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만의 재회, 또 다른 시련
한 달만의 재회
고양이가 사라졌다.
남편이 갑자기 서울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서울에 월세집을 구해야 했다.
집 구하는 걸 돕느라 며칠 서울에 다녀왔는데,
며칠 사이 모아나가 사라져 버렸다.
내 차소리가 들리면 어김없이 나타나던 모아나인데.
일부러 자갈길을 더 힘차게 밟으며 차소리를 내보아도 모아나는 나타나지 않았다.
일주일이 지나고, 또 일주일이 지나고,
무려 한 달이 지나도 모아나를 만날 수 없었다.
동네 이웃들은 대부분 모아나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한 달이 넘어가면서 간절함은 체념으로 바뀌었다.
모아나와 영상통화를 하고 싶다는 상상을 하며 나 나름의 방식으로 모아나를 추억했다.
조금씩 단념해 가던 어느 날,
그날은 아침부터 이유 없이 기분이 좋았다.
'오늘은 어쩌면 모아나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몰라.'
막연한 희망이 피어올랐다.
모아나를 만나던 동네를 아주 큰 동선으로 한 바퀴 걸었다.
한 시간 정도를 걸었는데도 모아나를 만나지 못했다.
다시 한번 단념하며 차로 가던 그때,
어린 여자아이가 작은 목소리로 "고양이...."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여자아이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검은색과 흰색의 조화가 군더더기 없이 예쁜 고양이가 앉아있었다.
스치듯 봐도 모아나였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자기 영역도 아닌 식당 앞에 앉아 구걸을 하고 있었다.
원망과 반가움이 섞인 목소리로 모아나를 불렀다.
고양이는 고개를 돌리며 답했다.
모아나는 좀 말랐고 목이 쉬어 있었다.
다행히 차까지 200m 정도 되는 거리를 따라와 주었다.
급한 대로 밥과 물을 챙겨주니 허겁지겁 먹었다.
남편에게도 영상통화로 모아나를 보여주며 기쁜 소식을 알렸다.
모아나는 중성화가 되지 않은 수컷 고양이이다. 발정기가 되면 자기 영역을 벗어나 멀리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고, 고양이를 많이 키우는 친구에게 전해 들었다. 모아나의 중성화는 9개월 내내 고민했지만, 친구와 동네 이웃들과 의논해 보니 이 동네의 모든 고양이를 함께 중성화시키지 않는 이상 오히려 모아나가 위험해질 수도 있다고 했다. 중성화를 하면 야생본능이 더 줄어드는데, 그러면 동네 수컷 대장고양이의 타깃이 될 수도 있다고.
다행히 동네에서 펜션을 운영하시는 이웃분이 모아나가 먹고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셔서 모아나는 그곳에서 지낼 수 있게 되었다.
이웃분의 집에는 모아나와 똑같이 생긴 고양이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길냥이를 입양해서 집안에서 키우셨기에 직접 보진 못했지만 모아나와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똑 닮았다고 했다.
우리는 기적적으로 다시 만났고 함께 하는 시간이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모아나는 더 '누나 껌딱지'가 되었다.
함께 살 때도 그랬지만 아닌 척하면서 은근히 몸의 어느 한 부분이라도 나와 붙어있으려고 했다.
나 역시 모아나 껌딱지였다.
동네 이웃들은 나를 한심하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한창 젊은 사람이 매일 할 일없이 고양이를 만나러 와서 한참을 고양이와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하지만 모아나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단 한순간도 아깝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친구와 보내는 시간이 시간 낭비가 아닌 것처럼.
모아나와 보내는 시간은 어떤 친구와의 만남보다도 나를 깊이 치유해 주었다.
살면서 이렇게 마음을 온전히 나눈 대상이 있었나 싶을 만큼,
모아나와 함께 있을 때면 아무런 생각 없이 자유롭고 평안했다.
우리는 다시 안정을 되찾아가는 듯했지만,
모아나의 시련은 멈추지 않았다.
하루는 모아나가 발에 상처를 입고 나무 아래 힘없이 축 늘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