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여성성을 다시 선택합니다
이른 갱년기의 계절은 여성으로서의 나를 한층 더 단단하고 성숙하게 만들었습니다. 어쩌면 갱년기란, 여성으로서 더욱 깊어지는 신성한 여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서른다섯, 나는 생식세포암이라는 현실과 잃어버릴지도 모를 여성성의 그림자 앞에서 낯선 계절을 맞이하고 있었다.
자연스러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서서히 찾아와야 할 갱년기 증상은, 항암치료와 난소 억제 주사로 인해 순식간에 시작되었다. 오른쪽 난소는 수술로 절제했고, 왼쪽 난소는 항암제의 영향을 막기 위해 매 회차마다 난소 억제 주사를 맞으며 기능을 멈춰야 했다.
호르몬 수치는 금세 폐경기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와 함께 근육 약화, 관절 통증, 불면, 이명, 오한과 발열, 무기력, 이석증, 기억력 저하, 골밀도 감소, 두근거림, 두통, 감정 기복까지… 나열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증상들이 항암 부작용 위에 겹쳐졌다
그건 단지 몸의 변화만이 아니었다. 내 안에서 오래도록 이어져 오던 순환이 멈춰 선 순간이었다. 그 침묵은 고요했지만, 동시에 내 안의 세계를 깊숙이 흔들어 놓았다.
나는 내 여성성에 대해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늘 당연하게 주어진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때로 어떤 것을 상실한 뒤에야, 그 이면에 숨어 있던 진짜 의미를 발견하곤 한다. 그 빈자리의 침묵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다.
“여성으로 존재한다는 건, 과연 무엇일까.”
그 질문은 역할과 기대를 벗어나 존재 그 자체로서의 나를 다시 바라보게 하는 깊고 고요한 초대였다.
돌이켜보면, 나는 오랫동안 ‘여성다움’이라 불리는 사회적 기준에 나를 맞추려 애써왔던 것 같다.
내가 항암 치료를 받았던 암 병동은, 아이러니하게도 얼마 전까지 시험관 시술을 위해 오가던 난임 병동과 마주 보고 있었다. 항암제를 맞고 병실 창가에 앉아 있으면, 그 건물은 오래된 기억처럼 내 시야에 들어왔다. 한 생명을 기다리며 마음 졸였던 시간들, 희망과 불안이 엉킨 채 수없이 오르내리던 병원의 계단과 복도. 그 길의 끝에서, 나는 이제 난임 병동이 아니라 암 병동에서 나 자신을 살리기 위한 여정을 조용히 시작하고 있다.
항암치료라는 어둡고도 긴 터널을 지나는 동안, 겉으로는 모든 것이 멈춘 듯 보였다. 시간도, 삶도, 나 자신도 조용히 정지된 것처럼. 그러나 그 고요 속에서도 내 몸과 마음은 쉼 없이, 나를 살리고 있었다.
몸이란, 내가 가장 가까이 두고도 너무 오랫동안 잊고 지낸 살아 있는 생명이었다. 그저 나를 위해 존재하며 살아주던 이 몸에게 이제야 처음 사랑을 배우듯, 조용히 쓰다듬어본다. 시험관 하느라 애썼던 나의 난소에게, 나의 건강을 지켜주었던 난소에게 슬픔보다 먼저 떠오른 건, 감사였다.
난소가 내 몸에 있었을 때, 나는 단 한 번도 그 존재를 제대로 바라본 적이 없었다.
잃고 나서야 비로소 전해지는 고백이 있다. 그것은 진심이 처음으로 닿는 가장 조용한 첫 번째 순간이었다. 나는 그 상실의 자리에 다가가 조용히 말을 건넸다.
“그동안 정말 고마웠어. 아무 말 없이 나를 지켜줘서, 묵묵히 나와 함께 숨 쉬고 살아줘서 고마워.”
손끝에 머문 따스한 온기가 시간을 거슬러 그곳에 닿기를 바랐다. 나는 천천히 숨을 들이쉬며, 그 호흡 안에 진심을 실어, 조심스레 사랑을 건넸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나는 아직 다 깨어나지 않은 몸을 조심스럽게 안아보듯 가슴 위에 손을 얹는다. 따뜻한 숨결 속에 나직한 속삭임을 실어, 내 안의 어떤 마음이 오늘도 나에게 말을 걸어오고 있는지 살펴본다.
아픈 나를 밀어내지 않고, 느리다고 다그치지 않으며, 죄책감의 그늘 속에서도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일.
그건 매일같이 나를 다시 품어주는 연습이었고, 내 안에서 조용히 피어나는 사랑의 시작이다.
그 사랑은 내가 평생 엄마에게서 받고 싶었던 형태의 사랑이었고, 사실은 이미 오래전부터 내 안 깊은 곳에서 나를 품고 있었던 사랑의 원형이었는지도 모른다.
나의 난소는 그저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그 사랑의 에너지는 여전히 다른 방식으로 내 안에 머물고 있었고, 나는 그 자리에서 천천히, 다시 피어나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갱년기의 그림자는 나의 존재 전체를 흔드는 질문처럼 다가왔다.
더 이상 아이를 낳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나를 무력하게 만들었다. 그때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설명할 수 없는 슬픔이 밀려왔다. 여성으로서 무언가를 잃은 건 아닐까 하는 불안 때문에 자주 휘청거렸다.
나는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마주해 보기로 했다. 숨을 고르고,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 두려움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그리고 감정을 마주하며 흘려보낸다.
그 과정을 지나며 알 수 있었다.
아이를 낳을 수 있느냐 없느냐의 아픔은 단순히 개인의 고민으로만 머무르지 않았다. 그것은 인류가 삶을 이어가며 품어온 중요한 질문이었고, 세대를 잇는 길 위에서 누구나 한 번쯤은 마주하게 되는 삶의 무게였다.
여성과 남성이라는 이름 앞에는 언제나 성역할이라는 기대와 기준이 덧붙여져 왔다. 그것은 시대와 문화, 사회 전체가 그 역할을 어떻게 바라보고 이어왔는가와 맞닿아 있었다. 그 흔적은 세대를 이어 흐르는 오래된 기억처럼 스며들어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 기억의 한 조각을 살아내고 있는지 모른다.
인간을 하나의 역할로 가두려는 시도는 언제나 상처를 남긴다. 존재는 역할보다 크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이 그랬다. 출산의 기능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현실은 단순한 의학적 사실을 넘어, 나의 존재를 흔드는 질문처럼 다가왔다.
처음에는 내게 온 이른 갱년기가 상처와 두려움의 무게로만 느껴졌다. 하지만 고요히 마주할수록 그 속에서 다른 결이 드러났다.
두려움이 흘러나간 그 자리에 뜻밖에도 빛이 남아 있었다. 보이지 않던 사랑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 품 안에서 나는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세상을 지탱하는 수많은 사랑들은 기록되지 않아도, 이름조차 남지 않아도, 어딘가에서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마치 숨결처럼.
그리고 그 사랑은 단지 출산이나 유전자의 전달로만 이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삶을 사랑으로 살아내는 태도였고, 몸이 기억하는 고유한 리듬 속에서 세대를 건너 조용히, 전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나 또한, 그 오래된 사랑의 흐름 속에서 나만의 방식으로 다음 존재에게 조용히 진동을 건네고 있었다
갱년기는 단지 멎음이 아닌, 내 안에 숨어 있던 빛을 비추는 전환의 시기였다. 여성 호르몬이 멈춘 자리는, 오히려 새로운 방식으로 사랑을 흘려보낼 수 있는 공간으로 열렸다. 그 빛은 나를 다시 존재의 중심으로 데려왔다. 그리고 여성성은 기능이 아닌 삶을 사랑으로 살아내는 방식이라는 진실을 속삭여주었다.
나는 천천히 나로서의 여성성을 다시 배우고 있다. 그 배움은 내 안의 상처를 돌보는 일에서 시작되어, 사랑을 기억하고 존재를 껴안는 방식으로 자라났다.
사랑은 내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내 안에서 숨 쉬고 있었다는 사실을 진정으로 알 수 있었다.
그 속에서 나는 사랑받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 존재 자체가 사랑이라는 것을,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이미 누군가에게 따뜻한 사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 몸이, 내 마음이, 그리고 고요한 침묵이 천천히 말해주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 나는 감사와 사랑을 배운다.
사랑은 단지 감정이 아니라, 몸과 존재 전체를 통과하는 생명의 진동이며, 그 진동은 때로 한 세대를 넘어, 다음 생으로까지 조용히 전해진다. 오랫동안 주입되어 있던 두려움이 벗겨지고 난 자리에, 말없이 흐르는 생명력의 위대함이 있었다. 그것은 조용히 나를 감싸 안는, 오래된 기억의 품 같았다.
지금의 나는 세상이 정해놓은 ‘여성스러움’의 틀 대신, 내 안의 고유한 리듬과 지혜를 따른다. 마음의 연결과 삶을 어루만지는 감각으로, 나는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내 여성성을 다시 만난다.
여성성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삶 속에서 다시 선택되고, 그 선택 속에서 새롭게 피어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