통증이 몰려와 내 몸을 옭아맬 때, 나는 쉽게 그 아픔을 꺼내 보일 수 없었다. 괜히 그들의 마음까지 무겁게 할까 봐, 또 하나의 짐이 될까 봐.


“괜찮아.”라고 말하는 날에야 사람들은 안도했고, 나는 그 안도를 느끼며 다시 한번 나를 다독였다.

나는 아픈 사람으로만 남고 싶지 않았다. 잘 견디고 있는 단단한 사람으로 남고 싶었다.

그러나 그 사이에서 아프고 나약한 나는 조금씩 더 조용해졌다. 숨을 죽였다.


어쩌면 나는 나를 숨긴 채 살아오며, 누군가가 내 마음을 먼저 알아봐 주기를 기다려왔는지도 모른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이해해 주기를, 말없이도 받아들여 주기를 바라면서. 그 바람 뒤에 외로움이 조용히 남아 있었다.


우리는 타인의 상처에는 민감하면서, 자신의 아픔에는 둔감하다. 친구가 힘들어하면 달려가면서도, 정작 내 마음이 무너질 때는 이 정도쯤이야라며 나를 뒤로 미룬다. 마치 나는 돌봄이 필요 없는 사람인 것처럼, 내 슬픔은 충분히 슬퍼할 가치가 없는 것처럼.


나는 지금껏 누군가의 사랑이 서툴게 표현된 자리에서, 그 사랑을 이해하려 애쓰느라 내 아픔을 뒤로 세워둔 날이 많았다.

이해받기보다 이해하는 사람이 되려 했다.


외로움은 나 자신에게로 돌아오라는 부름이었다.


불이 꺼진 병실 한구석, 가슴 위에 두 손을 올려본다.

그때 들려오는 듯한 작은 속삭임에 마음을 둔다.

“나 좀 봐줘.. 나 여기 있었어.”


내면 아이는 말없이 나를 부르고 있었다.

그제야 나는 내 마음을 인정할 수 있었다.


나는 사랑받고 싶었다.

지켜지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간절히 외로웠다.


더 아픈 건 암이 아니라, 오랫동안 나를 외면해 온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나의 외로움은 가짜 위로로 채워질 수 없는, 진짜 이해와 연결을 갈망하는 마음이었다.


‘기다림’이라는 언어는 내게 오래도록 새겨진 체온 같은 것이었다. 나는 늘 누군가가 나의 편이 되어주기를 기다리며, 정작 내가 나의 편이 되는 일은 미뤄두고 있었다. 그 안엔 “괜찮다”라고 말해주기를 바라는 간절함, 있는 그대로의 나를 알아봐 주기를 바라는 조용한 기도가 담겨 있었다

내가 나를 진정으로 바라봐주기를,

있는 그대로 안아주기를,

비난하거나 외면하지 않기를.

내가 언제 어디서든

나의 편이 되어주기를 바랐던 그 마음.


외로움은 결국 길이었다. 내가 가장 그리워했던 나 자신을 다시 만나러 가는 길. 외로움은 끝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나를 외면하던 자리에서 돌아서게 만든 방향이었다. 가장 멀어진 줄 알았던 나에게 다시 닿게 한,

아프고도 아름다운 통로였다.


나는 그 밤, 침대에 앉아 작은 불 하나 켜두고 나에게 편지를 썼다.



사랑하는 나야

세상 그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나는 알아

네가 얼마나 버텨왔는지


아무 일도 나아지지 않은 것 같은 날에도 너는 그 하루를 살아냈잖아

흔들렸지만 무너지지 않았고, 무너지면서도 다시 일어났지

그게 얼마나 큰 힘이었는지 네게 말해주고 싶어.


너의 잘못이 아니야 그 누구의 잘못이 아니야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내가 알아.


무언가를 찾지 않아도 돼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돼

모든 걸 다 내려놓아도 괜찮아

증명하지 않아도 돼, 애써 단단해지지 않아도 돼.


나는 그 자리에서도 너를 떠나지 않을 테니까.

너는 사랑받아야 마땅한 존재인걸 무언가를 해내서가 아니라

그저 너이기 때문에..


이 길이 혼자 걷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많지만 나는 언제나 너의 곁에 있었고

지금도 여전히 함께 걷고 있어

그러니 잊지 마 너는 너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길 위에 있다는 것을 말이야..


세상이 모두 등 돌린 것 같은 날에도

아무도 닿지 않는 어둠 속에 있다고 느껴진 날에도


사랑은 늘 거기에 너와 함께 있었어


사랑하는 나야 기억해 줄래

외로움은 사랑이 많고,

감각이 깊고,

진실을 원하는 영혼들이 느끼는

깊고 맑은 영혼의 언어라는 것을 말이야.


너는 정말로 사랑스럽고 귀하고

있는 그대로 소중한 사람이야


- 항암치료의 날 중 나에게로 보낸 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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