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Home, Sweet Home
2018년, 빨간 벽돌집에 대한 로망으로 5층 짜리 빌라 전세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나와 남편은 부동산에 무지했고 가까운 가족 중에 부동산에 대해 조언해 주는 사람도 없었다. 대출을 받아본 경험도 없었기에 단순하게 수중에 있는 금액 한도 내에서 집을 구했다.
그 집에서 아이도 낳고 막연하게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 줄 알았다. 하지만 첫 전셋집에서 불과 1년 만에 도망치듯 나왔고 이제 아홉 번째 이사를 앞두고 있다. '부자가 되려면 열 번은 이사해야 한다.'라는 말이 있다. 그동안 우리는 부자가 되었을까?
이사는 가까운 사람의 죽음, 이혼 또는 별거, 수감, 장해나 질병, 결혼, 실직과 맞먹는 '매우 높음' 수준의 스트레스라는 기사를 보았다. 죽음과 맞먹는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삶의 터전이 변화되는 일이고 낯선 사람들과 만나서 협상과 계약을 해야 하니 심적으로 고되다. 이사업체의 도움을 받는다 해도 이사할 때마다 짐을 정리하고 짐을 싸고 짐을 풀어 또 정리해야 하니 육체적으로도 에너지가 고갈되는 일이 분명하다. 그 과정에서 시간과 비용도 줄줄 새어나간다.
하지만 삶은 언제나 고난과 선물을 함께 준다. 30평 빌라에서 12평 구축 아파트로, 제주 산골 오두막으로, 제주 원룸으로, 오피스텔로, 또다시 구축 아파트에 입주하기까지 다양한 주거지를 거쳐오며 녹진한 추억이 쌓였고, 돈으로 살 수 없는 지혜가 쌓였고, 무엇보다 우리 집이 생겼다!
30대에 내 집 마련이라니, 감개무량하다가도 신혼집부터 아무런 품을 들이지 않고 신축 아파트에 자가로 입주하는 친구들을 보면 맥이 빠지기도 한다. 누구는 따뜻하고 예쁜 집에 가족 친구들을 초대해 오붓하게 식사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는 평범한 일상을 꾸려가는데 왜 나는 이렇게까지 고생스러웠어야 하는 건지 불공평하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무의미한 비교라는 걸 알고 있다.
삶의 모습이 저마다 똑같다면 세상이 얼마나 밋밋하고 무료할까. 받아들이기에 따라 지난 7년의 시간을 '사서 고생'이라고 부를 수도 있고 '용감하고 역동적인 탐험'이라고 정의 내릴 수도 있다. 물론 나는 후자로 기억하기로 선택했다. 몸소 경험해 봐야만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부동산, 대출, 세금 공부부터 사람 공부, 마음공부까지 온통 배움의 현장이었다. 게다가 모든 게 연습 없는 실전이었기에 날 것의 배움을 얻을 수 있었다.
깨끗하고 예쁜 집에서 평범한 일상을 꾸려왔다면 이렇게 브런치북에 쓸 글감도 없었을 테니, 지난날의 고생에 오히려 감사해야 하지 않겠냐고 스스로를 토닥여본다. 브런치북 <Home, Sweet Home>에는 지난 7년 간 머물렀던 집들과 아홉 번 이사하며 쌓인 에피소드, 내 집 마련 스토리를 담아보려고 한다.
프롤로그를 쓰는 지금, 그동안 나를 받아준 집들과 늘 내 의견을 따라준 남편, 어리숙한 우리를 믿고 존중해 준 부모님, 악연인지 귀인인지 모르겠지만 스쳐지나 온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든다.
자, 그럼 7년을 거슬러 빨간 벽돌집에서의 악몽을 다시 떠올려볼까....
(이미지 출처 :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