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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쇠 임대인 덕분에 집을 샀다

그것도 3채나 샀다....

by 스텔라윤 Feb 2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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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띵동!'


물난리 난 집을 바라보며 망연자실 서 있는데 누군가 찾아왔다.


"아랫집이에요. 혹시 물...."


40대 후반 정도 되어 보이는 여성은 내 표정과 집 안 풍경을 순식간에 스캔하고 상황파악이 된 것 같았다. 아랫집에도 벽지를 흥건하게 적실만큼 천장에서 물이 새고 있다고 했다.


정신 차리고 집을 살펴보니 싱크대 아래쪽에서 물이 숨을 헐떡이는 듯한 괴상한 소리가 들렸다. 아랫집 여성과 나는 아마도 배관이 터진 것 같다고 예상하고는 일단 수도밸브를 잠갔다. 그리고 물을 퍼내기 시작했다.


뒤이어 등장한 아랫집 여성의 남편 분은 초록색 플라스틱 삽으로 물을 퍼냈다. 삽으로 뜬 물이 양동이에 콸콸 소리를 내며 쏟아질 만큼 물이 많았다. 나머지 물은 집에 있는 걸레를 총 동원해서 닦아내고 쥐어짜고 닦아내고 쥐어짜고를 반복했다. 걸레질은 4시간이 넘도록 계속 됐다.


자기 집 천장과 벽이 젖은 게 짜증 날 법도 한데 우리를 도와주려고 팔 걷고 나서준 아랫집 부부 덕분에 생각보다는 빠르게 상황이 정리되었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끝없는 걸레질끝없는 걸레질


나는 바로 임대인에게 전화해서 이 상황을 알렸다.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어서 바로 달려올 줄 알았는데 임대인은 생각보다 차분했다. 상황의 심각성을 모르는 것 같아 문자로 물난리난 집 사진을 보냈지만 '지금 내가 가도 해결할 방법이 없으니 업자를 보내겠다.'라는 답장이 돌아왔다. 당시에는 무관심하다 느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고맙다. 임대인이 요란하게 반응했으면 더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며칠 후 업자가 왔고 싱크대 아래 시멘트에 묻혀있는 온수 파이프가 너무 오래돼서 터졌다고 했다. 녹슨 온수 파이프에서 흘러나온 물이라서 기름이 둥둥 뜨고 뜨끈했던 것이다. 임대인은 파이프 교체비가 많이 나온 것에 대해 언짢아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이런 적이 없는데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요?"

"네? (말이에요 방구예요?) 그야 오래된 집이니 배관도 낡아서 터진 게 아닐까요?"


배관은 반나절만에 교체 됐지만 집에는 흉측한 흔적이 남았다.


브런치 글 이미지 3


나무바닥은 변색되었을 뿐만 아니라 군데군데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임대인에게 바닥 수리를 요청했고 며칠 고민하던 그는 가장 얇은 장판으로 교체해 주겠다고 했다. 그래도 감사했다.


"감사합니다. 저희 짐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닥 공사를 하려면 짐을 다 빼야 할 텐데요."


짐은 알아서 하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홈스윗홈~'을 읊조리던 거실에 앉아 흉측해진 집을 바라보며 참았던 눈물이 터졌다. 한참을 울다가 눈물 닦고 일어나 집 정리를 시작했다. 바닥을 깨끗하게 닦고 가구를 원위치시켰다. 집은 금세 다시 스윗홈의 모습을 갖추어 가는 듯했다. '집에 물난리가 나면 대박이 난다더라.' 괜히 어디에서 주워들은 말을 떠들어대며 마음을 추스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이미 알고 있었다. 여기는 더 이상 나의 스위트홈이 아니라는 걸.


며칠 후, 걸레받이 위 벽지에서 거뭇거뭇한 흔적을 발견했다. 눈을 최대한 크게 부릅뜨고 다시 봤다. 잘못 본 것이길 바랐다. 다시 봐도 곰팡이였다. 새로 바른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벽지에 곰팡이가 피다니. 화룡점정으로 벽지를 가까이에서 살펴보기 위해 바닥에 납작 엎드렸는데 걸레받이 위로 책벌레처럼 생긴 투명한 벌레들이 줄지어가는 장면을 목격했다.


- 끝 -


이제 더 이상 타협은 없다. 단호하게 결심했다. 우리는 이 집에서 나간다.


브런치 글 이미지 4
곰팡이 핀 벽지, 그런데 이제 벌레를 곁들인....곰팡이 핀 벽지, 그런데 이제 벌레를 곁들인....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 얼굴보다 집을 더 자주 들여다보며 집 꾸미기에 열 올렸던 지난날이 떠올랐다. 그동안 무엇에 홀려있었던 기분이었다. 예쁘게 꾸몄던 집이 물난리로 순식간에 엉망이 되어버린 덕분에 집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집이란 뭘까. 집은 내 취향이 담긴 공간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 가족이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임대인과 협의하는 과정에서 질려버린 나는 또 한 가지를 결심했다.


'우리 집을 사야겠다.'



목표가 명확해지니 해야 할 일도 명확했다.


01 전셋집의 새로운 세입자를 구한다
02 내 집 마련을 위해 부동산 공부를 한다


상황이 어떻든 계약기간 만료 이전에 퇴거를 하는 것이기에 세입자는 내가 구해야 했다. 집과 가까운 역 2곳을 잡고 주변 공인중개소를 검색해서 전화번호 리스트를 만들었다. 리스트를 정리하고 나니 100곳 이상이 되었다. 모든 공인중개소에 문자를 뿌렸다. 답장이 온 곳에는 전화를 걸어 잘 부탁한다는 말도 곁들였다.


동시에 부동산 공부를 시작했다. 부동산 분야에 대해서는 태아 수준의 지식과 경험을 갖고 있었기에 무작정 책을 읽기 시작했다. 서점의 부동산 코너에 나와있는 부동산 책은 거의 다 읽었다. 부동산 기초 강의도 들었다. 어느 지역에 집을 살지도 정하지 않은 상태로 강의를 들으며 멀게는 대전까지도 임장을 갔다. 강의에서 언급된 아파트는 눈으로 직접 보러 갔고 공인중개소 문을 벌컥벌컥 열고 들어갔다. 낯 가림할 여유도 없었다. 다행히 공인중개사 분들도 나의 방문을 귀찮아하지 않고 반겨줬다. 부동산 시장이 한창 활황을 이루다가 잠시 주춤하던 시기였기 때문이었다.


노트북 폴더 이름을 [0월 안에 00에 집 산다]로 저장하고 부동산 공부에 몰입했다. 낮에는 일을 마치면 부지런히 현장을 돌아다녔고 새벽부터 일어나 부동산 책을 읽고 공부를 했다. 남편은 지금도 그때의 내 모습을 회상하며 무섭다고 몸서리친다.


공부에 열을 올리던 그 시기에 나는 똥꿈을 세 번 꿨다. 그리고 휘몰아치듯 집 세 채를 샀다. 세 번의 똥꿈 중 두 가지 꿈은 지금도 기억난다. 한 번은 변기 안에 거대한 황금똥이 뱀처럼 똬리를 틀고 변기 위까지 솟아올라 있었고, 또 한 번은 방에 똥들이 똥똥똥 떨어져 있어서 내가 방 안을 돌아다니며 그 똥들을 주섬주섬 주웠다.


부동산 초보였기에 투자라는 개념은 아예 없었고 세금에 대한 대책도 없었다. 오직 5년쯤 후 '대출 없는 내 집마련'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리를 굴린 결과였다. 대출과 세금도 그때그때 책으로 공부했다. 부동산 전문 세무사를 만나도 대화가 술술 될 정도였다.


고3 때 이렇게 공부를 했더라면....고3 때 이렇게 공부를 했더라면....


부동산 공부를 하면서 남편과 우연히 '줍줍'(분양하고 남은 물량을 줍는다는 뜻) 현장을 구경 갔다가 분양권에 당첨이 됐다. 남편이 쥐고 있던 종이에 적힌 번호가 마이크를 통해 쩌렁쩌렁 울렸고 우리는 일단 기뻐했다. 몇 시간 안에 계약금을 입금하지 않으면 당첨이 무효가 된다는 건설사의 전략적인 영업에 얼떨결에 계약금까지 입금해 버렸다. 대책 없이 계약하고 뒤늦게 부랴부랴 알아보니 계약금만 있으면 중도금은 후불이자로 전부 대출이 되는 상황이었다. 잘 한 결정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분양권 계약 이후에는 연이어 원래 나의 목표였던 지역의 아파트를 세 끼고 계약했다. 그 아파트에 당장 입주하기에는 자금이 턱없이 부족했기에 미리 사놓자는 계획이었다. 분양권 1, 세 낀 집 1을 계약하고 나니 수중에 남은 건 몇 천만 원. 이제 우리가 실제로 입주할 집이 필요했다. 일반적으로는 남은 자금 안에서 월세나 전셋집을 구하겠지만 그때의 나는 세입자로 살고 싶지 않았다.


수도권을 샅샅이 뒤져서 우리가 가진 자금에 대출을 더해 매매할 수 있는 또 다른 집을 찾아냈다. 30년 넘은 12평의 구축 아파트. 오래 고민할 것도 없었다. 수도권에서 우리 예산으로 입주할 수 있는 아파트는 그곳이 거의 유일했다. 대지지분이 커서 재건축으로 유망한 아파트였고 부동산 비수기인데도 나와 있는 매물이 거의 없었다. 공인중개소에 갔다가 허탕을 치고 집에 돌아가는데 다시 전화가 왔다.


"지금 매물 하나가 나왔어요! 보러 오실래요?"


임차인이 갑자기 임대주택에 당첨되는 바람에 퇴거해야 하는 상황이고 임대인도 자금이 필요해서 매도를 원하는 상황이었다. 차를 돌려 바로 집을 봤고 기존에 보러 갔던 같은 단지의 다른 집보다 동도 층도 더 좋았다. 그 유명한 로열동, 로열층이었다. 집에 들어간 순간 그 작은 열두 평의 집에 맞바람이 치며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현관에서 맞은편 베란다까지 열 걸음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데 베란다로 보이는 풍경이 단숨에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찾았다. 우리 집....'


남편에게 전화로 우리 집을 구했다고 알리고 그 자리에서 가계약금을 넣었다. 그렇게 우리가 살 집이 생겼다.


우리의 두 번째 홈스윗홈 / 30년 된 12평의 복도식 아파트우리의 두 번째 홈스윗홈 / 30년 된 12평의 복도식 아파트


정신 차리고 보니 우리는 갑자기 3 주택자가 되어 있었다. 다행히 우리가 소유한 주택은 정부에서 엄격하게 관리하는 고가주택에 해당되지 않았고, 세 채 모두 공동명의로 계약을 해서 뉴스에서 나오는 세금폭탄 같은 건 없었다. 운이 좋았다.


그때 살고 있던 빌라 전셋집의 새로운 세입자를 구하지도 않은 상황에 이사 갈 집부터 덜컥 계약해 버리다니, 무식해서 용감했다. 공인중개소 리스트를 기존 100곳에서 더 추가했고 적극적으로 전화를 돌리고 근처에 갈 일이 있으면 직접 찾아가기도 했다. 그리고 얼마 후 극적으로 세입자가 구해졌다. 분명히 치열한 노력이 있었지만, 그보다 운이 좋았다.


짐을 빼고 나니 집은 더 처참했다. 남편은 우리의 첫 번째 집을 떠나는 게 슬프다고 했지만 나는 한 톨의 미련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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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이사한 작은 집의 베란다에 캠핑의자를 펼치고 끼여 앉아 남편과 맥주를 홀짝이며 안주삼아 이야기하곤 했다.


"여보 그때 임대인 아저씨가 바닥을 안 고쳐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퇴거하는 날까지 임대인은 우리가 도배, 전등, 콘센트, 화장실 코팅까지 해놓은 건 생각하지 않고 아주 작은 것까지 꼬투리를 잡았다. 공인중개비도 우리가 냈는데 우기면 반반 부담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더 이상 감정 소모하고 싶지 않았다. 집이 망가졌으니 얼마나 속상하고 신경 쓰였을지 이제는 임대인의 마음도 이해가 된다.


얼떨결에 3 주택자가 된 나는 가장 친한 친구들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더욱이 당시에는 부동산 분위기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얘기했을 때 돌아올 우려와 걱정의 말을 견디기 어려울 것 같았다. 친정 부모님은 원래부터 나의 성격을 알고 있기에 그러려니 하셨다. 하지만 시부모님께서는 왜 멀쩡한 집을 나와서 코딱지만 한 집으로 이사를 가는지, 뉴스에서는 부동산 하락기라고 하는데 왜 집을 세 채나 샀는지 이해하기 어려우셨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의견을, 더 정확하게는 막무가내 며느리의 일방적인 결정을 존중해 주셨다.


폭포수처럼 시원하게 쏟아져 나온 물난리에서 시작된 <내 집 찾아 삼만리 프로젝트>는 우여곡절 끝에 일단락되었다.


그리고 작고 오래된 우리 집은 생각보다 더 낡아 있었다....


다음 화에 계속....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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