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해져야 할 말을 잘 전하는 기술
2010년 유명한 컨설팅 업체와 일한 적이 있다.
차세대 시스템을 설계하기 위해 TF에 투입된 나는 그 업체와 레거시 시스템 분석을 통해
시스템 설계를 이끌어 내야 하는 업무를 맡게 되었다.
PL 역할을 주로 했지만 그 전에는 개발만 하다 보니, 이미 시스템의 기능이 나온 상태에서 업무를 해왔기에
분석과 설계를 어떻게 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 당시에 주중 시간에는 차세대 시스템을 사용하게 될 사용자 그룹들을 만나 요구사항을 수집하고
레거시 시스템에 대한 소개로 주중 시간을 다 보낸 후
저녁 후에는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문서들을 필요한 문서들로 정리하고 재편집하는 일을 맡으면서
밤샘을 밥먹듯이 하다가 이런 의구심이 들었다.
왜 컨설팅 업체가 해야 할 일을 내가 하고 있어야 하는 걸까..
그들은 스마트하게 분석 장표의 아웃풋을 잡고 샘플 데이터를 하나 넣어준 후
친절하게 내게 부탁했다.
"과장님 이 문서 좀 채워주세요.."
그들도 함께 회의에 들어갔고, 분명 산출물을 내야 할 주체는 그들이건만 그들의 일을 해주는 내가 화가 났지만
또 이러이러하게 작성하시면 돼요..라고 전하면 못 알아들은 척, 바쁜 척 내게 내밀고 사라지는 그들의 일을
또 소처럼 우직하게 해내는 날들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나는 일을 다 해주면서도 이렇게 퉁명스럽고 불친절하다는 소리도 듣고 있는 걸까..
그때 알았다. 그들처럼 논리적인 전달과 완곡한 거절의 표현이 그들에게 전달되었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 후부터 논리적인 사고방식에 대한 책을 여러 권 사서 주말마다 미친 듯 읽어댔다.
결론은.. 감정적인 의사표현은 결국 누구도 좋은 결과를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감정적인 의사를 전달한 나는 아무 일이 해결되지 못해 화가 나고 감정적인 의사를 전달받은 사람은
기분이 나빠지는 결과만 낳을 뿐이었다.
그래서.. 연습하기 시작했다.
논리적인 사고방식과 그 논리에 기반한 사실을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방식을..
그때 그런 연습이 단기간에 효과를 가지진 못했다.
그렇지만 그때 고민했던 것들은 그 뒤로 그리고 지금까지도 커뮤니케이션 능력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논리적인 사고방식에 관한 책은 많으니 그건 생략하고
특히 개발자들이 간과하고 있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에 대해 말하고 싶다.
당신이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전달되어야 할 이야기가 당사자에게 전달되는 것이 목표다.
고객이나 PM과 개발자의 말싸움을 종종 접할 수 있다. 개발자인 내가 들으면 억울한 개발자들의 나름 논리적인 이유를 알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게 무척 감정적으로 느껴지게 만드는 것이 문제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사실문제를 만들고 싶지 않은 개발자들의 안전주의도 문제의 원인이기도 하다.
그렇게 해봐야 돌아오는 결과는 개발자의 기분만 상한채 고객의 요청대로 할 건 다해주고 불친절한 개발자였다는 오명만 남을 뿐이다.
개발자들에게 해주고픈 이야기가 있다.
1. 부정적이지 마라. - 이미 개발자인 당신이 고객의 요청을 들었다면 위에서 하고자 하는 협의는 대충 끝이 났다. 당신이 안된다고 반발해봤자 업체 간 조직 간 찍어 누르기의 결과만 부를 뿐이니, 요구사항을 친절히 다 들어라.
그리고 그 일이 정말 안된다면, 안 되는 이유에 대한 명확한 근거 제시 및 대안을 2,3개쯤 만들고 제시해라.
2. 기술에 뒤처지지 마라. - 새로운 언어를 배울 필요까지는 아니어도 현 흐름이 어떤 지 기사라도 읽어 키워드라도 읽는 노력을 해라. 고객은 개발하는 사람이 아니고 개발사 입장에서 보면 기획업무에 가깝다. 그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에 대한 키워드를 듣고 개발사에 찔러본다. 또는 고객들이 똑똑한 경우도 많다. 그런 그들에게 단순히 안된다는 단어로는 얻을 수 있는 것이 없다.
3. 답정너에 흥분하지 마라. - 얘기를 하다 보면 듣지 않고 본인의 요청만 강요하는 사람이 꽤 많다. 개발자들은 대화를 하다 혼자 흥분하곤 하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 듣고 넘겨라. 넘겨도 또 오면 본인의 결정권자와 본인에게 메일로 남겨달라고 해라. 그 메일에 그 일이 될 수 없는 근거를 그 위 결정권자에게 알려주고 지시대로 하거나, 지시권자에게 알린 후 근거를 보내라. 그리고도 반복되면 이슈가 자동으로 만들어진다. 그걸 개개인의 위치에서 열 낼 필요가 전혀 없다. 괜히 고객을 화나게 해서 을인 개발사가 어쩔 수 없이 해줘야 하는 부작용이 생길지도 모른다.
4. 본인의 눈높이가 아닌 상대방의 눈높이에 맞춰라 - 자바를 모르는 사람에게 자바의 기능으로 설명하지 마라. 그럴 필요도 없고 시간 낭비다. 그 사람의 수준에 알맞은 비유를 들어줘라.
물론 이 얘기들이 하루아침에 잘 되지는 않지만 연습하다 보면 어느덧 점점 더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