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70 댓글 2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제주살이 한 달 반 만에 야반도주

400평 오두막에서 7평 원룸으로

by 스텔라윤 Mar 25. 2025
아래로


이전 이야기 [400평 제주산골 오두막 살이]



처음 이사 와서 동네 이웃분들께 인사하러 돌아다닐 때도 뭔가 꺼림칙한 부분이 있었다.


"제주 산골에 웬 젊은 사람들이 왔대?"

"저희 제주 1년 살이 하러 왔어요."

"어느 집에?"

"저~기 나무로 된 정원 넓은 집이요!"


이웃분들은 입술을 움찔거리며 걱정스러운 눈빛을 숨기지 못했다.


"거기 얼마 줬어?"

"보증금 0만 원에 연세 0만 원이요."

"힉!! 도둑놈 심보네. 다 쓰러져가는 집을 무슨 그렇게 비싸게 받아."


집에 들렀던 수리기사님도 비슷한 말을 했다.


"여기는 그냥 살면서 집 관리해 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지 무슨 돈을 받아요. 나 같으면 그 돈 주고 절대 여기 안 살지."




그들의 말처럼 집은 열악했다. 물이 똑똑 새는 싱크대 호스, 과열되면 작동되지 않는 깨진 전기레인지, 창문을 못으로 박아놓아서 환기가 안 되는 화장실, 곰이 물어뜯은 듯 찢긴 방충망, 전기판넬 차단기 문제, 오수처리기 고장 문제, 연기가 펄펄 나는 화목난로 등등....


차단기와 오수처리기는 당장 심각한 문제라 임대인이 수리기사를 불러서 해결해 줬는데 나머지는 고쳐준다고 말만 할 뿐 계속 미뤄졌다. 쓰러져 가는 남의 집 보수만 하다가 제주 1년 살이가 끝날 것 같았다. 우리가 돈 내고 남의 집 청소해 주고 보수할 곳 찾아주고 이게 말이 된단 말인가.


브런치 글 이미지 1


비 내리듯 주르륵 물 새는 집을 보면서 그동안 꾹꾹 참아온 분노가 폭발하고 말았다.


400평 정원이 있는 오두막 집 내부는 주방과 거실이 원룸 형태로 되어 있었고, 화장실 하나, 그리고 세탁기와 옷장이 있는 작은 공간이 하나 더 있었다.


비가 많이 내린 어느 날, 세탁기와 옷장이 있는 바로 그 공간 문을 열어보니 바닥과 벽이 빗물로 흠뻑 젖어있었고 내려앉은 천장에서는 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뼛속까지 나무로 지어진 집의 전등 옆에서 물이 줄줄 새는 모습이 너무 아슬아슬해 보였다.


바로 임대인에게 비가 새는 영상과 사진을 보냈다. 서울에 살고 있는 임대인은 태평한 말투로 별거 아니라는 듯 반응했다. 우리가 살던 동네는 산간지역이었고 이웃 분들도 춥고 눈비도 많이 오고 안개도 짙어서 사람 살기에 참 열악하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그런데 임대인은 "아니, 비가 매일 오는 것도 아니고~ 블라블라."라는 식으로 안일한 태도를 보였다. 비가 새는 부분은 임대인이 다음에 제주에 올 때 직접 수리해 주겠다고 했다.



우리는 도저히 이 집에서 안전하게 살 수 없다고 판단했고, 임대인의 태도를 보며 단판을 지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좋게 대화로 풀어서 해결할 수 없음을 직감하고 내용증명 형식으로 문자를 작성했다. 다소 과할지라도 강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소중한 시간과 비용을 들여 시작한 제주생활인데 끝없는 하자를 수리하면서 시간을 보낼 수는 없었다.


'이 집에는 너무 많은 하자가 있고, 그 하자는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는 수준이며, 특히나 물이 새는 중대하자가 있는 집에서는 살 수 없다. 우리는 이 집에서 나가겠으니 보증금과 연세를 돌려달라.'는 요지로 모든 내용을 정리해서 임대인에게 보냈다. 하지만 임대인은 이미 보증금을 다 써버려 돌려줄 돈이 없다고 했다.



이 집을 소개한 부동산 중개인에게도 연락해서 현재 상황을 알렸는데 중개인의 태도도 너무 황당했다.


"아니, 나는 세입자가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집을 소개해준 것뿐이에요~~ 나는 중개를 해줬을 뿐인데 나한테는 책임이 없지요~~"


중개인이 못 미더워 부동산 대표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저희 직원 누구랑 계약을 진행하셨어요?"

"여자분이요. OOO 씨."

"네? 저희 부동산에는 여자 직원이 없는데요.." 

"예....?"



"어우 소름 돋아. 막장 드라마야?" 황당해서 입이 다물어지질 않았다.


알고 보니 부동산 중개인이 자기 사업장도 없이 다른 사람의 명의와 인감을 사용해서 계약서를 작성한 것이었다. 도청에 확인해 보니 이런 방식의 거래는 불법이라고 했다. 자신의 정체가 들통난 걸 모르는 중개인은 처음에는 적반하장으로 우리를 비난했다.


"아니~~ 젊은 사람들이 그러면 안 되지~~ 그렇게 살면 안 돼~~"

 

듣다 못해 불법계약서 작성 문제를 언급하니 꼬리를 배까지 붙이고 태세를 바꿨다. 결국 중개인이 새로운 세입자를 구하기로 했고 우리는 세입자를 구할 때까지 월세는 차감하지 않을 것을 요구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세입자 구하는 일이 세월아 네월아 미뤄질 것 같았다. 집주인은 처음에는 동의했다가 며칠새 말을 바꾸며 월세를 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게다가 새로운 세입자를 구할 때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으니 난방텐트를 철거할 것, 캠프파이어를 위해 쟁여둔 나무들을 치울 것, 잔디를 단정하게 깎아 관리할 것 등을 요구했다. '난방텐트 없이 자다가 입에 진드기 떨어지면 아저씨가 책임질 거예요?' 어이가 없어서 말이 목에 걸려 잘 안 나왔다.



심난한 와중에 언제 집을 빼야 할지 모르니 이사 갈 집도 다시 구해야 했다. 집을 구하러 제주의 동서남북을 돌아다녔지만, 이미 동쪽에 익숙해져서인지 사람 살기 더 좋다는 서쪽, 남쪽동네가 낯설게 느껴졌다. 결국 익숙한 동쪽 동네, 선흘에 있는 원룸에 계약금을 걸어두었다. 원룸이지만 깨끗하고 무엇보다 보증금과 연세 모두 저렴했다. 함덕바다까지도 차로 10분 거리이고 사람이 살기 딱 좋은 중산간 지역이었다.


살민 살아진다살민 살아진다


새로운 집을 구하고 며칠 후, 집주인에게 문자가 왔다. 다음 날까지 돈을 돌려줄 테니 집을 비우라고 했다. 그때가 오후 4시쯤이었을까.... 남편은 서울에 볼일이 있어 오후 6시쯤에나 제주에 돌아올 예정이었다. 하루 만에 짐 싸서 퇴거하라는 요구에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우리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보증금과 연세를 무사히 돌려받는 것이니 빨리 이 상황을 마무리 짓자는 마음으로 참았다.


누군가와 협상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크든 작든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늘 발생한다. 서로의 상식이 다르고 입장이 다르니 의견차이가 없을 수 없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에게 한 가지를 묻는다. '이 협상에서 너한테 가장 중요한 목표가 뭐야?' 딱 한 가지 목표를 떠올리고 그 이외의 부분은 손해 보는 것 같아도 수긍하려고 한다. 그게 나에게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이니까.



저녁때가 되어 돌아온 남편과 새벽까지 짐을 싸고 새로 구한 원룸으로 짐을 날랐다. 20km 거리를 왕복 5~6번. 하필 짙은 안개 때문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날이었다.

브런치 글 이미지 3


그 당시에는 열불이 터졌지만, 이사를 하게 된 상황이 결국에는 천만다행인 일이었다.


얼마 후 남편은 서울에 취직을 했고 얼떨결에 '나 혼자 제주살이'를 하게 됐다. 보안장치가 열악하고 가로등도 없는 음침한 동네에 나 혼자 살아야 했다면, 나도 제주살이를 포기해야 했을 것이다.


짧게나마 정원 있는 집의 로망을 체험할 수 있었던 것도 행운이었다. 눈뜨자마자 자연을 만끽할 수 있었던 시간은 다른 모든 불편함을 잊게 할 만큼 황홀했다. 제주에 놀러 온 가족들과 함께 마당에서 쏟아지는 별을 보던 시간, 옹기종기 모여 불을 쬐던 시간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무엇보다 그 집에 살며 귀한 인연들을 만났다. 나의 영원한 소울 친구, 모아나를 만났고 제주도 엄마 아빠라고 부를 만큼 의지할 수 있는 어른들을 만났다. 그들은 제주에 사는 내내 나의 친구와 가족이 되어주었다. 제주 산간지역의 오두막 집에 살지 않았다면 만나지 못했을 소중한 인연이다.


브런치 글 이미지 4
브런치 글 이미지 5
브런치 글 이미지 6

[브런치북] 나의 소울 고양이 모아나



제주의 텃세가 심하다는 말을 들었는데 동네 주민분들은 우리를 친구처럼, 자식처럼, 손주처럼 챙겨줬다. 옆집 할머니는 젊은 사람들이 동네에 오니 좋다 하시며 국화차를 내어주시고 김장김치를 나눠주셨다. 이웃분이 가져다준 감자로 감자오븐구이를 만들어서 나눠먹기도 했다. 육지에 살면서는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데면데면하게 살았는데 제주에서는 얼굴만 마주치면 멈춰 서서 1시간씩 이야기를 나눴다. 대화 내용은 별로 의미 없는 것들이었지만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음식을 나눠 먹으며 보내는 시간이 참 정겨웠다.


undefined
undefined
undefined
undefined



인생은 순방향으로 살게 되고
역방향으로 이해하게 된다.

_키에르케고르


요즘 읽고 있는 책 <나는 떠났다 그리고 자유를 배웠다>의 작가는 키에르케고르의 문장을 인용하며 말한다.


"어떤 결정을 내리든 어떤 길을 가든, 지나고 되돌아보면(그리고 그때야 비로소) 모든 것이 옳았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게 밝혀질 거야."




"여보 만약 이 모든 사실을 알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면 그래도 오두막 집에서 살 거야?"


남편에게 묻고 대답을 듣기도 전에 내 마음속에는 이미 답이 떠올랐다.


'나는 그래도 오두막 집에 살래. 오두막 집에 안 살았으면 모아나도 못 만나고, 제주 엄마아빠도 못 만났을 거잖아. 좀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그 존재들을 내 인생에서 지울 수는 없을 것 같아.'


다시 처음의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또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아파트에 살면서는 누릴 수 없는 날 것 그대로의 생생한 삶이 그곳에 있었기에. 꼭 만나야만 했던 귀한 인연이 그곳에 있었기에.


우리는 제주 오두막에 살아야만 했다. 제주의 환대이기도 했고, 테스트이기도 했다. 제주도는 허락받은 자만이 살 수 있는 곳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겉보기에는 마냥 아름답고 평화로운 제주도이지만, 섬이 허락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고 육지로 돌아가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나는 얄궂은 섬의 테스트를 통과했고 남은 시간을 제주의 품에 폭 안겨 보낼 수 있었다.




400평 정원 있는 집에서 7평 원룸으로 이사한 후, 본격적인 제주살이가 시작됐다.

브런치 글 이미지 11


남편 없이 나 혼자 제주 산다! 완전 럭키비키 잖아 :)

화요일 연재
이전 06화 400평 제주산골 오두막 살이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