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작별인사

by 강선미

디스토피아형 소설들은 보통 몇십 년 후에 얼마나 닮은 미래를 그려냈느냐로 포커싱 되어 재조명받는다. 책의 가장 마지막 페이지, 마지막 줄이라서 울림이 남는 "인간의 정체성이라는 것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간단하지 않다. 얼마나 위태로운 믿음 속에서 우리는 가까스로 살아가는 걸까."와 과학도이기에 기억하고 싶었던 "과학은 언제나 그랬어. 상상한 것은 결국 다 현실이 돼."의 두 문장은 미래 유사도보다는 존재 자체에 대한 사유를 하도록 감화하는 듯했다.


유전자 지도로 인간 전부를 알 수 있다고 오만하게 연구하던 근 과거~현재에도, 감정 메커니즘을 완벽하게 데이터화해서 클라우드에 백업할 근미래에도 결국 과학이 밝혀낼 수 없는 큰 한계 두 가지는 탄생 이전과 죽음 이후, 결국엔 존재론의 영역이다. 어찌 보면 "수억 년간 잠들어있던 우주의 먼지가 어쩌다 잠시 특별한 방식으로 결합해 의식을 얻게 되었고, 이 우주와 자신의 기원을 의식하게 된 거야."라는 인문학적 설명이 대체 불가능하며(증명이 불가능하니) 유일한 이론인데, 모두가 극복할 수 없는 유한한 시간 속에서 판단의 근거는 늘 카오스인 감정과 뒤섞여 불순물이 되어버린 이성이 찾고 있으니 끊임없는 고민은 인간이 해야 하는 당연한 일일 것이다. 고3 때 접했던 하이데거의 '던져진 존재로서의 인간'이 매 해 보충적으로나마 이해되는 기분이랄까. 똑같이 감정이라는 주제로 쓰인 세계 3대 디스토피아 <멋진 신세계>와 결론은 비슷하지만 거북함이 훨씬 덜해서 더 피부로 와 닿는 소설이었다.


소설 전체를 관통하면서 '비슷한 것은 가짜다'라는 말을 반복하되 절대 정정하지 않는다.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사이비(似而非)를 한글로 풀어쓴 것이라고 했으나 사실 한자 뜻으로 풀이하면 '비슷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아주 '다른 것''이라는 뜻이 아닌가. 가짜라는 수식어는 그 반대어인 진짜와 자연스럽게 가치 우위를 형성해 주인공 철이가 느끼는 감정이 진정한 것인지 혹은 완벽하게 수치적 계산에 따른 결과물인지 끊임없이 의문하고 종내 불편하게 만든다. 주인공 선이를 등장시켜서는 인간이라는 것은 고귀함의 척도도, 윤리적 수준의 보증도 될 수 없다고 상반되는 소리를 하는데 거기서 묘한 거부감을 느끼는 스스로의 모순에 기가 막혔다. 인간이어서 안심한다는 말은 인간을 무의식 중에 먹이사슬 수직구조의 가장 위에 위치시켜 우월의식을 품고 있다는 뜻이다. 뇌만 바꾸지 않은 사이보그는 인간인데 AI에 유기체 몸을 이식받은 그 어떤 존재는 인간 대접조차 받지 못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 나의 주관이고, 분명한 것은 비슷하게나마 아종의 분류체계에 들어가게 될 휴머노이드들과 파이 싸움을 할 때 인간에게 더 이상 '신의 창조물' 플롯을 대입해서는 심적 위안 외의 어떠한 실질적 보상도 주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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