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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텔라윤 Aug 14. 2024

나의 소명을 찾아서 2편.

강사 DNA : 바른 식생활 강사 / 마음 챙김 기업강사


I have a dream.


퇴사 한 달 후 써놓았던 나의 포부이다.

1) 한 가지를 잘 해내고 싶고, 지속적으로 능력을 향상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싶다. 그 한 가지 능력이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일이기를 바란다.

2) 아이들이 스스로 중심을 잡고, 행복하며, 호기심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하나의 기준에 의해 획일화되지 않고, 본인이 잘하는 것을 발견/개발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신체적/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데 기여하고 싶다.

_2016년 8월 30일.


8년 전 나의 포부를 해석해 보자면,


전문성과 성장, 사명감에 대한 욕구를 품고 있었다. 그 대상은 아이들을 향하고 있었다. 무언가를 가르치고자 하는 욕구라기보다는, 아이들이 타고난 본성대로 살아가며 몸과 마음이 건강할 수 있도록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아이들 앞에서 떳떳하려면, 내가 먼저 온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명상하고 글 쓰고 건강자립을 공부하며 나를 바로 세우기 위해 노력한 것은, 내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이끌어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지난 화에서 언급한 '지나친 정직성'은 퇴사 후에도 여전히 건재했다. 물론 무엇이든 지나치면 해롭다. 하지만 때로는 나를 괴롭게 하기도 하는 지나친 정직성을 나는 '진정성'이라 부르고 싶다.






살게 하는 사람.


퇴사 2년 후, 꿈이 이루어졌다. 유치원과 초등학생 아이들에게 바른 식생활을 교육하는 강사가 되었다. 우연히 기회가 닿아 자연스럽게 일을 하게 됐다.


나의 역할은 아이들에게 바른 식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교육내용을 전달하는 것이었고 물론 그 역할에도 성실했지만, 남몰래 품고 있는 목적이 있었다.


'아이들과 만나는 시간 동안 사랑을 주고받는 것.'


아이들과 눈을 맞추며 마음으로 소통하고, 기쁨을 주고받는 시간이기를 바랐다. 나 또한 어릴 때 스치듯 만났던 어떤 한 사람과의 시간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따뜻한 눈빛, 말 한마디, 손길 한 번은 평생 몸과 마음에 새겨진다. 그 기억이 사람을 살게 하기도 한다.


나는 아이들에게 그런 존재이고 싶었다. 나의 존재는 잊히겠지만 어렴풋하게나마 따뜻함을 느꼈던 기억을 남겨주고 싶었다.


2년 넘게 아이들과 만나면서 단 한 번도 감정적으로 미움이나 짜증을 품어본 적이 없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그동안의 몸 마음 훈련이 헛되지 않았음을 느꼈다. 우수 강사로 선정되었을 때보다 더 기뻤던 건, 아이들이 나의 진심을 알아주었을 때였다. 아이들은 다 안다. 내가 그들에게 애정을 갖고 있는지, 의무적인 역할만 수행하고 있는지를.


'작년과 똑같은 수업내용이고 선생님만 바뀌었는데, 올해는 더 재미있게 느껴졌다.'


초등학교 5학년이 쓴 평가지를 읽으며 미소를 숨길 수가 없었다.


나는 사람을 만나면 기 빨리는 성향인데 아이들과 만날 때는 오히려 에너지가 충전되었다. 그런 면에서 아이들과 만나는 일은 천직이라 할 만큼 내게 잘 맞는 일이었다. 아이들의 행동은 엉망진창이기도 하지만, 그 본성은 순수하고 맑다. 그들이 뿜어내는 맑은 빛은 오히려 나를 치유해 주었다.



(출처 : Unsplash)




하지만 이 일에도 몇 가지 한계가 있었다.  


01. 교육내용이 늘 비슷했다. 내가 교육 커리큘럼을 짜는 게 아니라 정해진 내용을 전달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건 장점이기도 하다. 매번 새로운 교육을 기획해야 하는 압박이 없기에. 하지만 분명한 한계이기도 했다.


02. 월급에도 한계가 있었다. 강사일은 일주일에 서너 번 정도 있었다. 이 또한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일주일에 서너 번 일하고, 게다가 하루 중 반나절만 일하고 퇴근하니 나머지 시간을 자율적으로 쓸 수 있어서 좋았다. 하지만 벌 수 있는 돈이 한정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아이들과 만나는 시간은 늘 기쁨을 주었기에 일을 그만둘 생각은 없었지만, 코로나가 터졌다. 유치원과 학교가 휴업을 하고 수업이 온라인으로 전환되며 자연스럽게 일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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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활동을 하면서 나의 오래전 꿈이 떠올랐다. 나는 중고등학교 시절 내내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어쩌다 보니 경영학과에 입학했고 마케터가 되었다. 그리고 선생님의 꿈은 까마득하게 잊고 살았다.


물론 정규직 교사가 하는 일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얕게나마 오래전 꿈꾸었던 선생님이라는 역할을 경험해 볼 수 있어서 기뻤다. 아이들과 만나는 일은 내가 생각한 것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나에게 잘 맞는 일이라는 걸 몸소 경험할 수 있었기에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제주에서 1년 동안 쉼의 시간을 보낸 후, 또 한 번 자연스럽게 기회가 찾아왔다.


+) 제주살이 이야기 https://brunch.co.kr/@interstellayoon/11



마음을 살리는 사람.


몸의 건강을 돌보는 강사일에 이어 이번에는 마음을 챙기는 일이었다. 좋은 기회가 닿아 기업에서 마음 챙김 강사로 일하게 되었다.


나는 말보다 글이 편하다. 사교성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요, 말 주변이 없는 것은 더더욱 아니지만, '글'이 '말'보다 나에게 더 편안한 소통수단인 것은 분명하다.


말발을 타고나지 못한 내가 기업강사로 일하기 위해서는 치열한 연습만이 살길이었다.



소규모로 명상 모임을 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었다. 단순히 명상을 오래 했다고 해서 강의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강의 기술이 훌륭하다고 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닿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모든 게 적절히 조화롭게 어우러져야 한다. 명상에 대한 올바른 이해, 경험으로써 알고 있는 삶의 기술, 그리고 기본적인 강의 실력,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진정성까지.


강의라는 행위는 하나의 '예술'처럼 느껴졌다. 다른 예술활동과 마찬가지로 나의 메시지를 전함과 동시에 마음이 통해야 했다. 평가는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자유였다.


강의에 대한 만족도는 기업 교육 담당자와 교육생들에 의해 냉철하게 평가되기에 살벌한 기운도 있었다. 아이들과 만날 때는 '선생님이 오늘 무슨 재미있는 걸 알려줄까?' 하는 기대감에 가득 찬 눈빛과 마주했다면, 기업 교육을 할 때는 '얼마나 유익한 교육을 갖고 왔나 한 번 봅시다.' 하는 약간의 의구심을 품은 눈빛과 마주해야 했다. 하지만 나 또한 직장인이던 시절이 있었기에 교육생과 교육담당자에게 동료와 같은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었다.



(출처 : Unsplash)



결국 본질은 사람.


이 세상에 정보는 이미 넘쳐난다. 강의에 설득력과 논리성, 명확성이 있어야겠지만, 전달하는 내용에 특별히 다를 바가 있을까?


강의내용은 툭치면 튀어나오게끔 통째로 숙지했다. 외운 내용을 달달 읊기 위함이 아니라, 강의내용에 대한 불안함이 없어야 강의하는 시간 동안 사람들과 눈빛으로 마음으로 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교육내용에 대한 이해와 숙지는 기본이요, 그들을 한 존재로써 온전히 존중하고 집중하는 마음과 태도가 중요하다. 나의 강의가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비결을 하나만 꼽자면 나의 치부이기도 한 '진정성'이라 말할 수 있겠다.


결국 본질은 같았다. 아이들을 만나는 일이나 어른들을 만나는 일이나. 모두 사람을 만나는 일이기에.


살벌한 얼음 위를 걷다가 따뜻한 온기를 만났을 때 그 감동이 더 깊이 다가오듯, 시작할 때는 굳은 얼굴로 앉아있던 교육생들의 얼굴이 강의를 마칠 때쯤 눈 녹듯 부드러워져 있는 걸 마주 볼 때의 희열은 그만큼 더 컸다. 그 속은 알 길이 없으나, 또 금방 사라질 마음이라 하더라도 평안함에 이른 얼굴들을 보고 있자면 나 또한 커다란 내적기쁨을 느꼈다. 충만해진 마음으로 강의실을 떠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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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이유로 강사활동은 잠정 중단 상태이지만, 앞으로 나의 일을 함에 있어서 강의 경험도 값지게 쓰일 거라 믿고 있다. 나의 진심이 통하는 순간이 또 오리라고.



작은 불쏘시개로부터 장작불이 붙어가듯
가치 있는 일은 작지만 꾸준히 밀어 가야 한다.

_박노해의 걷는 독서








10년 장롱면허에서 10만 킬로 경력의 베스트 드라이버가 되기까지.


강사활동을 하며 또 하나의 큰 수확은 운전 실력이다.

처음 바른 식생활 교육을 시작했을 때 나는 '10년 장롱면허 보유자'였다. 교육지는 매일 바뀌었고, 매일 아침 출퇴근 시간에 서울 수도권 도심 구석구석을 찾아다녀야 했다. 때로는 세종, 제천, 대전까지 장거리 운전을 해야 할 때도 있었다. 운전연수는 따로 받지 않고 남편이 몇 번 교육을 해주었다. 폐차 직전의 아빠차를 끌고 현장에 투입되었다.


고속도로를 처음 탔던 날, 빵빵 거리며 쌩쌩 옆을 지나가는 차들 때문에 들썩이는 차 안에서 식은땀을 줄줄 흘렸던 기억이 선명하다. 왕초보 운전실력은 내 사정이고, '교육지에 제시간에 도착해야 한다'는 미션이 있었기 때문에 죽기 살기로 운전했고, 나의 운전 실력은 늘어나는 키로수만큼 금방 늘었다. 아빠차를 폐차한 후에는 결혼 후 장만한 차로 강의를 다녔는데 6년 차에 키로수가 10만을 넘었다.


어린이 식생활 교육 때 운전을 연마한 덕분에 마음 챙김 기업 교육을 할 때는 2~3시간 걸리는 지방 연수원으로 교육을 가면서도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다닐 수 있었다.


이제와 되돌아보니 퇴사 후에도 나의 역마살 또한 여전히 건재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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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Unsplash)






'강사, 교육자'로서 일의 의미를 정리해 보기



나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조건은?

의미 있는 일을 할 때 (사명감 / 기여)

사람들과 마음으로 소통할 때

나의 진정성이 긍정적으로 발휘될 때


나의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조건은?

한계가 명확하게 보일 때 (성장의 한계, 돈의 한계)

시키는 대로만 해야 할 때 (자율성 박탈, 부품으로 전락)


일에서의 나의 키워드를 뽑아 보자면?

의미 / 사명감 / 자율성 / 교육 / 소통 / 진정성 /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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