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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텔라윤 Aug 21. 2024

나의 소명을 찾아서 3편.

글쓰기 DNA : 읽고 사색하고 쓰는 일


퇴사 후에도 늘 어딘가에 소속되어 일했다. 직장인 DNA는 쉽게 극복되지 않았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아이디어도 많았지만 일을 저지를 힘이 부족했다. 생각을 현실로 실현시키고 자기 일을 단단하게 구축해 나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부럽고 왜 나는 저렇게 못하는지 답답했다.

하지만 단념하진 않았다. 나에게 가능성이 없다면 꿈도 꾸지 않았을 테니까.


자립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생각하는 자립은 '어딘가에 고정적으로 소속되지 않아도 나의 재능을 발휘하여 나에게 필요한 만큼의 돈을 벌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기업 혹은 사람들과의 협업은 환영이다. 다만 기본 상태는 독립적이길 바란다.


당장 내 사업을 일으킬 능력이 없다면 ’생산자'가 되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책이든 영상이든 그림이든 왜 나는 늘 소비만 하고 있는가?’ 회의감이 들었다. 나의 콘텐츠로 나에게도 의미가 있고 세상에도 유용한 것을 만들어 사람들과 소통하고 나누는 것. 이것이 내가 가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했다.


 




생산자 DNA 01. 그림


생산자로 가는 길 위에서 처음에는 그림을 떠올렸다. 중고등학교 때의 꿈을 선생님으로 정하기 전까지 내 최초의 꿈은 화가였다.


성인이 되고 '나는 뭘 잘할까?' 고민하다가 문득 그림니 떠올랐다. 어린 시절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었다는 걸 기억해내고 무작정 스케치북을 펼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물론 결과물은 어설펐지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림을 그렸다. 날이 밝아오는 줄도 모르고 밤새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그 순수한 몰입감이 좋았다.


제주 숲과 모아나. 2022. 아이패드 드로잉.


그림을 그리는 건 나의 영혼을 풍요롭게 한다. 그림 그리는 동안에는 아무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고 오로지 그림에만 몰입한다. 그림이 매력적인 건, 완성하기 전까지는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예측할 수 없다는 점에 있다.

나의 시각과 내 안의 감성, 내 손과 오감이 협업하여 무언가 세상에 없던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어내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 있다.


주로 사람과 자연에서 영감을 얻고 느낌 가는 대로 그림을 그린다. 사람이든 자연이든 자세히 보면 모두 사랑스러운 면이 있다. 아름다운 대상들을 그리다 보면 어느새 내 얼굴은 미소를 띠고 있다. 그림을 그렸을 뿐인데 마음도 치유된다.


여기까지, 그림에 대한 나의 일방적인 애정표현이다.

애정도와 관계없이 그림은 품이 많이 드는 일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품이 드는 만큼의 결과물이 나오지 않는 일이었다. '좋아하는 걸로 먹고살 수 없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분야랄까....

사람들은 내 그림을 좋아해 준다. 그림을 계속 그렸으면 좋겠다고 말해준다. 물론 나도 내 그림을 좋아한다. 하지만 그림으로 '자립'할 길은 신기루처럼 보였다.

모아나와 나. 2023. 아이패드 드로잉.




생산자 DNA 02. 글쓰기


생산자가 되는 길에서 남은 건 하나뿐이었다.


왜 진작 글쓰기를 떠올리지 않았는지 의문이 들만큼 나는 글쓰기와 가까운 관계로 살았다. 학창 시절 국어 선생님이 되고자 했던 것도 읽고 쓰는 영역이 나에게는 가장 쉽고 재미있고 자연스러운 재능이었기 때문이었다.


얼마 전 글감을 찾느라 학창 시절 기록을 뒤적거리면서 놀랐다. 내가 가장 많이 받은 상장은 대부분 독서와 글쓰기부문이었다. 그러고 보면 대학에 다닐 때는 리포트 숙제가 가장 반가웠다. 나에게는 거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영역이었으니까. 자기소개서 덕분에 취업에도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일할 때도 기본적인 글쓰기 실력이 있으니 어떤 회사에서든, 어떤 업무이든 수월하게 해낼 수 있었다.


그럼에도 '글쓰기'는 내 인생에서 메인이 되어본 적이 없다. 늘 부수적으로 나를 돕는 역할만 묵묵히 해왔다.






2023년 10월 19일부터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https://blog.naver.com/interstellayoon



무얼 쓸지는 명확하지 않았다. 그냥 매일 써보기로 했다. 100일쯤 쓰면 무언가 명확해질 줄 알았다. 하지만 100일은 금세 지나갔고, 200일은 더 금방 지나갔다. 어느새 300일이 넘었다. 1년까지는 무엇이든 써보기로 했다. 신기하게 글을 써도 써도 쓸 거리가 생겨났다.


읽고 사색하고 쓰는 일, 이건 나에게 새로운 영역이 아니라 늘 하고 있던 일에 가까웠다. 물론 매일 쓰기 시작한 건 불과 300일 전부터이지만, 그전에도 늘 책을 읽으며 필사하고 생각하고 나의 삶에 적용하며 살았다. 매일 아침 모닝페이지를 쓰며 내 안에서 흘러나오는 감정과 생각들을 받아 적고 삶의 방향을 조율하며 살아왔다. 나 혼자 하던 작업을 공개적으로 하기 시작한 것 그뿐이었다.




글쓰기 DNA의 뿌리


'남들은 어려워하는데 나는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일, 적은 시간을 들여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일.‘ 그런 일이 나의 재능이라 했다. 그렇다면 글쓰기는 나의 재능임에 분명했다. 물론 글쓰기를 '쉽게' 하는 것이 '잘'하는 것과 직결되진 않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글쓰기는 내가 좋아하는 일이고 잘하고 싶은 일이다.



대학교 때 내 별명은 '교보소녀'였다.

허구한 날 교보문고에서 하루 종일 책만 읽는다고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나의 글쓰기 DNA는 오랜 독서로부터 왔을 것이라 추측한다. 어릴 때부터 책을 끼고 살았다. 그냥 이유 없이 책 읽기를 좋아했다.

책은 늘 아낌없이 준다. 새로운 분야를 공부할 때도, 마음이 힘들어 위로가 필요할 때도 책을 펼치면 언제나 그 안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그동안 숨 쉬듯 읽었던 책들이 내 안에 고스란히 남아 글을 써 내려갈 수 있게 도와주고 있다.



“이렇게 감정이 깊으니까 작가 하는 거겠지.”

임경선 작가의 책 ‘평범한 결혼생활’에 나오는 말이다.

나의 깊은 감성과 감정도 글쓰기에 유리했다. 감성적이고 감정도 깊어 사는 게 호락호락하지 않았지만, 글쓰기를 함에 있어서는 나만의 고유한 강점으로 쓰이고 있다.



우여곡절의 경험들도 글쓰기에 도움이 되었다.

직장인으로서 살았던 날들, 나의 삶을 살겠다고 퇴사하고 좌충우돌했던 날들, 소꿉장난 하듯 사랑만으로 배우자를 선택한 후 고단한 세상살이에 휩쓸렸던 날들, 그리고 그걸 극복했던 모든 날들이 나의 글감이 되어주었다.


글쓰기를 시작하고 보니 성찰하고 사색하는 습관, 매일 산책하는 습관, 자연을 좋아하는 성향,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는 성향, 몰입과 창작에서 기쁨을 느끼는 성향 등 평소 나의 습관과 기본 성향이 모두 글쓰기와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출처 : Unsplash)



글쓰기가 나의 소명이 될 수 있을까


나는 글 쓰는 일이 즐겁다. 누가 불러내지 않으면 하루 종일 앉아서 쓰라고 해도 쓸 수 있겠다. 즐겁게 쓰다 보니 300일 동안 매일 썼고, 브런치 작가도 되었고, 공저 에세이도 쓰고 있다. 아직 그다음에 정해진 계획은 없다. 멈추지 않고 계속 써보는 것이 나의 목표이다.


즐거운 것과 돈 버는 일이 직결되지는 않는다. 많은 작가들이 이야기하듯, 글 쓰기로 돈 벌기는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내 안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닿기를 소망한다. 내가 책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온 것처럼, 누군가에게 살아갈 힘이 되는 글을 쓰고 싶다.


무엇보다 글을 쓸 때의 내가 가장 ‘나답다’고 느낀다. 이런 느낌은 처음이다. 사랑할 때도 그 사람 앞에서 내가 나다울 수 있을 때 행복하다. 일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일을 하면서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있다면, 사랑의 마음으로 그 일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


애초에 나는 일과 삶의 분리가 어려운 사람이다. 그렇기에 일과 삶을 분리하고 균형을 맞추기 위해 애쓰기 보다는, 일과 삶이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나에게 더 맞는 방식이다.


글쓰기는 삶과 분리될 수 없다. 내 삶이 건재해야 글도 쓸 수 있다. 지난 날 내 몸과 마음이 바로 서야 아이들 앞에 설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나를 돌보았듯이.

삶을 온전히 살아내는 매일이 있어야, 매일 쓸 글도 따라온다. 그렇기에 나는 오늘 하루를 잘 살아가는 일에 집중한다. 그리고 매일 글을 쓴다.






We Are Not Enough.

어떤 글을 쓸 것인가.


늘 무언가 부족해서 더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자격증이 있어야 할 것 같고, 또 어떤 능력을 갖춰야 할 것 같고.... 몸도 마음도 바빴다.


우리는 늘 무엇을 가져야만 할 수 있고,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삶이 '가지기-하기-되기'라는 순서로 작용한다고 믿는다.

시간과 돈, 사랑 같은 것을 '가지게' 되면
책을 쓰고, 취미 생활을 하고, 휴가를 보내는 등 무엇을 '할' 수 있고,
그럼으로써 행복해지거나 만족감을 느끼게 '될'수 있다고 믿는다.


사실은 '되기-하기-가지기'의 패러다임을 거꾸로 하고 있다.

당신이 가지고 싶은 것을 살펴보고
그것을 '가지게' 된다면
어떻게 '될' 것 같은지 스스로에게 묻는 것이다.

그런 다음 그 됨의 상태로 곧장 가라.
그곳에 도달하려고 애쓰지 말고
그곳에서 시작하라.


_닐 도날드 월쉬 <신이 말해 준 것>



<되기-하기-가지기> 패러다임을 지금 바로 자기 삶에 적용해보자.



나는 사랑, 평안을 느끼고 나누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사랑과 평안을 담은 '글을 쓰는 것'이다.


그러면 나의 책이든, 소중한 인연이든, 글을 계속 쓸 수 있는 기회든, 자립이든, 나에게 필요한 것을 '갖게' 될 것이라 믿는다.



사랑과 평안을 담은 글을 쓰려면 무엇보다 내 마음이 평안해야 한다. 내 삶에 사랑이 있어야 한다. 내 마음에 평화가 있어야 평화를 줄 수 있고, 평화를 줌으로써 나에게 또다시 평화가 돌아온다. 너무 이상적인 생각일까?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그렇기에 매일 사랑하고, 나의 평안을 살피고, 글을 쓴다.


글을 쓰기 위해 먼저 어떤 자격을 '가져야'하는 건 아니다.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지금 당장 글을 쓰면 된다. 그러면 글 쓸 자격을 갖게 될 것이다. 물론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더 부지런히 매일 계속 글을 써야 할 것이다.


세상에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은 수없이 많지만, 내가 바라보는 세상을 그릴 수 있는 건 나 하나뿐이다. 글도 마찬가지이다. 내 시선과 마음을 담아 쓸 수 있는 글은 내가 쓴 글이 유일하다. 우리는 저마다 고유한 존재니까.



당신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그런 사람이 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그걸 시작하고 계속하면 당신에게 필요한 걸 '갖게' 될 것이다.  



부족한 틈을 메꾸려 애쓰기보다는 이미 내 안에 품고 있는 가능성을 꺼내어 쓰는데 집중하기로 했다.


무엇이 더 필요할까?

.

.

.

.


우리는 이미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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