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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를 보면 마음이 편해지는 사람

스타벅스는 닥터스트레인지의 생텀이다

by 캐롤

"너는 스타벅스에 가자고 할 것 같았어."


대학생 때 한 친구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응? 내가 그렇게 스타벅스만 가자 했었나? 약간 억울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너한테는, 스타벅스가 어울려."


이건 대체 무슨 의미일까. 그 말을 이해하려고 애써본 적은 없지만 내가 스타벅스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인지할 수 있었다. 2000년대 이른바 된장녀 밈을 딛고도 건재히 20년을 버텨온 스타벅스.


스타벅스와 나의 첫 만남은 타겟에서였다. 내가 살던 아이다호주의 작은 소도시엔 타겟이란 마트가 드물었다. 어느 날 호스트 가족과 나는 타겟에 갈 일이 있었고, 그곳에 입점해 있는 스타벅스를 본 아줌마는 이왕 왔으니 음료 한 잔씩 주문하라고 권했다. 그곳에서의 스타벅스는 정말 "귀한" 곳이었다.

음료는 고르라는데, 메뉴판을 보니 읽히기는 하는데 도통 모르겠는 이름들뿐이었다. 아메리카노는 뭐고 마키아토는 뭐며, 사이즈 체계도 난해했다. 톨, 그란데, 벤티. 2005년 중3의 나는 스몰 미디엄 라지가 아닌 톨 그란데 벤티의 체계를 알 수 없었다.


"I'll just get a hot chocolate."

사실상 내가 유일하게 뭔지 알겠는 음료를 시키자마자 호스트 아줌마에게 쿠사리를 먹었다.


"What? You are getting a hot chocolate at a Starbucks?"

… 스타벅스에서 핫 초콜릿을 먹는 게 뭐가 어때서. 지금도 가끔 스타벅스에서 시그니처 핫 초콜릿을 시킬 때마다 아줌마의 쿠사리를 떠올리곤 한다.


1년 뒤 2006년 미국 워싱턴주 어느 소도시, 내가 다니던 학교 바로 옆에는 스타벅스가 있었다. 특별히 상권이랄 것이 없는 회색빛 suburb 어느 동네에 학교 바로 옆, 단층의 작은 스타벅스 단독 건물이 있었다. 요즘 종종 보이는 드라이브 스루 스타벅스처럼 동네에 아담하게 혼자 있는 스타벅스인데 DT는 아닌… 다른 수업으로 이동하는 10분의 시간 사이 스타벅스에서 음료를 사 오는 학생도 있을 정도였다.

스타벅스 가려고 점심때 나가는 거 가능? 당연히 가능했다.

이것의 부작용이 있었다면… 철도 개념도 없는 고딩들이 스타벅스에 가서 물을 얻어 먹는 일이 빈번했다는 것이다. 지금 인심이라면 상상할 수 없지만 그 당시에는 오후 체육시간에 밖에서 신나게 축구를 한 학생들이 땀을 잔뜩 흘리고 스타벅스에 들어가 "Can I get a cup of tap water?"라고 하기만 해도 스타벅스 파트너가 "Sure!"라고 환하게 웃으며 그냥 종이컵도 아닌 찬 음료를 내줄 때 쓰는 단단한 스타벅스 플라스틱 컵에 얼음, 물, 빨대까지 꽂아 주곤 했다.

한두 명이 그렇게 물을 얻어먹고 나니 나중에는 우르르 몰려가서 물을 얻어먹기도 해서 체육 선생님이 정색을 하고 따끔하게 혼내는 것도 봤다.


10학년이었던 그때 나는 나름 고생하며 학교를 다니던 터였다. 내가 머무르는 집의 사정이 좋지 않아 라이드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 항상 힘들었고 내향적이라 안 그래도 미국생활을 악으로 버티고 있었다.

학업 난이도는 갑자기 껑충 뛰어서 해오라는 숙제 취지를 이해하지도 못했고, 너무 피곤해서 일단 자고 새벽 3시에 일어나서 다시 숙제하고 공부하다 아침 6시 40분이 되면 집에서 나와 호스트 부모님이 태워주는 차로 7시에 등교했다. 4시에 하교하고 나면 다운타운에 가서 버스를 갈아타고 1시간 20분 걸려 귀가하는 것이 나의 평일 루틴이었다.


지하철이 없는 소도시에서 배차 간격이 30분, 45분, 1시간 등인 버스를 갈아타 가며 하교하는 것은 남는 게 체력뿐인 고등학생이었는데도 고단했고, 버스 안에는 무서운 사람이 많아서 언제나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선생님과 면담이라도 하다 버스를 놓치면 45분 후의 버스를 타야 했고, 그러면 환승하는 버스와도 스케줄이 안 맞아 일정이 망가지기 일쑤였다.


그때의 무전 취수 사건으로 나는 그저 핫 초콜릿이나 가끔 사 먹던 스타벅스를 진심으로 좋아하게 되었던 것 같다. 뭐랄까, 지나가다 목마른 사람이 잠깐 들어가서 물을 달라 해도 싫은 내색은커녕 오케이 하고 웃으며 물을 내주는 그런 인심과 따뜻함에 안도했다. 나 혼자 당당하게 커피 사 먹는 생각도 못 하던 때였는데 말이다.


학교 옆 스타벅스는 요즘 식으로 말하면 중학교 옆 편의점 같은 느낌으로 위안이 되었다. 해가 늦게 뜨는 겨울에는 미처 밝아지기 전 등교해도, 스타벅스 덕분에 난방이 아직 안 켜진 학교 건물에서 떨지 않고 차분하게 아침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매일 바꾸지도 않고 핫 초콜릿을 마셨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미니애폴리스에 대학교를 갔을 때도 이틀 동안 기숙사 밖에 나가지도 않다가 가장 먼저 용기를 내어 찾아간 곳이 캠퍼스 한복판에 있는 스타벅스였다. 3시간이 넘는 공강을 버텨야 하는데 갈 곳이 없을 때도, 마음이 울적해서 일기를 쓰고 싶을 때도, 밤을 꼬박 새고 3일 연속 기말고사를 본 후 친구를 만나러 가던 곳도 스타벅스였다.

그곳은, 스타벅스는 나에게 커피를 파는 휴게실이었고, 자습실이었고, 정류장이었다.


어느 낯선 곳을 가도 스타벅스가 있으면 뭔가 안심이 된다. 스타벅스는 닥터 스트레인지의 생텀 같은 존재다. 세계 어디를 가도 똑같은 분위기가 있다. 나를 받아주고 얼마나 있든 싫은 내색하지 않는 곳, 내가 무슨 우유를 먹든 무슨 시럽을 넣는지 안 넣는지 까탈을 부려도 받아주는 곳이다.

낯선 곳을 가도 스타벅스는 마치 고향의 가게 같아서 똑같은 분위기와 똑같은 서비스와 똑같은 음료를 마실 수 있다. 여러 논란도 많은 곳이지만 하워드 슐츠가 주창했던, 손님이 세계 어디를 가든 같은 톤 앤 매너의 제품과 서비스를 경험하게 한다는 마케팅 원칙은 나에게도 깊이 스며들었다.


프리랜서가 되어 할 일이 있을 때마다 집 근처 스타벅스를 가는 이유는 그저, 안정감과 편안함을 느끼고 싶어서인 것 같다.

지금 이 글? 당연히 스타벅스에서 썼다.


생각해 보면 나에게 스타벅스는 커피를 마시려고 가는 곳이 아니었다. 그곳은 낯선 땅에서 혼자 버티던 10대에게 유일하게 익숙한 공간이었고, 아무도 모르는 도시에서 안도의 한숨을 쉬며 인터넷으로 다음 갈 곳을 찾아볼 수 있는 곳이었다.


미국생활 10년 동안 편한 곳이 없던 나에게 편한 곳은 교회와 스타벅스였다.

"너한테는 스타벅스가 어울린다"고 했을 때, 나는 그 말을 좋아하는 국밥집을 찾아 좋아하는 아저씨 같다는 말로 이해했다. 세계 어디를 가도 똑같은 로고, 똑같은 인테리어, 똑같은 음료를 마실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게는 안도였다.

아, 음료는 대학생이 되고 나서부터는 아메리카노로 바꿨다. 아메리카노가 제일 싸더라.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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