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을 알리는 글
세계여행이 끝나갈 때쯤
여행 이야기를 책 한 권에 담아 보자는
제의를 받은 적이 있다.
당시만 해도 서점 여행 코너에
내 또래(?) 되어 보이는 젊은 청년들의
여행 책은 이미 충분했다.
대부분의 여행책이 담고 있는
퇴사-역경-극복-깨달음-여행정보와
같은 똑같은 레퍼토리에서
나 또한 크게 다를 수 없을 것 같았다.
똑같은 건 싫은데 특별한 건 없고
특별하려고 쥐어짜다 보면
재미가 없어진다. 그래서
안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세계여행을 하면서 내가 가장
잘한 것들이 있다.
유럽에서 여행하는 동안 네이버에
여행기를 1주일에 한 개씩 연재했고
아프리카 5600km 횡단하며
12편의 일기를 기록했다.
치앙마이에서는 두 달 동안
거의 매일 일지를 기록하다 보니
50편이 넘는 일지가 저장되었다.
현지에서 전달하는 이야기는
생동감 때문일까
다음과 네이버 메인에도 걸리고
접속자가 폭주하는 것도 경험해보았다.
세계 여행하면서 쓴 일기장 두 권은
배낭 속에 여권 다음으로
가장 소중하게 여긴 물건이었다.
영상으로 남긴 나의 여행기들은 지금도
나의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만들어
그때의 추억들이 지금의 나를 살아가게
만들기도 한다.
기록을 멈추지 않은 것.
돌아보니 당시엔 글 몇 자 기록할 뿐이지만
기억의 자산에 직인 찍는 행위였다.
세계여행이 끝나고 카페를 운영하며
2호점까지 '나름' 성공적으로 레이스 중인
나는 이 순간 또한 기록해야 한다는
갈증을 자주 느껴왔다.
일에 치이고 몸이 힘들지만 짧은 한 줄이라도
기록해야 사업 초반의 나의 젊음과 뜨거웠던
열정들을 되새길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재밌지도 않고 영양가가 없을지라도
나의 운영 철학과 카페 사장의 소소한 일상이
여행기가 예비 여행자들에게 도움이 되었듯
소수의 누군가에게 작은 보탬이 되기를 바라본다.
그렇다고 누군갈 또 의식해서 쓰지는 않고 싶다.
최근의 일기장을 조금 작은걸 샀더니
할 말을 다 못쓸 때가 종종 있다.
일기장에 못다 한 이야기를 조금 더 메모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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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