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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콕 중 통역사 Oct 22. 2021

나의 반쪽

10. 나를 완성시키는 존재

철학자 플라톤의 '향연'에서 희곡작가인 아리스토파네스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풀어내며 사랑을 규정했다.

 

원래 인간은 두 명이 붙어 공존하던 완벽한 모습이었는데 이를 시기한 제우스가 반으로 가른 거라고. 그렇게 반쪽이 된 인간은 잘려나간 자신의 반쪽을 끊임없이 찾아다니는데, 여기에서 오는 원초적 본성과 욕망이 바로 사랑이라고 아리스토파네스는 보았다.

신화적 이야기는 터무니없게 들리기도 했지만, 나의 반쪽을 찾고 싶어 하는 욕망이 사랑이라니 한편으로는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며 공감되었다.


남편과 보낸 5년간의 연애시절, 나는 이 지구의 모든 것을 잡고 있는 힘, 중력 그 자체가 되었다. 연애의 기본인 '밀고 당기기'에서 내가 밀기라도 하면, 이 지구의 모든 생명이 우주 밖으로 떨어질세라 자존심도 버리고 영차영차 당겼다.


아니 다시 보면, 남편이 나에게 있어 중력이었다. 그 힘의 영향권에서 살짝만 벗어나면, 지독한 어둠에 빠질 것 같은 생각에 남편에게 딱 붙어 사랑과 관심을 끊임없이 갈구했다.

공주들이 나오는 옛날이야기를 보면, 사랑을 완성시키는 것은 "결혼"이다. 그리고 나도 결혼을 통해, 더 이상 반쪽을 찾아다니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는 완벽한 인간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혼을 했어도 나는 꾸준히 남편의 사랑과 관심을 필요로 하며, 공허함과 외로움과 슬픔 등의 부정적인 감정들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여전한 반쪽자리 인간이었다. 이때쯤에는 나도, 모두가 씁쓸한 표정으로 말하는 "어차피 인생은 혼자야"라는 말을 주문처럼 되뇌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아리스토파네스가 말한 "두 명이 붙어 공존하는 완벽한 모습"이 되었다. 거울로 비치는 내 모습은 아주 볼록해진 배를 제외하고는 똑같아 보였지만, 가슴에는 두 개의 심장이 뛰는 그야말로 두 명이 한 명으로 붙어 있는 꼴이었다.

10개월 후, 작은 심장은 나로부터 갈라져 나와 전혀 다른 새로운 인간이 되어 자라나고 있지만, 그 덕분에 나는 엄마가 되었고 눈앞에서 나의 반쪽을 확인할 수 있었다.


관심과 사랑을 끊임없이 갈구하던 나의 채워지지 않는 그 감정은, 이 반쪽과 함께할 때 사라진다. 내 가슴 한가운데 놓인 우물은 해가 뜨거운 날에는 바닥을 보이곤 했는데, 아기가 태어나고 난 후 이 우물은 퍼내도 퍼내도 물이 흘러넘치고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우물이 되었다.


이렇듯 자녀는 부모를 완벽한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반쪽인 것이다.

나도 우리 부모님에게 그러한 반쪽이었겠지. 아니, 난 지금도 소중한 반쪽이겠지.


반대로 나에게 부모님은 나를 비추는 하늘이자 내가 딛고 설 수 있는 땅이다.

아기를 낳아 엄마가 된 지금도 나는 보듬어주는 부모님의 손길이 필요한 자녀라는 사실에는 변화가 없으므로, 훗날 아빠 엄마와의 이별을 상상만 해도 하늘이 꺼지고 온 세상의 땅은 갈라져 사무치는 설움이 마음속에서 메아리친다.


하지만...

하늘과 땅을 잃어 돌아갈 곳이 사라지게 된다고 해도 내 가슴엔 끊임없이 물이 샘솟는 우물이 있다.

나의 갈증을 채워주고, 나를 완벽히 만들어주며 동시에 나를 필요로 하는 존재.

나를 하늘과 땅으로 여기고 바라보는 존재가 생긴 것이다.


누가 뭐래도 나는 내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할 이유가 있다.








아가야


세상이 너에게 차가울 땐 따뜻한 해를 내보내고

마음대로 일이 풀리지 않아 화가 날 땐 살랑살랑 바람을 불어주고

마음껏 울고 싶은 날 네 눈물 가려줄 비를 뿌리는 하늘이 되어주마.


힘들 때 비빌 수 있는 높은 산을 세우고

넓게 뻗은 나무 그늘 아래 네 쉴 자리 마련하고

기름진 토양이 낳는 풍요로운 작물로 배를 채워주며

흔들림 없이 견고하게 널 받쳐주는 땅이 되어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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