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사노바 고양이 모아나

갑작스러운 이별

by 스텔라윤


낯선 남자는 다시 한번 물었다.


"고양이 주인이세요?"


난처해하는 고양이를 사이에 두고 남자와 이야기를 나눴다.


"네? 주인이라기보다는.... 저희 집에서 같이 지내고 있어요."


"아, 그러시구나. 얘 완전 개냥이죠?"


"네? 네.... 고양이 주인이 있나요? 요즘 매일 저희 집에서 먹고 자고 하거든요."


"하하. 저희 집에도 자주 와요. 간식 먹고 놀고 낮잠 자고 그래요. 몇 달 됐어요."


"아....네....."



내심 당황했지만 쿨한 척하며 모아나에게 인사하고 가던 길을 갔다.


"모아나~ 이따 만나~"


다 듣고 있으면서 안 들리는 척하는 얄미운 자식.


뭔가 찔리긴 하는지 불러도 돌아보지를 않는다.ㅎㅎㅎ


우리가 제주에 온 건 겨우 한 달 전이다.


몇 달 전부터 모아나가 이 집에 놀러 왔다면, 모아나는 우리보다 이 집 남자와 더 가까운 사이인 게 아닐까?

사료와 간식, 온갖 장난감과 담요 등등 모아나를 알뜰살뜰 챙기던 우리는 갑자기 머리가 띵해졌다.


"쟤 정체가 뭐야?"

"우리 이용당한 건가?"


남편은 이 상황이 웃기다고 했지만 나는 웃음도 나지 않았다.


'양다리였어?'


고양이에게 실연당한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나쁠 것도 없었다.


"오히려 잘됐네. 우리가 서울 가는 날도 있는데 그때 모아나가 쉴 곳이 또 있는 거니까. 우리도 덜 부담스럽고. 모아나를 예뻐해 주고 보살펴주는 이웃들이 있으면 좋은 거지 뭐."




며칠 후 그 낯선 남자에게 전해 들었는데 알고 보니 모아나는 주인도 있다고 했다.


"예? 주인이 있다고요?"


"네. 고양이를 데리고 온 사람이 있다나 봐요. 그런데 뭐 밥도 안 주고 집도 없고. 길냥이나 마찬가지죠."




자, 상황을 정리해 보자.


어린 모아나를 데리고 온 사람이 이 동네에 있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케어하지 않고 있고 있다.

모아나는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며 밥도 먹고 간식도 먹고 애정도 얻으며 살아가는 '동네 고양이'이다.


한 달 전쯤 우리가 이 집으로 이사 오는 걸 눈여겨본 모아나가 우리에게 제 발로 찾아왔던 것.


후리스만 입으면 꾹꾹이 하는 모아나
귀여운 뒷통수


아무렴 어떤가.

모아나가 행복하기만 하다면.


모아나는 밤이 되면 어김없이 집으로 돌아왔고, 평소와 다름없이 우리와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너른 마당을 뛰어 놀았고,
점점 토실토실 살도 쪘다.


하지만 더 큰 시련이 찾아왔다.


우리가 살던 오두막 집에 비가 오면 물이 줄줄 새고, 난방시설이 작동하지 않는 등 처음에는 몰랐던 하자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게다가 동네 사람들을 통해 집주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니 1년 후 보증금을 안전하게 돌려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함이 엄습했다.


모아나를 생각하며 인내심을 갖고 문제를 해결해보려 했지만, 집주인과의 좁혀지지 않는 갈등으로 우리는 결국 이사를 결심했다.




그 와중에 아무것도 모르는 모아나는 나에게 아기 쥐 시체를 선물하며 애정공세를 했다.


하필 남편이 서울에 간 날, 문 앞에 떡하니 선물이 놓여있었다.

의기양양한 모아나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속으로 눈물을 삼키고 아기 쥐를 땅에 묻어주었다.


나는 사냥도 잘 하는 멋진 고양이야.


이사할 무렵, 남편은 갑자기 육지에서 새롭게 일을 시작하게 됐고 나 혼자 제주에 남았다.


나는 원래 살던 집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새로운 집을 구했다. 7평 정도의 원룸으로.


모아나를 생각해서 어렵게 반려동물 한 마리까지는 허용되는 원룸으로 구했지만, 차마 모아나를 원룸으로 데리고 가진 못했다.


'드넓은 자연에서 뛰어놀던 고양이를 마당도 없는 원룸에 가둬두어도 되는 걸까?'

'나는 낮에 내내 밖에 있는데 모아나만 혼자 두고 종일 집을 비워도 되는 걸까?'

'제주살이를 하러 와서 모아나랑 방 안에만 있으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무엇이 모아나에게도 나에게도 좋은 선택인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고민 끝에 매일 모아나를 만나러 가기로 했다.

밥 물 간식을 주고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일단은 그렇게 해보기로 했다.


모아나와 마당에서 뛰어놀던 시간도
늠름하게 나무 타는 모아나를 지켜보던 순간도
눈 뜨자마자 모아나를 확인하며 시작하는 아침도
모아나와의 숨바꼭질 놀이도


꿈같았던 우리의 행복한 시간은 허망하게 끝이 났다.

이 상황이 가장 황당한 건 모아나였을 터.


그때 모아나의 마음을 떠올리면 가슴이 미어진다.




이사한 후 모아나를 만나러 가면 모아나는 내 차소리를 듣고 쏜살같이 뛰어왔다.

차에서 내려 모아나를 부르면 뭐라 뭐라 웅얼거리면서 나에게 달려왔다.


달려오는 모아나


매일 밥과 물과 간식을 챙겨 주었고 내 무릎 위에 앉아 함께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왜 더 이상 우리가 하루의 시작과 끝을 함께 할 수 없는지, 왜 나는 매일 차를 타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는 건지,


모아나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누냐 가지마
안가면 안돼?


모아나를 정글 같은 야생에 두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씁쓸했지만, 그때는 그게 최선이라 여겼다.


그렇게 우리가 새로운 일상에 조금씩 적응해갈 때쯤, 또 다른 시련이 닥쳤다.




모아나가 자취를 감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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