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동안 3억을 선물해 준 집
연고 없는 동네의 30년 된 12평 집에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은 갑작스럽게 프랜차이즈 피시방을 개업했다. 깊이 고민할 새도 없이 말릴 새도 없이, 무언가에 홀린 듯 그렇게 되었다.
(남편은) 평소에 게임을 좋아한다는 허술한 이유로 프랜차이즈 피시방을 개업했다. 내가 평생 해본 게임이라고는 테트리스나 틀린 그림 찾기 정도였다. 게임 소음, 담배 냄새, 인스턴트 음식, 욕설이 난무하는 피시방이 내 삶의 터전이 되는 건 영혼이 탈탈 털리는 일이었다.
나는 나다운 삶을 살겠다며 남들이 부러워하는 회사를 그만두고 아이들에게 바른 식생활을 교육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을 마치면 '피시방 이모'로 출근해서 욕하고 침 뱉으며 게임을 하는 학생들에게 라면을 끓여주어야 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 사이에서 괴로워할 틈도 없이, 개업 6개월 후 코로나가 터졌다. 피시방은 영업시간 단축과 영업정지 등 모든 규제의 중심에 있었다. 등교가 온라인으로 전환되며 내가 하던 교육 일도 기약 없이 멈추었다.
_'사랑이 이긴다', <누구나 처음 가는 길> 수록
아이러니하게도 12평 작은 집에 살며 피시방으로 고생하던 시절,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내 안에 중심을 잡고 살았다. 단정하고 부지런하게 일상을 꾸려갔다.
작은 집의 장난감 같은 부엌에서 소꿉장난 하듯 즐겁게 요리했다. 퇴근 후 매일 한살림 매장에 들러 유기농 제철 식재료로 장을 봤고 자연건강식을 독학하며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었다. 사찰요리도 배웠고, 몸을 가볍게 비우기 위한 레몬단식과 비건식도 실천했다.
바깥 상황이 열악해질수록 정신은 더 명료해졌다. 명료한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 더욱 몸과 마음을 바르게 세우려 노력했다. 본능적으로 그렇게 했다.
생활이 고달프다 하여 함부로 살아가지 않기를
가난과 불운이 내 마음까지 흐리게 하지 않기를
_박노해의 걷는 독서
바깥에는 통제할 수 없는 일 투성이었지만, 나의 부엌에서 우리 가족이 먹을 단정한 음식을 만들어내는 건 내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나의 의지로 나의 삶을 일으켜 세울 수 있다는 사실이 큰 위안이었다.
작은 집에 살며 감사하게도 일을 구하고자 할 때마다 때맞춰 기회가 닿았다. 당시 나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급하게 일을 구해야 했는데 다행히 집과 가까운 회사의 1년 계약직 일이 구해졌다. ‘그래. 죽으라는 법은 없구나.' 싶었다. 하지만 대기업에서 늘 갑의 역할로 일하다가 작은 공공기관에서 말단 계약직으로 일하며 나의 자아가 얼마나 무거운지 몸소 실감했다. 매일 '현타'가 왔지만, 이것저것 재고 따질만한 상황이 아니라 자아를 내려놓고 나의 태도를 바꾸는 수밖에 없었다.
'일거리에 귀하고 천한 건 없으나 삶의 모습에는 귀천이 있다.'
지금 나의 일이 다소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그것을 불평할 것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들을 순간순간 쌓아가야 한다. 지금 당장 일을 바꿀 수 있는 상황이 되지 않는다면, 그 과정 위에 있는 나의 태도, 마음 가짐, 행동을 바르고 떳떳하게 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다. 그 언젠가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고생했어. 잘 해냈어. 멋진 태도였어." 하며 토닥토닥해 줄 수 있도록. 나에게 떳떳할 수 있도록 올바른 모습으로 살아가자.
언제나 그랬듯 넌 또 잘 해낼 거야. 결국엔. 잘 해내어 마무리 지을 때까지 쉽게 포기하지 않을 너니까.
_2020년 1월 1일의 메모
퇴근 후에는 매일 걸어서 장을 보러 갔다. 집에서부터 마트까지 가는 길이 나에게는 고달픈 세상살이를 잠시 잊고 온전히 숨 쉬는 시간이었다.
산으로 둘러싸인 동네에서 나무와 땅, 새소리에 기대어 상처받은 영혼을 달래며 살았다. 매일 잠깐의 산책이 나를 살렸다. 집을 선택할 때는 집 자체도 중요하지만 동네도 중요하다. 어쩌면 더 중요하다. 집 안은 수리해서 바꿀 수 있지만 동네는 내 의지로 바꿀 수 없으니까.
팬데믹은 예상보다 길어졌고 남편은 밤낮 가릴 것 없이 혼자 매장을 지키며 겨우 마이너스를 면했다. 하지만 계속 남편의 몸을 혹사시키는 것은 돈으로도 메꿀 수 없는 마이너스라고 생각했다. 결국 2년 만에 폐업하기로 결단했다.
폐업 과정에서 임대인은 내용증명을 보내며 억지스러운 원상복구를 요구했다. 부동산도 합세하여 고지도 없이 계약서에 있는 원상복구에 대한 특약사항을 우리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수정해 둔 걸 나중에야 알게 됐다. 우리 둘의 힘으로는 대응할 수 없는 상황이라 판단했고 다행히 지인을 통해 내용증명 작성비용으로 일부만 지불하고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나는 그동안의 모든 서류와 대화내용을 수집하고 정리해서 변호사에게 전달했다. 임대인은 변호사로부터 온 내용증명을 받고 바로 꼬리를 내렸다. 매장 철거와 관련해서는 우리의 작은 집 목공작업으로 인연이 닿았던 사장님이 도움을 주셨다.
살면서 한 번도 경험한 적 없고 앞으로도 만나고 싶지 않은 부류의 사람들과 상대하며 심장이 철렁하는 순간이 많았지만, 감사하게도 적시적소에 귀인들이 나타나주어 최악의 상황을 피해 갈 수 있었다. 두 다리 뻗고 잠드는 하루가 얼마나 감사하고 기쁜 일인지 절실히 깨달은 나날이었다.
몸 마음 영혼이 피폐해졌지만 남편과 나는 끝까지 각자의 자리를 지켰다. 우리는 서로를 위로하며, 진흙탕에서도 더러워지지 않는 연꽃처럼 우리의 삶을 지켜냈다.
폐업하고 나니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했다. 더 이상 이 동네에 살고 싶지 않았다. 지친 몸과 마음에 쉼이 필요했다. 우리는 집을 팔고 제주로 가기로 결정했다. 제주에서 1년 동안 살며 대책 없이 쉬기로 했다. 둘 다 직장이 없는 상황이라 불안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자유롭기도 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을 불안이 아닌 자유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두 번째 스윗홈에 사는 동안 밖에서 상처받고 돌아와도 따뜻하게 몸 누일 수 있는 우리 집이 있다는 사실이 큰 위안이었다. 우리의 작은 집은 마음의 위안뿐만 아니라 물질적으로도 큰 위안을 주었다. 사랑스러운 우리 집의 가치는 3년 동안 무려 3억이 올랐다. 물론 세금을 많이 냈지만 그럼에도 폐업 후에 남은 빚을 갚을 수 있었다.
우리가 집을 팔고 불과 한 달 후에 집의 가치는 1억이나 더 올랐다. 1천만 원도 아니고 1억이. 사람의 욕심이 끝도 없어서 당시에는 아깝다며 발을 동동 굴렀지만, 이제 와서 복기해 보면 무릎에 사서 어깨에 판 성공적인 투자였다. 물론 투자라고 말하기엔 너무 전략이 없었다. 3년 전 집을 사겠다고 결단하고 실천에 옮긴 것, 그리고 적절한 타이밍에 매도한 것이 전부였다. 운이 좋았다.
집이 없었다면 폐업하기로 결정도 못하고 꾸역꾸역 버텨야 했을 것이다. 만약 1억 넘는 빚을 떠안고 폐업했다 해도 돈 때문에 남편과 이혼하진 않았겠지만, 삶이 많이 피폐해졌을 것이다. 아늑하게 우리를 품어주고, 값진 경험을 안겨주고, 살 길을 마련해 준 우리의 작은 집에 지금도 가슴 깊이 감사하다.
하룻밤 꿈같았던 작은 집에서의 3년을 마무리하고 우리는 제주로 향했다.
나 살아있는 오늘 또 오늘은
다 끝들의 집합이니
끝이 있으면 시작이 있으리
어둠 깊으면 빛나는 새날 오리니
_박노해의 걷는 독서
두 번째 집에 살며 불편했던 점
1. 매일 아파트 단지를 다섯 바퀴씩 뺑뺑 돌며 주차했다. 주차난은 그래도 견딜만했는데 주차해 둔 차 뺑소니를 서너 번 당했다. 문콕 정도 아니라 차체를 갈아야 할 정도로 흠집을 내놓고도 그냥 가버렸다. 경찰에 신고해도 잡지 못했다. 차는 차대로 상처 나고 우리는 비양심적인 사람들 때문에 상처받았던 기억이 있다.
2. 운 좋게 우리 윗집은 조용한 편이라 층간소음에 시달리진 않았지만, 윗집과 대각선 윗집의 화장실 물 내려가는 소리까지 다 들렸다.
3. 산이 가까워서 벌레가 많았다.
좋았던 점
1. 숲세권이면서 초역세권이었다. 지하철 역이 걸어서 3분 거리라 매우 편리했다. 사람들이 왜 역세권에 사는지 이해가 됐다.
2. 아파트 단지에 일주일에 한 번씩 장이 섰다. 장 서는 전날에는 주차장에 주차를 할 수 없어서 불편했고 막상 단지 내 장터에서 뭔가를 산 기억은 없지만, 정겨운 분위기가 재밌었다. (개인 취향)
3. 동네가 오래된 만큼 나무가 울창하고 넓은 공원이 있었다. 동네에 도서관이 유난히 많았다. (도서관에 별표 다섯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