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오늘 기록하는 이유

죽음을 앞두고 있다면 무엇을 쓸 것인가

by 스텔라윤



어제는 교보문고 신간 코너에서 최지은 작가의 에세이 <그렇게 나는 다시 삶을 선택했다>를 만났고 단숨에 읽었다. 9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순간부터 여전히 살아가고 있는 지금까지, 그녀가 겪어온 일과 그 과정에서의 감정과 생각이 책 한 권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죽음을 앞두고 있다면 무엇을 쓸 것인가? 물론 죽음을 떠올려본다 한들 죽음이라는 실체를 직접 마주해 본 적이 없기에 그녀만큼 날 것 그대로의 이야기를 쓰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늘 죽음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은 변함없다.



글쓰기를 멈추었던 두 달간 '죽음'을 떠올렸을 때 '매일을 끝까지 기록하지 않은 것'이 아쉬웠다. 하지만 누군가는 죽을 때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흔적 없이 사라지고 싶다.'라고 말한다. 고개가 끄덕여진다. 살아가는 방식이 저마다 다른 것처럼 삶을 마무리하는 방식도 저마다 다를 테니까.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남기고 간 기록이 내 삶에 빛이 되고 나침반이 되어준다. 자기 삶을 마주하고 책으로 남기는 지난한 작업을 해준 것에 대해 감사하다. 그들의 진실하고 열정적인 삶 덕분에 나 또한 내 안에서 진실함과 열정을 발견할 수 있었다. 글이든 그림이든 어떤 기록이든 그들이 두려움을 무릅쓰고 남기고 간 이야기들에 늘 가슴 깊이 고마운 마음을 품고 있다.




그렇기에 나 또한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매일 글을 쓴다. 물론 나의 기록은 엉성하고 실수투성이일 것이다. 하지만 불완전한 그 자체로 완전하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고 해도 내가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지, 내가 지금 이 삶에서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나의 두려움과 사랑에 대해 글로 쓸 수 있는 건 나 한 사람뿐이다. 그렇기에 기꺼이 나의 불완전한 삶을 기록하며 살아간다.


특별해 보이는 삶만 기록할 가치가 있는 건 아니다. 재능이 뛰어나고 훌륭한 업적을 남긴 사람의 기록만이 의미 있는 건 결코 아니다. 어차피 모두에게 주어진 재능과 업적은 다 다르다. 남의 걸 베낀다고 그만큼 똑같이 해낼 수 있는 게 아니다. 우리가 공유하는 건 삶의 본질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살아야 하는가, 우리를 지탱해 주는 가치는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죽음이 코앞에 닥쳤을 때 부랴부랴 지나온 삶을 돌아보고 기록하려고 한다면 오금이 저리고 매일 밤 악몽을 꿀 것 같다. 한꺼번에 휘몰아치는 대청소도 개운하지만, 매일 가볍게 정리 정돈하며 살면 대청소를 해야 할 만큼 집이 어질러지지 않는다. 삶이라는 공간을 제때 정리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살고 싶다.


브런치북 <나를 찾아줘>에서 나의 삶을 살기로 결정하고 방황했던 날들을 글로 정리했다. 지나온 삶을 돌아보고 글로 정리하는 건 시간도 많이 걸리고 머리에 쥐가 날듯 어려운 작업이었다. 몇 번의 실패 끝에 8년이 흐른 후에야 정리를 마무리하고 다음 챕터로 넘어올 수 있었다. 작년에는 에세이 <사랑이 이긴다>에 상처 입고 치유하며 살아온 이야기를 글로 정리했다. 내 마음도 최소한 책 한 권의 무게만큼은 가벼워졌다.




내 삶의 기록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기쁘겠지만, 그 누구보다 나에게 가장 먼저 도움이 된다. 글을 쓴다는 건 삶을 도약하는 일이다. 나의 기록은 지금 이 순간, 현재에 단단하게 딛고 설 땅이 되어준다. 내가 다져놓은 단단한 땅을 딛고 또 한 걸음 앞으로 내디딘다. 그렇기에 죽음 이후를 떠올리기 이전에 생생하게 살아있는 지금을 위해 쓴다.


오늘의 삶은 오늘 기록하는 게 가장 선명하다. 매일 글 쓰며 매 순간 조금 더 투명해지려고 노력한다. 쓰면 쓸수록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투명해진다. 투명하고 선명하게 살고 싶어서 오늘도 글을 쓴다.




(이미지 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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