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살이 10개월
<인사이드 아웃 2>의 주인공 '라일리'의 내면에 '불안이'의 존재가 등장하면서 혼란이 시작된다. 라일리는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할까 봐 불안함을 느낀다.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더 열심히 하고, 경쟁하고, 심지어 양심까지 버린다. 문제 될 게 있을까? 그저 더 잘하고 싶고, 더 인정받고 싶고, 더 멋진 내가 되고 싶을 뿐이다. '더 멋진 내'가 되기 위해 친구와의 우정과 자신의 '본성'까지 저버리며 앞만 보고 달린다.
우리라고 라일리와 다를 바가 있을까? 우리는 좀처럼 만족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며 살아간다. 돈을 더 많이 벌면, 승진만 하면, 집만 사면, 예뻐지기만 하면.... 심지어 '건강'도 정복해야 할 목표가 된다. '건강해지기만 하면....' 목표 앞에 도착하고 나면 순식간에 그 상태에 익숙해지고 허탈해진다. '더 멋진 나'는 늘 저만치 앞서간다. 우리는 또 그다음 목표를 찾아 신경을 곤두세운다. '이제 다음은 뭐지? 또 다음은 어디지?' 쉴틈이 없다.
대체 우리의 도착지는 어디일까? 우리는 어디에 도달해야 만족할 수 있을까?
나도 마찬가지였다. 수능만 잘 보면, 좋은 대학만 가면, 좋은 회사에 취직만 하면, 인생이 완성되는 줄 알았다. 목표가 생기면 누구보다 성실하게 노력해서 반드시 성취해내곤 했다. '목표지향적' 성향에 운까지 더해져 대기업에 취직했고, 1년은 행복했다. 그리고 의문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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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를 한 후에도 끊임없이 배우고, 도전하고, 성장을 추구하며 살았다. 카페알바도 해보고, 배우고 싶은 분야의 강의도 듣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건강공부를 하고, 나를 알아가기 위해 인문학, 명리학, 점성학 공부도 했다. 그 와중에 기회가 닿는 대로 일도 계속했다.
새로운 배움은 늘 즐거웠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나의 부지런한 배움이 '부족하다는 느낌'에서 비롯되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무언가를 계속 더함으로써 부족함을 채우려고 아등바등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럼에도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상태'에는 도달할 수 없었다. '부족하다는 느낌'과 '이상적인 내 모습'은 내 안의 불안이가 만들어낸 허상이었다.
어떻게 하면 멈출 수 있을까? 명상으로 내 안에서 머무르며 쉬는 방법을 배우지 않았던가? 글 쓰고 그림 그리며 혼자만의 창조적 시간을 즐길 줄 알게 된 내가 아니던가? 하지만 배움이 습관이 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나의 '관성'은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는 쪽으로만 움직이고 있었다.
우리는 좀처럼 쉬지 못한다. 할 걸 다 하고 쉬면서도 죄책감을 느낀다.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있어도 될까? 남들은 다 열심히 사는 것 같은데 나만 이렇게 게을러도 될까?' 배우고, 성장을 추구하고, 열심히 사는 건 좋다. 다만 열심히 하는 만큼, 충분한 '쉼'도 필요하다.
나 또한 속도를 줄이고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쉬려고 해도 쉴 수가 없었다. 도통 쉬어본 적이 없기에 어떻게 멈춰야 할지를 알지 못했다. 행운인지 불운인지, 마침 코로나로 인해 남편이 운영하던 가게의 폐업절차를 밟고 있었다. 사업자 대출을 갚으려면 살고 있던 집을 팔아야 했다.
사업을 정리하고 집도 팔았다. 그리고 짐을 꾸려 제주로 향했다. 제주에서 사업을 하거나 일을 하거나 무언가를 하기 위한 계획은 없었다. 오직 '쉬겠다'는 마음뿐이었다. 인생을 바꾸려면 사는 곳을 바꾸고, 옆에 있는 사람을 바꾸라고 하지 않던가. 우리는 제주로 삶의 터전을 옮겼고, 자연스럽게 만나는 사람도 바뀌었다. 내 인생의 또 하나의 변곡점이 시작되고 있었다.
'퇴사하고 쳇바퀴에서 뛰어내렸지만 계속 뛰고 있다. 걸어도 되는데, 누워서 쉬어도 되는데, 계속 달린다. 멈추는 방법을 모른다. 불안한 마음으로 달린다. 멈춤 버튼이 고장 난 물건처럼 계속 돌아간다. 배터리 방전이다. 어떻게 하면 멈출 수 있을까. 인생을 백지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다. 나는 잡다한 물건으로 가득 찬 방 같다. 정리가 필요하다.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가져가야 할까....'
_제주살이 시작 무렵의 메모
2022년 제주에서 10개월을 살았다. 2개월 반은 남편과 함께 살았고, 나머지 7개월 반은 혼자 살았다. 남편은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게 되어 다시 육지로 돌아가고 나는 제주에 남았다.
처음에는 습관적으로 회의감이 들었다. '내가 지금 여기서 혼자 뭘 하고 있는 거지?' 매일 아무도 없는 숲 속을 걸으며 불쑥불쑥 올라오는 감정과 생각들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Q. '죽을 때 지금 제주에서의 시간을 돌아보며 후회가 남는다면 어느 쪽에 가까울까?'
A. '아, 그때 1년을 그렇게 허비하는 게 아닌데.'
vs. '아 그때 1년을 더 마음 편히 즐길걸!'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답이 나왔다.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온전히 살아가는 것뿐이다.
'사람마다 시기가 다르다. 성장하는 시기, 배우는 시기, 변화하는 시기, 숙성되는 시기, 깨우치는 시기가 모두 다르다. 지금은 나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공부하고 나를 증명하기 위해 일하던 굴레에서 벗어나 쉬어가는 시간이다.‘
_제주살이 초반의 메모
그렇게 나를 다독이며 하루하루를 살았다.
제주에서의 시간은 나에게 두 가지를 가르쳐주었다. '쉼, 그리고 연결감.'
01 자연과 연결되는 시간
제주의 시간은 자연에 맞춰 흘러간다.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온다. 내가 살았던 곳은 중산간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기 때문에 희미한 가로등 말고는 불빛도 없이 캄캄했다. 아침에 해가 뜨면 일어나서 숲과 오름과 동네를 산책하고, 저녁 무렵에는 바다에 가서 일몰을 바라보았다. 숲 속을 걷고 바닷가를 산책하는 게 가장 중요한 일과였다. 제주 숲 속에서는 거의 늘 혼자였다. 제주 현지 사람은 저마다 일하느라 바쁘고, 관광객은 유명한 카페나 관광지를 구경하느라 바빴다.
매일 똑같은 숲에 가도 매일이 달랐다. 제주의 숲에서 자라는 식물은 다채로워서 지루할 틈이 없었다. 숲 속을 헤매고 다니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낯선 세상에 뚝 떨어진 듯 느끼기도 했지만, 마음은 고요하고 평안했다. 사람들은 '아무도 없는 숲 속을 걷는 게 무섭진 않아?'하고 자주 물었지만 자연에 파묻혀 있을 때면 오히려 안전하다고 느꼈다. 자연의 품은 아늑했다.
제주에 살면 마냥 좋을 것 같지만 사람 사는 곳은 똑같다. 사람과의 불화도 있고 불쾌한 감정이 올라올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바다로 달려갔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와 철썩거리는 물결을 바라보고 있자면, 사소한 감정 따위는 금방 사그라들었다. 마음속에 켜켜이 쌓인 과거의 묵은 때까지 씻겨나가는 듯했다. 파도의 리듬에 맞춰 들숨 날숨을 반복하다 보면 이내 툭툭 털어버리고 일어설 수 있었다.
'그까짓 거....'
자연과 연결될수록 '무언가 대단한 존재가 되고자 하는 욕망'이 줄었다. 나에게 주어진 오늘 하루가 중요했다. 자연 속에서 내 마음은 감사함, 평안함, 온전함으로 채워졌다. 자연을 닮고 싶고 '자연스럽게' 살고 싶어졌다. '무력함'도 아니고 '갈망함'도 아니고 '존재함'에서 의미를 찾는 순간이 늘었다.
'자연은 결코 서두르는 법이 없다.(....) 싹은 마치 짧은 봄날이 영원하기라도 한 듯 서두르거나 갈팡질팡하지 않고 서서히 자라난다. 자연은 자신이 하는 모든 일에 각각에 필요한 시간만큼 지극한 공을 들인다.(....) 지혜로운 사람은 늘 평온한 마음을 유지하며, 안절부절못하거나 조바심치는 법이 없다. - 그는 어떤 산책자들이 매 걸음마다 온몸으로 휴식을 취하는 것처럼 매 순간 자신이 있는 그곳에서 머문다. - 반면 그렇지 못한 사람은 피로가 쌓여 갑자기 멈춰 서게 되기 전까지는 다리 근육을 풀 생각을 하지 않는다.'
_1839.9.17. 소로의 일기 중. <소로의 문장들>
02 어떤 말보다 깊은, 동물이 주는 위로
'나 혼자 제주살이'가 외롭지 않았던 건 제주에서 만난 동물들의 역할이 컸다. 숲 속에서 노루와 눈이 마주친 순간, 소와 함께 오름을 걸었던 시간, 동네에서 만난 강아지와의 산책, 그리고 내가 살던 집으로 찾아온 고양이 '모아나'와의 추억이 생생하다.
모아나는 내가 제주로 이사를 하고 며칠 후 우리 집 문 앞에 나타나 냐옹거리며 아는 척을 했다. '우리가 원래 알던 사이인가?' 싶을 만큼 나를 바라보는 눈빛과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친근했다. 모아나는 내 무릎에 올라와 고릉거리며 세 시간씩 낮잠을 잤다. 다리가 저리지만 모아나의 평화로운 낮잠을 방해할 수 없어 버티다가 날이 어두워지기도 했다. 이제 나도 들어가서 자게 내려가라고 하면 얼굴에 잠이 덕지덕지 묻은 채로 나를 쳐다보며 '냥!' 하고 불평을 했다. 외출하고 돌아오는 자동차 소리만 듣고도 내가 집에 왔음을 알아차리고 어딘가에서 뛰어나와 나를 반겼다. '모아나-' 하고 부르면 나를 쳐다보며 우렁차게 대답을 했다.
서로 말을 주고받진 못했지만 눈빛으로 손길로 온기로 마음을 나눴다. 심장을 맞대고 서로의 존재를 느꼈다. 난생처음이었다. 나 아닌 다른 존재와 이토록 깊이 연결될 수 있음을 느낀 건. '모아나'이기에 가능했다. 모아나는 나를 알아봐 주었고 제주에 사는 내내 나의 소울친구가 되어주었다. 그가 나에게 주었던 위로는 그 어떤 값진 말과도 비교할 수 없다.
03 제주에서의 느슨한 연결감
제주에서 10개월을 사는 동안 생각보다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 '제주 엄마아빠'라고 부를 만큼 제주살이 초창기에 우리를 잘 챙겨준 부부, 삶의 지혜를 나눠준 카페 사장님, 마을 도서관에서 만난 친구와 그녀의 남편, 나와 한 살 차이로 금방 친구가 된 또 다른 카페 사장님, 화가 언니, 히피 같은 언니 등등.
제주 사람들이 텃세가 있다는 소문이 있는데 내가 만난 사람들은 정 많고 따뜻했다. 옆집 할머니는 김장김치를 내어주기도 하고, 옆집 아줌마는 집으로 초대해서 과일이며 커피며 이것저것 내어주었다. 육지에 살 때는 옆집 사람과도 데면데면하게 인사나 겨우 하며 살았는데, 제주의 대문은 활짝 열려있었다.
물론 제주의 열린 관계가 불편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사교성은 좋지만 내향적이고 간섭받는 것을 싫어한다. 하지만 제주에서 만난 친구들과의 시간은 정겨웠다. 제주 사람들도 바쁘다. 투잡 쓰리잡 하는 사람도 있고 제주 풍경을 구경할 새도 없이 일터에만 있는 날이 더 많다. 그럼에도 표정과 행동에 여유가 묻어있다. 좀처럼 서두르는 법이 없다. 종종거림은 제주와 어울리지 않는다. 적어도 내가 만난 사람들은 그랬다. 그들을 보며 나의 하루에 집중하고, 중요한 것에 중심을 두고 살면서도, 여유를 잃지 않는 태도를 배웠다.
나의 제주 친구들은 낯선 나를 편견 없이 바라봐주고, 나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었다. 낯선 이에게 시간과 마음을 내어줄 수 있는 건 마음에 여유공간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자신의 일상을 성실하게 꾸려가는 그들을 보며 나도 나의 일상으로 돌아가 정성스럽게 나의 삶을 가꾸고 싶어졌다. 서두르지 않고 마음을 다해 나의 하루를 살아가고 싶어졌다.
"아무리 채워도 무엇을 가져도 마음을 채울 수 없어요. 우리 마음이 세상보다 크기 때문에. 그저 만족하면서 살면 돼요. (.....) 따뜻하게 잘 집이 있고 먹을 음식이 있고 건강하면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면 돼요. 감사하는 하루하루가 쌓이면 좋은 날이 오더라고요. 늘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더 가지려고만 하면 오히려 부족함이 채워지지 않고 나눌 여유가 없어져요."
_ 제주 친구가 나눠준 지혜
나와의 연결감. 고독 속의 평화
제주에서의 하루는 매일 나와 함께 시작해서 나와 함께 마무리되었다. 나와 이렇게 많은 시간을 보내본 적이 있었던가. 숨을 고르며 늘 나와의 연결감을 유지했다. 평소에 내가 자주 되뇌는 말도 제주살이를 하며 내 안에서 샘솟아 난 문장이다. '내가 어디에 있든, 나는 지금 여기에 있다.' 나 홀로 낯선 제주에 있으면서도 두렵거나 불안하지 않았다. 물리적으로 내가 어디에 있든, 나는 늘 지금 여기, 나와 함께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Q. 나는 어떤 사람이지?
A. 지금 이대로 충분한 사람.
Q. 남들보다 잘하는 건 뭐지? 부족한 건 뭐지?
A. 비교는 무의미하다. 이 몸과 마음과 영혼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오직 나 하나뿐이다.
Q. 내가 무엇을 알아야 할까?
A. 나에게 더 필요한 것이 없다는 것. 이미 다 갖고 있다는 것. 진실로, 진실로, 두려움 없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고, 한번 더 크게 웃고, 지금 이대로를 만끽하면 된다는 것.
Q.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지?
A. ~라는 질문은 그만. 그냥 지금부터 행복하기로 결정.
_제주살이 중반의 메모
'쉼의 불안'은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걱정, 경쟁과 비교, 사회적 의무감, 무기력한 몸'으로부터 비롯된다. 10개월의 제주살이 끝에 정의한 '쉼'이란, '마음이 평안한 상태인 것, 자연의 흐름에 맞춰 몸을 움직이고 이완하는 것, 그리고 몸과 마음이 함께 있는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이다.
나는 더 이상 쉬면서 자책하지 않는다. '쉬는 힘'을 되찾았다. 살아가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다. 쉬는 힘, 격려하는 힘, 믿어주는 힘, 시작하는 힘, 할 말을 하는 힘, 마무리하는 힘, 내려놓는 힘.... 상황을 탓하고 누군가를 탓하는 대신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한다. 누구도 내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없다. 누구도 나의 힘을 앗아갈 수도 없다. 나의 힘, 나의 생명력은 내가 지킬 수 있다. 애쓴다고 지킬 수 있는 게 아니다. 애쓰면 지친다. 힘을 빼고 내 안에서 중심을 잡고 살아가야 한다. 몸 마음 영혼의 균형감을 느끼며.
지금도 습관적인 마음으로 나를 학대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제주의 자연을 떠올린다. 물론 쉼이 필요할 때마다 제주에 갈 수는 없다. 숲에 가는 대신 매일 걷는다. 매일 두 발을 땅에 꼭꼭 디디며 걷는다. 마음이 심란할 땐 제주 바다를 떠올리며 숨을 고른다.
쉼도 단번에 깨달아지는 것이 아니더라. 방법을 안다고 바로 실행이 되지 않는다. 쉼도 몸으로 익혀야 한다. 운동을 하며 근력이 붙듯, 글쓰기 하며 글력이 생기듯, 쉬는 힘도 키울 수 있다. 숨을 쉬는 것도, 몸과 마음에 힘을 빼는 것도 꾸준한 연습이 필요하다. 잘 자고 잘 쉬고 숨 쉬고 걷는 것을 매일 연습한다. 쉼에도 힘이 필요하다.
무언가에 집중하면 몸이 긴장하는 줄도 모르고 빠져들었다. 계속 그렇게 살다 보니 긴장이 누적되어 몸이 아팠다. 집중하면서도 긴장하지 않으면 좋겠지만 타고난 기질에 습관까지 더해져 하루아침에 바뀌진 않는다. 휴식하되 게으름까지 가지 않고, 열심히 하되 무리하진 않는 적정선을 연습한다. 그러다 실패할 때도 있지만, 나만의 회복루틴을 통해 금세 제자리를 찾는다. 마음의 지혜를 쌓는 것에도 시간이 필요하듯, 몸을 지혜롭게 쓰는 것에도 연습이 필요하다. 몸과 마음 모두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과정은 험난하고 즐겁다.
나의 쉼 습관
잠을 충분히 잔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 8시간~8시간 반은 잔다.
걷는다. 호흡의 속도에 맞춰 천천히 충분히 걷는다.
과식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입맛이 당기는 음식을 적당히 먹는다.
족욕, 찜질 등으로 몸을 따뜻하게 하고 긴장을 풀어주는 습관을 가진다.
숨 쉬며 지금을 알아차린다.
쉴 수 있을 때 쉰다. 죄책감 없이 누워서 뒹굴거린다. 머리끝부터 발 끝까지 힘을 빼고 쉰다.
무사히 제주살이를 마치고 돌아오며 나에게 상을 수여했다. 이름하여 <제주 한량 상>.
'연고 없는 제주에서 무료함과 무상함으로부터 도망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삶을 겪어내며,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며 10개월을 살아왔음에 이 상을 수여합니다.'
_2022년 3월 ~ 2022년 12월.
나를 받아주고 품어준 제주에게 감사하다. 제주가 나에게 쉼을 선물해 주었듯이, 내가 경험한 오롯한 쉼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몸과 마음이 쉴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하고 싶다. 숨과 함께, 평안하고 풍요로운 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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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평안하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