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의 인터뷰 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한강 시집, 문학과 지성사, 2023.11.15.
세세한 설명을 덧붙이지는 않았지만 한강은 한 인터뷰에서 소설의 인물로 미술가를 자주 호출하는 이유에 대해 “언어에 대한 고민 때문에 미술에 매력을 느껴온 건지도 모르겠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단순히 해석하면 말할 수 없는 것에 온전히 도달할 수 없는 언어의 한계 때문에 오히려 침묵의 이미지인 미술에 더 관심을 두게 되었다는 뜻일 수 있다. 언어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말하려는 불가능한 시도를 지속하지만, 그림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침묵한다. 그렇다면 이미 기능어로 전락한 일상어를 통해 그림의 침묵에, 즉 말이 생겨나기 직전의 그 침묵에 도달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최초의 진실된 말을 복원할 방법이 인간에게 있기는 한 것일까. 위의 인터뷰에서 한강은 연달아 이렇게 덧붙였다. “결국 저는 언어를 다루는 사람이고, 오직 언어로 뚫고 나아가고 싶어요. 언어라는 것이 저에게 주는 어떤 고통이 있는데, 그것과 싸우는 게 앞으로 제 숙제가 될 것 같습니다.” 언어가 주는 고통과 싸우는 것, 즉 일상의 언어에 대해 불편한 이물감을 드러내는 것은 최초의 말이 지닌 순수성을 회복하기 위한 최소한의 방법이 될 수는 있겠다. (153p)
해설 | 개기일식이 끝나갈 때_조연정(문학평론가)
2022년 10월, 한강 작가의 시집인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를 읽었다. 좋았던 시들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지만, 그때 해설에 실린 한강 작가의 인터뷰가 미술을 하는 사람인 나에게 큰 인상을 남겼다. 2024년 10월 10일,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며 한강 작가에 관한 이야기로 모든 SNS가 도배되고 있는 시점에서 나 또한 이 인터뷰가 떠올라 다시 찾아 읽게 되었다.
한강 작가의 책을 처음 접한 건 중학교 도서관에서였다. 샛노란 책이 책장에 꽂혀 있어 시선이 박혔고, 제목이 '바람이 분다, 가라'였다. 이소라의 곡 <바람이 분다>가 떠오르기도 하고, 표지에 어떤 디자인 없이 온통 노란색인 점에서 호기심이 일렁였다. 띠지에 그림이 프린팅 되어 있다는 건 책을 구매하고 난 뒤에야 알게 되었다. (내가 읽었던 도서관 책은 띠지가 없었다!)
『바람이 분다, 가라』는 작품은 내게 좋은 의미로 큰 충격을 주었고, 이후로 한강 작가에게 푹 빠지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더 읽었던 책으로는 『소년이 온다』와 『채식주의자』가 있고, 『흰』과 『내 여자의 열매』는 일부 읽다가 말았다. 중학생 때 읽었던 책들이라 자세하게 설명할 순 없지만, 한강 작가의 글은 늘 내게 큰 울림을 남기고 갔다.
시집을 읽고 2022년 10월 14일에 남겼던 메모를 통해 내가 한강 작가를 좋아하는 이유를 설명하고자 한다. (어색한 문장이 있지만 흐린 눈으로...)
내가 왜 한강의 문체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지를 되새기게 되는 시집이었다. 한강의 시를 해석하기 위해서는 흰 종이 위에 인쇄된 글자들을 입 안과 머릿속에서 두세 번 굴려보는 과정이 필요하지만, 그럼에도 그 과정에서 번잡함과 지루함이 느껴지기보다는 놀라운 표현력에 신비로움과 영감만이 다가온다. 언어를 ‘다룬다’는 말에 제일 적합한 사람이 아닐까. 내가 여러 책을 읽어 본 경험이야 물론 적지만, 한강만이 표현할 수 있는 언어들이 좋다. 곱씹게 되고, 침착한 암흑 속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열망들이 좋다. 고요하면서도 무엇인가를 열심히 외치고 있는 공백에 언어들이 나 또한 그 분위기 속에 홀려 들어가게 만든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은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미술대학을 다니며, 이야기 만들기를 좋아하는 나에게도 이번 소식은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예술을 하는 사람으로서 가져야 하는 태도와 마음가짐 등을 다시 되돌아보게 하는 기회였다. 앞으로도 계속 좋은 작품이 나오길 기대하며, 바쁜 일이 지나가면 제일 먼저 한강 작가의 책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