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 5년 : MD / 마케터 / 기획자
나의 인생 2막은 퇴사로부터 시작되었고, 소명을 찾고자 하는 욕구가 나를 퇴사로 이끌었다. 물론 나를 찾는 여정이 오직 '일, 소명'에만 국한된 일이 아니라는 걸 지금은 깨달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나의 일, 소명을 빼놓고는 <나를 찾아서>의 여정이 완성될 수 없다.
내 소명이 직장일리 없다.
다시 퇴사했던 시점으로 돌아와, 일에 대한 나의 마음가짐을 떠올려 본다. 나는 일 하기 싫었던 적이 없다. 물론 출근하기 싫었던 적은 있다. 하지만 일하며 몰입하는 순간과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의 협업을 꽤 즐기는 사람이었다. 사명감과 책임감이 투철한 성향이라 '이 일은 할 가치가 있어.'라고 생각한 일에는 온몸과 마음을 바쳐 몰입했다. 한 번도 일을 중도에 그만두거나 어설프게 마무리 지어본 적은 없다.
다만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회사에만 의미 있는 일 말고, 나에게도 의미 있는 일. 그리고 인정받고 싶었다. 적어도 내가 노력한 만큼의 인정은 돌아오길 바랐다. 하지만 회사는 그렇게 정직하게 굴러가는 곳이 아니었고, 개인 삶의 의미까지 챙겨줄 여력이 없었다. 그때의 나는 너무 순진하고 전략적이지 못했다. 그때 나는 겨우 스물셋이었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건, 회사생활에는 '운'이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점이다.
먼저 '인복'은 필수다. 열심히 일하는 것보다 나를 어여삐 여겨 줄 상사를 잘 만나는 게 더 중요하다. 아무리 온몸 불살라 일해도 인정해 주고 이끌어 줄 사람이 없으면 맨땅에 헤딩만 하다가 이마에서 피만 철철 흘리게 될지도 모른다. 안타깝게도 나는 상사복이라는 게 지지리도 없었다.
내가 처음 배정받은 팀은 살벌했다. 회사에서 제일 기 센 사람이 다 여기 모여있나 싶었다. 술과 눈물로 범벅된 회사생활을 해야 했다. 남녀차별, 학연 지연도 만연했다. 일을 잘하는 것보다 남자인 것이 더 유리했고 서울 중심에서 나고 자란 금수저면 인정받기에 더 유리했다.
답답한 마음에 사주를 보러 가면 "회사 생활이 꽤나 힘들겠어.... 끌어주는 사람이 없네. 그래도 좀 더 버텨봐. 결국은 인정받고 승승장구할 거니까."라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더 버티다가는 승승장구하기 전에 승천을 할 지경이었다.
또, 나는 '역마살'이 짙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데, 회사 안에서도 '역마살'이 발휘될 줄이야. 나는 2011년 하반기 공채로 입사해서, MD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온라인 MD로 일하면서도 담당 카테고리가 두 번이나 바뀌었고, 그 후에는 온라인 몰 마케터로 업무가 변경되었다. 심지어 팀을 옮기고 몇 달 후에는 내가 담당하던 온라인 몰이 갑자기 사업이관을 하게 되면서 나도 덩달아 계열사 이동을 했다. 같은 회사 브랜드를 달고 있지만 엄연히 다른 회사였다. 재입사 절차를 밟아야 했고 출근지도 서초구에서 중구로 바뀌었다. 회사 입장에서나 사업이관이지 나에게는 '이직'이나 다름없었다. 이직한 회사는 직원들 복장부터 달랐고 회사 문화에도 차이가 커서 나는 경력직처럼 새로운 회사에 적응하느라 애를 먹었다.
동기들도 안쓰러워할 만큼 혹독한 회사생활이었다. 본인이 원해서 혹은 문제가 생겨서 부서이동을 하는 경우는 있지만, 나처럼 본인의 의사와 전혀 상관없이 팀을 옮기는 경우는 잘 없었다. 더욱이 계열사 이동까지 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같이 입사한 동기는 일에 열정이 없는데도 똑똑하고 인성까지 좋은 상사를 만나 1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똑같은 부서에서 널널하게(본인도 인정한다) 일하다가, 지금은 육아휴직을 쓰고 남편을 따라 미국에 갔다. 각자의 팔자이기에 회사 탓을 할 수가 없다. '운'이라고 밖에 설명할 길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유 없는 고통은 없다고 하지 않는가. 나의 회사생활도 과정은 험난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결국은 모든 게 '오히려 잘 된 일'이었다.
회사생활이 다사다난했던 덕분에 나는 5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두 가지 직무와 두 곳의 회사문화를 두루두루 경험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이직한 회사에서는 소울메이트라 해도 과장이 아닌 인생친구를 만났다. 계열사 이동이 없었다면 그녀를 만날 일도 없었을 텐데, 얼마나 다행인 일인지.... 그녀와의 인연을 떠올리면 감사하는 마음이 차오른다.
피 튀기는 MD의 삶
나의 첫 직무는 MD였다. 'MD'는 Merchandiser의 약자이지만, '뭐(M)든지 다(D)한다.'의 줄임말이라 불린다. 시장, 경쟁사, 상품 분석부터 업체 발굴, 상품 소싱, 상품 기획, 판매와 CS(고객서비스) 관리까지, 모든 과정을 총괄한다. 예를 들면 고구마를 판다고 했을 때, 땅에서 고구마가 캐어지는 순간부터 고객에게 전달되는 모든 과정을 아우르는 직무이다.
하지만 MD에게 주어진 역할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자기에게 할당된 매출목표를 채우는 것. 그 역할을 하지 못하면 MD는 존재이유가 없다. 그렇기에 멀찌감치서 봤을 때는 상품을 기획하는 멋진 업무인 것 같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피 터지는 매출싸움의 현장인 것이다.
MD는 영업직에 가까웠고, 나는 영업에 소질이 없었다. 업무를 직접 경험하기 전에는 몰랐다. 내가 영업에 젬병이라는 사실을. 매일 아침, 내 이름과 매출 목표, 일일 달성률이 적힌 이메일을 열어보는 것으로 하루 일과가 시작됐다. 이메일에는 개인 실적뿐만 아니라, 사업부 소속 MD 전원의 이름과 실적까지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깔끔한 표로 정리되어 있었다. MD들은 이마에 자기 실적이 문신처럼 새겨진 채로 살아야 했다. MD에게는 실적이 인격이었다. 그렇기에 서로의 인격을 지키느라 365일 보이지 않는 기싸움이 팽팽했다. 동료라기보다는 경쟁자로 느낄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시장분석부터 CS까지 모든 과정에 최선을 다했지만, 매출목표를 채우는 일에는 애를 먹었다. 역시 너무도 순진했고 전략적이지 못했고, 회사 전체의 흐름을 보는 안목이 없었다. 시장 트렌드를 읽는 일, 좋은 상품을 소싱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건 '광고할 자리를 선점하는 일'이었다. 왜 내 옆에 앉아있던 MD가 그토록 마케팅 팀을 드나들고 마케터들과 술을 마셨는지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술을 좋아하고 사교성 좋은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내가 마케터가 된 후에야 깨달았다. 그는 노는 게 아니라 부지런히 일을 하고 있었다는 걸....
한 가지 더 나의 영업활동에 제약이 되었던 건 나의 '지나친 정직성'이었다. 오은영 박사님이 '지나친 정직성'을 가진 사람은 사는 게 피곤하다고 하던데,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나는 그런 축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약간의 과장된 문구로 상품을 소개해서 무념무상으로 온라인을 떠돌던 고객이 내 상품을 사도록 만들어야 했지만, 고객에게 충동구매를 선동하는 것 같아 양심에 찔렸다. 내가 사 먹고 싶은 상품, 우리 가족에게도 선물하고 싶은 좋은 상품을 소싱하는데 집중했다. 그래야 그나마 양심에 가책 없이 상품을 팔 수 있으니까.
부지런히 상품을 소싱하고 스토리를 입혀 판매했지만, 아무리 좋은 상품이라 해도 눈에 띄는 자리를 선점하지 못하면 고객에게 전달되지도 못하고 묻혀버리기 일쑤였다. 게다가 고객들은 좋은 상품보다 저렴한 상품을 좋아했다. 영업에 영 소질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어떻게든 실적을 맞추려고 노력했고, 다행히 인격 쓰레기 MD로 낙오하진 않았다. 하지만 매일 매 순간 일하는 게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이 느껴졌다.
(물론 MD라는 직업은 매력적이다. 다만 내가 어떤 부분을 견딜 수 있고, 견딜 수 없는지가 중요하다. 실적 압박과 동료와의 경쟁, 그 무엇보다 숫자가 중요한 직무의 특성은 나에게는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다.)
상품을 아는 마케터, 디자인을 이해하는 마케터
그 후 온라인 마케팅, 기획 업무를 맡았다. 팀이 바뀐 건 피곤한 일이었지만 마케팅, 기획 업무가 훨씬 잘 맞았다. 똑같은 제품도 어떤 스토리로 파느냐가 중요한데 나는 스토리 만드는 걸 좋아했다. 상품을 직접 소싱할 필요 없이 주어진 상품에 맞는 스토리를 짜고 디자인을 입혀 상품을 소구 하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신나게 스토리 보드를 그리고 디자이너와 협업하며 고객에게 소구 할 수 있도록 기획했다. 매출 목표도 개인이 아니라 팀 전체가 함께 책임지는 구조였기 때문에 팀원들과 경쟁하기보다는 협업하며 일할 수 있었다. 매출목표에 쫓기지 않으니 기획에 집중할 수 있었다.
모바일 마케팅도 나의 업무였는데 '모바일 앱 개편 프로젝트'를 외주 없이 비용 0원으로 기획하고 완성해 냈다. 아무도 시킨 적 없는 프로젝트였지만 당시 회사의 앱 UI/UX가 형편없었고,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었다. 디자인팀, 개발팀을 모아 프로젝트 팀을 결성하고 3개월에 걸쳐 앱 기획부터 리뉴얼 오픈까지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원래 앱 리뉴얼 작업은 외주를 주어 비용 n억씩 들여 진행하는 작업이기에, 성공 사례로 발표도 했다.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동안 아무도 관심이 없었지만, 막상 앱 리뉴얼이 성공적으로 완료되고 나니 팀장님도 아주 보기에 좋다며 좋아하셨다. 물론 그뿐이었다. 두둑한 인센티브나 우수한 평가와는 상관없는 프로젝트였다. 그럼에도 '꼭 필요하고, 의미 있는 일'이라는 점이 나를 행동하도록 이끌었다.
MD출신이기에 '상품을 이해하는 마케터'로서 꽤 유리했다. 나는 다른 마케터보다 매출에 대한 현실적인 감각이 몸에 배어 있었고, 상품과 업체에 대한 이해도도 높았다. 또 평소에 그림,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있어서 디자이너와의 협업도 수월했다. 디자이너들은 '디자인을 이해하는 마케터'의 존재를 달가워했다. 나의 상상을 현실로 구현해 주는 디자이너, 개발자와의 협업은 나에게도 큰 즐거움이었다.
하지만 나는 '운발' 받을 때까지 버티지 못했다. KPI(핵심성과지표)가 자기 일기장인 양 나를 비하하는 말을 써놓는 상사와 회사에서 시키는 대로만 해서 오직 자신의 승진만이 목표인 로봇 같은 상사에 둘러싸여 회사생활에 대한 회의감만 짙어졌다. 일에 대한 열정이 오히려 회사생활을 버티기 어렵게 만들었다.
회사에서 열심히 일할 수록 '퇴보'하는 느낌이 들었다. 회사를 10년 더 다닌다 해도 생계를 유지하는 것 외에는 큰 의미가 없어 보였다. 그리고, 나에게 일은 생계유지 그 이상의 의미였다.
그렇게 5년 간의 쓰나미 같았던 회사생활도 막을 내렸다.
누군가는 좋은 직장에 다니며, 안정적으로 돈을 벌고, 주말에는 쉬고, 여름과 겨울에는 휴가를 떠나는 일상만으로도 만족한다. (퇴사 후 좌충우돌을 겪으며 그 일상을 유지하는 것도 아무나 누릴 수 없는 가치있는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나의 경우 안정적인 삶이 주는 가치로는 만족이 되지 않는 사람이었다. '나는 왜 여전히 만족하지 못하지?' 혼란스러웠다.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라 '저마다 추구하는 삶의 가치가 다르기 때문'이라는 걸 나중에야 깨달았다.
나에게 일은 직장이나 직업이라기보다는 '내 삶을 완성해 가는 과정'의 일부이다. '평생 일을 하고 싶다.'라는 마음이 오히려 나를 퇴사로 이끌었다. 어차피 평생 일할 거면 이왕이면 내가 좋아하고 잘하고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게 맞지 않을까,라는 정당한 사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책『돈과 나와 일』에서 구선아 작가는 말한다. "나에게 일은 삶 안으로 들어와야 하는 것이지, 밖으로 나가거나 분리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라고. 내 말이 그 말이다. 나는 일과 삶의 균형보다는 일을 하는 게 나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삶에서의 성장이 또 나의 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그런 삶을 꿈꾼다.
나는 지금도 평생 일하고 싶다. 그렇기에 여전히, 그리고 기꺼이 방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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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화에서는 퇴사 후 경험한 새로운 직무와 잊고 있던 나의 DNA를 발견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5년간 '마케터, 기획자'로서 일의 의미를 정리해 보기
자율 책임 권한을 부여받았을 때
의미 있는 일을 할 때
같은 목표를 가진 동료와 협업하며 시너지 낼 때
의미 없이 반복되는 일을 할 때
시키는 대로만 해야 할 때 (자율성 박탈, 부품으로 전락)
노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환경에서 일할 때
매출목표 등 단기적인 실적에 압박을 받을 때
스토리텔링 / 의미 / 사명감 / 자율성 / 기획 / 디자인 / 상생 / 협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