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은퇴 후 거제로 이사 왔다.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 “왜 거제로 가셨나요?”였다. 답은 간단하다: "새로움으로 벅찬 기분이 드는 곳이었고, 우리가 찾던 조건에 딱 맞았기 때문"이다. 2021년 초, 코로나로 전 세계가 혼란스러울 때 나는 원래 2025년 3월에 은퇴할 예정이었지만, 그 시기를 3년 앞당겨 조기 은퇴를 결정했다.
가장 큰 문제는 은퇴 후 어디에서 살 것인가였다. 고향인 한국, 특히 서울이나 가까운 근처 도시에서 사는 것이 가장 먼저 떠오르긴 했지만, 남편의 약한 호흡기 때문에 다시 살기 어렵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게다가 젊은 시절의 설렘으로 이미 오랜 기간 서울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서울이나 대도시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망설여졌다. 다음으로 고려했던 곳은 익숙한 도쿄와 친구들이 있는 일본의 다른 도시였다. 일본은 외국인이 살기 편한 사회였고, 그동안 살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아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집을 보았다. 하지만 코로나에 대한 일본 사회의 대처 방식과 디지털 기술의 느린 적용, 그리고 낡아가는 빈집들을 보며 일본에서 사는 것에 대한 즐거운 기대가 많이 사라졌다. 참고로 일본은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30%에 육박하고 출산율도 1.3 정도로 계속 줄어들고 있어 빈집 (空家, 혹은 Akiya)이 900만 채 이상이 있다고 한다. 실제로 돌아다니던 중 도쿄 외곽에도 빈집이 쉽게 눈에 띄어 심각함을 느꼈다. 한국 역시 이러한 문제들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지만.
다음 선택지는 미국이었다. 아이들과 가족들이 있는 미국의 여러 도시를 살펴보고, 친구들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그 결과 미국은 나이가 들면 살기 어려운 곳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첫째, 병원 서비스받기가 어렵고 비용이 비싸다는 점, 둘째, 집값이나 생활비가 우리가 받을 연금으로는 빠듯하다는 점 때문이었다. 이런 이유로 미국도 선택지에서 제외되었다. 우리는 미국과 일본에 친구들이 많고 쉽게 친구를 사귀는 편이라 큰 걱정은 없었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 또한 큰 문제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일본과 유사한 인구 감소와 빈집 등의 문제가 있지만, 의료 보험 체제가 좋고 마음이 가는 한국으로 이사하기로 결심하였다. 가장 먼저 서울이나 그 주변 도시들을 떠올렸다. 하지만 이제 직장에 다니지 않으니 굳이 큰 도시에 살아야 할 이유는 없었다. 아이들은 이미 독립적으로 잘 살고 있고, 친척들도 각자 자리를 잡았으니 우리만 잘 지내면 되는 상황이었다. 큰 도시는 공기도 안 좋고 소음도 많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은퇴 후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감이나 설렘이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누군가는 기대가 행복을 죽이는 것이라고 하지만, 나에게는 미래에 대한 기대와 설렘이 언제나 희망을 주고 행복을 가져다주는 역할을 했다. 물론 불확실성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있었지만, 이는 삶의 원동력이 되는 긍정적인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래서 나는 은퇴 후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와 설렘을 줄 수 있는 곳을 꼭 찾고 싶었다.
다행히 코로나가 시작되기 전에 서울에서 은퇴한 남편이 도쿄로 와 있어서, 함께 유튜브로 한국 부동산 영상을 찾아보았다. 정말 놀라운 것은 서울뿐만 아니라 다른 대도시, 중소도시, 심지어 외딴 마을까지도 유튜브 영상으로 거의 다 둘러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부동산 중개도 영상 통화로 이루어져, 매물을 비디오로 보면서 중개인에게 질문도 할 수 있었다. 여러 지인들의 추천으로 강릉, 속초, 춘천 같은 강원도 지역, 양평, 여주 등 경기도 지역, 여수, 남해 같은 남부 지방도 둘러보았다. 내가 좋아했던 통영도 살펴보다가 그 옆에 있던 거제도가 눈에 들어왔다.
우리가 원했던 조건은 꽤 명확했다. 우선, 공기가 좋고 소음이 없는 곳이어야 했다. 또, 바다와 산이 함께 있는 동네를 원했다. 서울보다 따뜻한 기후, 인구가 급격히 줄지 않는 지역,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사는 동네, 음악회나 미술관이 있어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곳이 필요했다. 규모가 적어도 영화관과 백화점이 하나쯤은 있어야 하고, 재래시장이 서는 곳이면 더 좋았다. 또, 골프장이 가까워야 했고, 큰 도시에 너무 멀지 않으면서도 비행장이 가까운 곳을 원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쿠팡이나 이마트 등 온라인 마켓 이용 시 배달이 가능한 곳이었다. 이렇게 보면 조건이 많아 보일 수 있지만, 우리에게는 현실적인 요구였다. KTX 역이 가까운지 여부는 우리 생활 패턴에서는 그다지 중요한 요소는 아니었다. 전원주택도 고려했지만, 도쿄에서 살아본 경험을 바탕으로 편리함을 우선시하기로 했다. 전원주택은 관리가 어려웠고, 작은 뒷마당 하나도 가꾸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에, 하자 등 여러 문제점이 지적된 바 있으나 한국의 자랑인 편리한 아파트를 선택하기로 결정했다.
빙고! 거제도가 우리의 조건에 딱 맞았고,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가 바로 그 선택이었다. 산 중턱에 위치해 멀리 바다가 보이고, 바로 옆에 골프장이 있는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나에게는 첨단으로 보이는 아파트였다. 버튼 하나로 집안의 전등을 다 끄고 나갈 수도 있고, 멀리에서도 방방마다의 온도를 조절할 수 있으며, 열쇠고리에 집 현관문을 여는 열쇠와 연구실 열쇠, 차 열쇠 등을 무겁게 달고 다녔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점 등 여러 가지가 놀라웠다. 방문한 친구들은 이런 것쯤에 뭐가 그리 놀라냐는 표정을 지었고, 요즘 지어진 아파트는 훨씬 더 편리하다고 하였다. 나로서는 적어도 십수 년은 뒤처진 사회에 살다 온 듯한 느낌이었다. 한국의 발전이 일상에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고나 할까.
거제의 우리 아파트는 남편의 소망대로 산 중턱 편백나무 숲 옆에 자리 잡아 공기도 맑고, 서울보다 산소 포화도가 높았다. (사진 1 참고) 서울 지역 공기의 산소포화도가 20.5%였는데, 우리 동네는 21.2%로 훨씬 쾌적했다는 것을 나같이 둔한 사람도 금방 느낄 수 있었다. 예전에 살던 집에서는 창문을 열어도 실내 이산화탄소가 700 ppm을 넘어 1,000 ppm정도까지도 갔지만, 여기선 420ppm 정도였다. 이렇게 공기 좋은 산 중턱에 있으면서도 골프장과 맞대어 자리 잡고 있어 밤에도 야간 경기를 위한 불빛이 훤하게 비취고 외부 차량도 많아 왠지 도심에 있는 기분이 들었다. 밤에는 너무 깜깜하여 적막하지 않을까 했던 걱정은 기우였다. (사진 2 참조)
거제는 조선 산업이 있어서 그런지 다른 도시들에 비해 인구가 천천히 줄거나 오히려 조금 증가하는 경향이 있었다. 2024년 기준, 23만 명이 넘는 인구 중 외국인이 1만 4천여 명 살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서울이나 몇 대도시를 제외하면 꽤 다양성이 많은 지역이라고 생각된다. (거제시청 자료). 외국인은 베트남, 우즈베키스탄, 인도네시아, 네팔, 스리랑카, 일본, 중국 등 아시아 국가 출신이 많지만, 가나, 나이지리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네덜란드, 그리스, 프랑스, 헝가리, 노르웨이, 덴마크, 독일, 러시아,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미국 등 다양한 나라에서 온 사람들도 있다. 거제 옥포라는 동네에는 외국 음식 전문 식품점과 다양한 국적의 음식점들이 있어 음식 선택의 폭도 넓다. 우리가 좋아하는 이탈리아 피자와 파스타, 프랑스 요리점, 베트남 요리점, 인도 요리점 등이 있어서 거제 통영의 생선과 한식에 더한 기쁨을 주었다. 옥포는 서울의 이태원과 유사하다고 하여 "옥태원"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우리 아파트 단지는 국적은 대부분 한국인이지만 다양한 연령대와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산다. 내가 아는 사람들만 보더라도, 20-30대 혼자 살거나 파트너와 사는 젊은이들, 아기나 어린아이를 키우는 부부, 그 부부들을 도우러 온 할머니, 할아버지들, 2-5명의 아이를 키우는 다자녀 가정, 대도시에서 힘들게 일하다가 쉬러 온 중년 부부, 완전히 은퇴한 사람들, 치료를 위해 온 부부, 호주, 인도네시아, 영국에서 온 가족들 등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특히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온 한국계 미국인 가족이 10쌍 정도 된다는 것도 흥미로웠다. 아파트 내에는 공용 스포츠센터와 사우나가 있고, 반려견을 기르는 가정이 많아 산책 중이나 공용장소에서 이웃과 자연스럽게 인사할 기회도 많다. 때로는 이웃들과 차를 마시거나 식사를 하기도 한다. "우리 동네 정말 좋죠?" 하며 인사를 시작하는 이웃들이 적지 않은 것도 놀라운 풍경이다.
우리가 통영에 가까운 거제에서 가장 즐기는 것은 세계적인 수준의 통영 국제음악당과 작은 갤러리들이다. 지난 2년 동안 통영 국제음악당에서 임윤찬의 피아노 연주를 세 번이나 들을 수 있었다. (사진 3 참조) 서울보다 표 구하기도 훨씬 쉽고 저렴하기까지 하다. 부산도 그리 멀지 않아 서울은 물론 일본, 동남아로 가는 비행기 이용도 편리하다. 가끔 일본 음식을 먹고 싶으면 부산 김해공항에서 후쿠오카까지 40분 만에 날아갈 수 있다. 거제 시내 쪽에는 화려하진 않지만 백화점과 영화관도 있으며, 대형 슈퍼마켓과 함께 5일마다 열리는 재래시장도 있어 흥미롭다.
관광지답게 멋진 카페들이 바다 근처에 많아 비가 오는 날이나 날씨가 좋은 날에도 항상 갈 곳이 있다. (사진 4 참조) 시내에는 스타벅스와 폴 바셋도 있고, 관광지이지만 제주도나 경주, 강릉처럼 그렇게 복잡하지 않다. 글 쓰고 있는 옆에서 남편이 너무 자랑하지 말라고 한다. 사람들이 더 많이 이사 오면 복잡해진다고. ㅎㅎ
이삿짐 업체, 커튼 및 가구 업체, 가전제품 애프터서비스 센터 등이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르고 효율적이었다는 점에 깜짝 놀랐다. 한국의 온라인 마켓(특히 쿠팡과 이마트!) 및 다른 가게들의 전체적인 배송 및 서비스 시스템의 효율성에도 감탄했다. 이사 온 지 일주일 만에 새 집 정리가 모두 끝난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빨랐다. 도쿄에서 살면서 예약을 먼저 하고, 그 이후에 천천히 진행되는 아날로그식 삶에 익숙했던 나로서는 정말 놀라운 기쁨이었다.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아마도 제가 '왜 거제에 살게 되었는가'에 대한 궁금증이 어느 정도 해소되었으리라 생각하며, 오늘의 이야기를 마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