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세 번째 스윗홈(?)
12평 작은 집에서 짐을 빼고 이틀 후, 나는 제주 동쪽 산간지역의 어느 오두막에 있었다.
짐은 컨테이너에 보관하고 차에 살림살이를 꾸역꾸역 싣고 400km 가까이 이동해 목포에서 퀸즈메리호를 타고 제주에 도착했다.
오두막 집은 연세로 빌렸다. 제주에는 보증금과 함께 1년 치의 월세를 한꺼번에 내는 방식의 '연세' 문화가 있다. 배를 타고 제주도에 도착해서 제주 시내의 부동산으로 향했고 공인중개사와 임대인을 만나 미리 봐둔 집의 계약서를 썼다.
"계약기간은 1년이고요~ 1년 후에 임대인 분이 보증금 못 돌려드리면 계속 그 집에 사시면 되죠 뭐. 호호호"
계약서를 쓰며 공인중개사가 했던 말 같지도 않은 말을 그때는 흘려들었다. 누군가 지나가며 흘리듯 하는 말이 귀에 예리하게 꽂힌다면 모른 척하지 않아야 한다. 삶이 나에게 슬쩍 보내는 신호와도 같은 것이기에....
오두막 같은 허름한 집을 선택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정원을 처음 본 순간 한눈에 반했다. 정원에 발을 내딛자마자 가슴이 탁 트이고 환호성이 절로 나왔다. 두 번째 스윗홈을 처음 만났을 때의 아늑함과는 분명 다른 느낌이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400평의 야생 정원이 순식간에 내 눈을 가렸고 오두막 같은 오래된 나무집이 아늑한 목조주택처럼 보였다.
그렇게 우리는 겁도 없이 제주 산간 지역의 어느 오두막에 짐을 풀었다. 알고 보니 제주 삼다수를 생산하는 지역이라 유난히 물 맑고 공기 좋은 동네였다.
오두막 같은 집과 정원은 겨우 홑겹의 샷시 문과 나무 벽으로 경계 지어져 있었다. 제주 산속에 텐트 치고 사는 격이나 다름없었다.
가로등도 없는 동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숙면하고 일어나면 신선한 아침 공기가 온몸으로 훅 들어왔다. 천상계에서나 들을 법한 새소리와 함께 정원을 거닐면 생명력 짙은 야생 식물들이 새벽이슬을 머금고 있었다.
눈 뜨자마자 세수도 안 하고 흙을 밟을 수 있다는 점, 잠옷 차림으로 제주의 자연 속으로 풍덩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좋았다.
정원은 이제껏 살았던 집에서는 경험해보지 못한 생생한 기쁨을 줬지만, 집은 겉으로 보는 것보다 더 열악했다.
육지에서 제주로 이주하고 처음 맞이한 아침, 얼굴로 뭔가 톡 떨어져서 '거미인가?'하고 손으로 털어냈는데 진드기였다.
"와.... 나 입이라도 벌리고 잤으면 어쩔 뻔했어?"
멋스럽게 보였던 나무 천장이 진드기 집으로 보였다. 당장 당근 어플을 켜서 난방텐트를 검색했고 운 좋게 귀여운 난방텐트를 나눔 받았다. 방이 따로 없는 오두막 집에서 난방텐트는 우리의 아늑한 침실이 되어주었다.
난방도 문제였다. 오두막 집 바닥에는 전기판넬이 깔려 있었다. 몇 개월 간 비워져 있었던 집이라서 그런지 너무 추웠다. 전기판넬을 켰지만 도통 따뜻해지질 않았다. 심지어 2개의 전기판넬을 동시에 켜면 차단기가 내려갔다. 실내 온도는 13도. 3~4월의 제주가 이렇게 추울지 모르고 두꺼운 옷을 안 가져와서 짐을 뒤적거려 겨우 조끼를 하나 찾아 입고 따뜻한 물주머니를 끌어안고 잤다. 부랴부랴 온수매트와 목화솜이불을 주문했다.
유일한 희망, 화목난로를 켜보기로 했다. 남편과 동네를 돌며 땔감으로 쓸 수 있는 나무들을 얻어왔다. 불을 피워봤는데 연기가 펄펄 났다. 동네 이웃분들에게 여쭤보니 화목난로를 청소해야 하고, 보수도 좀 해야 한다고 했다. 연통 모양이 직선으로 곧게 뻗어야 연기가 막힘없이 빠져나가는데 이 집의 연통은 두 번이나 꺾여 있었다. 화목난로에 불을 때며 타닥타닥 나무 타는 소리를 듣고 고구마도 구워 먹으려 했건만, 현실은 화생방 훈련이었다.
집도 너무 더러웠다. 나무집이라 티가 안 날 뿐이었다. 10년은 쌓인 듯한 캐캐묵은 집 때를 벗겨내느라 (남편이) 애를 먹었다. 비위 좋은 남편도 헛구역질을 할 정도였다. 청소만 몇 날 며칠이 걸렸다. 땔감 구하랴, 화목난로 청소하랴, 불 피우랴, 오물처리하랴 제주도까지 와서 허리 한 번 못 펴보고 부지런히 움직이던 남편은 결국 허리가 나가고 몸살이 났다. 좀처럼 감기에도 걸리지 않는 사람인데 호되게 신고식을 치렀다.
날이 조금씩 풀리면서 정원은 더 푸르러졌다. 이름 모를 식물들이 무성하게 자랐다. 향기 좋은 꽃도 있고, 쑥이나 머위, 돌나물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풍성했다.
비가 온 다음 날이면 100년 산 것 같은(?) 달팽이도 만날 수 있고, 정원에 있는 작은 연못에서는 처음 이 집에 왔을 때 올챙이였던 친구들이 어느새 왕개구리가 되어 헤엄쳐 다녔다.
뽀송한 햇빛에 빨래를 말리는 시간도 좋았다. 또 마침 <우리들의 블루스> 방영을 시작한 때여서 마당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드라마 보는 시간도 낭만적이었다. 제주에 살면서 제주 배경의 드라마를 보니 우리가 드라마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이 심취했다. 드라이브할 때마다 드라마 OST를 들었는데 지금도 '위스키온더락(Whisky on the Rock)'을 틀면 1초 만에 그때 그 시절, 2022년의 제주로 빨려 들어간다. 온몸이 사르르 녹아내리며 눈앞에 제주의 풍경이 아련하게 펼쳐진다.
아름다운 것도
즐겁다는 것도
모두 다 욕심일 뿐
다만 혼자서 살아가는 게
두려워서 하는 얘기
얼음에 채워진 꿈들이
서서히 녹아가고 있네
.
.
.
이상하게 제주에 온 후로 우리는 잘 씻지 않게 되었다. 아는 사람도 없고 만날 사람도 없는 제주에 살며 야릇한 자유를 느꼈다. 매일 아침 둘이서 눈치게임을 했다.
"여보 씻었어?"
"아니? 나 어제 씻었잖아."
"여보 오늘은 씻을 거야?"
"내일 씻어도 될 것 같아. 나 지금 깨끗해."
꼬질꼬질한 몰골로 한량처럼 동네를 거닐다가 우연히 만난 친구들에게 사랑을 듬뿍 받기도 했다.
제주에서의 일상에 점점 익숙해지며 도서관 카드도 만들었다. 마당에서 서라운드 새소리를 들으며 책 읽다가 나른해지면 낮잠을 자기도 했다.
4월 중순이 넘어서도 수면바지에 수면양말, 후리스까지 입고 지냈다. 우리뿐만 아니라 제주 산간 지역에 사는 주민들은 대부분 패딩을 입고 있었다.
특히 우리 집은 바깥 온도보다 집 안 온도가 더 낮았다. 살면서 관찰해 보니 집 뒤에 커다란 나무가 있어서 늘 그늘이 졌고 게다가 집은 북향이었다. 집 안으로 들어오는 햇빛은 겨우 두 뼘 정도. 안 그래도 추운 지역인데 우리 집은 유난히 춥고 어두웠다. 잘 때 빼고는 늘 집 밖에서 시간을 보냈다.
남편이 뚝딱뚝딱 벽돌을 쌓아 만들어준 모닥불 앞에서 매일 밤 몸을 녹이고 고구마랑 귤도 구워 먹었다. 밤에는 별이 머리 위로 쏟아져내렸다. 태어나서 그토록 선명한 북두칠성은 처음 봤다.
춥고 불편하긴 했지만, 언제나 그랬듯 우리는 주어진 환경 안에서 다시 조금씩 작은 행복들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겨우겨우 제주살이에 적응해 가던 어느 날, 꽤 많은 양의 봄비가 내렸다.
그리고 집에 물이 새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