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닿을 뜨거운 공기의 기억
이제 조금 컸다고 때목욕을 할때가 되었나, 따뜻한 물에 한참 목욕 놀이를 즐긴 아이의 몸을 수건으로 말리는데 수건이 지난 자리로 뽀얀 때가 밀렸다. 아이는 당황스럽고 놀란 눈치다.
“엄마, 이게 뭐야?”
미간을 찌푸리며 물어 오는 아이의 모습에 웃음이 터졌다.
“때야, 때.”
“때?”
“응, 필요 없는 피부 껍질이 떨어져서 나오는거야.”
어릴적 엄마와 동생과 다녔던 공중목욕탕 생각이 스쳤다. 어린시절의 기억은 원초적이며, 때문에 무언가의 원형이 된다. 내게 때목욕은 뜨거운 공기다. 엄마의 빨갛게 달아오른 뺨과 지친 눈, 뜨겁게 달아오른 피부에 촉촉히 달라 붙던 따뜻하고 습한 목욕탕 기운으로 가득찬... 엄마와 개구쟁이 이미지의 내 동생이 함께 살아있는 그 기억에는 어두침침하지만 부분적으로 매우 명료하며, 열탕에 수도하듯 머물다 냉탕에 결연히 들어가는 어느 벌거벗은 이미지들이 섞여 있다. 먹먹히 울리는 소리 가운데엔 열심히 때밀던 때밀이 아주머니의 씩씩함도 빠지지 않는다. 모두가 저마다의 어떤 의식 가운데 살고 있다는 느낌. 때목욕이라는 단어에 가슴 깊이 뜨거운 공기가 섞인다.
꽉 찬 호흡과 백열등 조명으로 집약된 첫 기억 안에서 나는 내 살을 엄마의 초록 때수건에 맡기고 많이 뜨겁다. 내 몸 하나 때수건 아래 두기가 쉽지 않은데, 엄마는 나와 내 동생 둘, 그리고 당신의 몸까지 빡빡 깨끗하게 하느랴 분주했다. 어렸지만 엄마는 얼마나 피곤할까,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더랬다.
목욕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엄마는 “피크닉 주스”를 사주곤 했다. 그 주스의 맛은 정말 충격적일 정도로 좋았는데, 내 몸의 개운함을 그 달콤한 주스가 증명하는 듯했다. 노곤한 몸에 퍼지는 새콤달콤한 주스의 맛이란! 이사와 함께 공중목욕탕을 졸업한 후론 그 주스 맛을 보질 못했는데, 훗날 성인이 되어 우연히 그 주스를 발견하곤 반가움에 목을 축였다가 대단히 실망했던 기억도 있다. 때목욕의 첫 기억, 어린 기억이 그렇게 지나고 나자 내 눈 앞에 제 몸을 맡기고 있는 아이의 발간 얼굴이 보인다. 아직도 때의 존재가 편치 않은 눈치.
딸 아이에게 때목욕은 어떤 기억으로 남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가능하다면 그것이 좋았으면 좋겠고, 더 나아가 나와의 어떤 끈끈한 정으로 각별한 무언가가 되었으면 좋겠다.
해서 이번 주말 딸아이와의 때목욕을 계획한다. 달콤한 주스도 하나 알아보고 박박 아이의 할머니와 나를 문지르던 초록 때수건도 인터넷에서 찾아 보여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