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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성 Aug 16. 2018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양성과 개성이 존중되는 건축"

어디서 살 것인가 (by 유현준)


전작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재밌게 읽어서 이번에도 기대하는 마음으로 읽었다. 그의 글은 건축을 건축으로만 보지 않고 통섭의 시각으로 풀어내서 흥미롭다. 몇십 년 간 변하지 않는 학교의 건축 형태가 아이들의 창의성과 다양성을 파괴하는 원인이라는 점에서 공감했고, 런던의 세인트폴 성당과 테이트 모던을 밀레니엄 브릿지로 이은 것처럼 서울숲과 압구정 로데오를 연결해야 한다는 주장은 과감성이 엿보여 좋았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초반부의 무릎을 탁! 하고 칠만한 글들과 달리 후반부로 갈수록 힘이 떨어진다는 것.  



#기억에 남기고 싶은 문장 


경계의 모호성은 기계와 인간의 구분에서도 드러난다. 유발 하라리는 과거에는 모든 것이 인간 중심이었다면, 오늘날은 동물을 인간과 비슷한 급으로 바라보는 가치관이 지지를 받는다고 말한다. 오늘날 사람들은 동물을 우리에 가두는 동물원을 비판하고 동물의 권리도 주장한다. 하라리는 이러한 동물의 권위 상승을 인공지능의 발달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과거 인간은 동물 중에서 가장 뛰어난 지능으로 동물과 차별화되는 의미를 가졌다. 하지만 지금은 인공지능이 퀴즈 게임이나 바둑에서 인간을 이기는 시대가 되었다. 인간은 더 이상 지구 상에서 가장 똑똑한 동물이라는 독보적인 자리를 지킬 수 없게 되었다. 인공지능은 지능으로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위치했던 인간을 지금의 자리에서 끌어내려 동물과 같은 계단에 서 있으라고 말한다. 인간은 지난 수십 년간 인간의 존엄성을 확보해 주었던 종교의 권위도 없앴다. 인간은 점점 동물과 동등해져 가고 있다. 그래서 인간들은 동물이 된 자신들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동물의 존엄성을 높이고 있다는 이야기다. (p.82)
 


아시아에서 최초로 지어진 백 층 넘는 초고층 건물은 대만의 ‘타이베이 101’이다. 중국이 개방하면서 경제대국으로 치고 올라오자 이에 불안감을 느낀 대만은 초고층 건물을 지었다. 이에 질세라 중국은 지금 도시마다 하나씩 초고층 건물을 짓고 있다. 중동에서도 초고층 건물을 처음으로 지은 국가는 가장 정치력이 약하다고 평가받던 두바이였다. 마찬가지로 초일류 기업은 초고층 건물을 짓지 않는다.  이런 정황을 보아 추측하건대, 피라미드를 지은 이집트의 파라오는 근방의 메소포타미아 제국들을 두려워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중국의 진시황제가 만리장성을 지은 것은 자신이 오랑캐라고 폄하하던 북방 민족들을 실제로는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p.180) 



영국은 1696년부터 난로세를 폐지하고 창문세를 도입했다. 유리창은 제작하기 비싸기 때문에 집에 창문이 많으면 부자일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유리창의 숫자에 따라 세금을 징수했는데, 여섯 개까지는 면세였고, 일곱 개부터 차등적으로 중과세를 매겼다. 이러한 제도는 주택세가 나오기 전까지 150년 동안 시행되었다. 창문세를 시행하던 시기에는 세금을 적게 내기 위해 창문을 없애고 벽으로 만드는 일도 생겨났다. 창문이 없으니 채광과 통풍이 안 되어 위생이 나빠지고 전염병이 돌기도 했다. 또한 시민들은 햇볕을 받지 못해 우울증을 앓기도 했다. (p.255) 



지붕은 하늘과 건축물이 만나는 면이다. 문화와 시대에 따라서 이 지붕의 모양은 다르다. 우선 지붕의 모양은 기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건축물은 지붕이 평평하다. 이 지대는 건조 기후대다 보니 굳이 비를 의식해서 경사 지붕을 만들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강수량이 늘어날수록 지붕의 기울기는 급해진다. 우리나라보다 비가 더 많이 내리는 동남아시아 건축물의 지붕을 보면 훨씬 더 기울기가 급하다. (p.341)

 


건축이 다른 예술과 다른 큰 차이점은 가장 근본적인 자연법칙인 ‘중력’을 이겨 내려는 인간의 노력을 보여 준다는 점이다. (p.352) 



우리나라에 지금 더 필요한 건축은 빌라 사보아 같은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건축이 아니라 다양성과 개성이 존중되는 건축일 것이다. 지금같이 주택의 가치가 주택 가격으로 결정되는 것은 마치 학생들을 성적순으로 줄 세우는 것과 마찬가지다. 모든 사람은 세상에 한 명뿐이기에 모든 사람의 인생은 각각 가치가 있고 중요하다. 마찬가지로 내가 사는 집이 있는 땅은 타 장소와 다른 색을 가진 세상에 하나뿐인 장소다. 그래서 내가 사는 집은 그만의 고유한 가치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그에 맞게 각기 다르게 디자인되어야 한다. 그래야 물질 중심적인 건축 가치에서 벗어날 수 있다. 빌라 사보아 같은 집보다는 낙수장 같은 집들이 많아져야 한다. (p.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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