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여행을 떠난 고양이 모아나

너무 늦어버린 사랑

by 스텔라윤


동백꽃 피는 겨울이 왔다.


2022년 12월 제주.


날이 추워지면서 모아나는 털이 좀(많이) 쪘다.

추운 산간 지역에서 두 번째 겨울을 나는 너, 정말 대단해.


이 동네 고양이 중 내가 제주에 사는 동안 계속 살아남은 고양이는 대장고양이 말고는 모아나가 유일했다.


털 찐 모아나


모아나는 나를 한결 같이 좋아해 줬다.




마침내 제주살이를 정리하고 육지로 돌아가는 날이 오고야 말았지만, 모아나에 대해 걱정하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모아나가 나만큼이나 좋아하고 따르는 사람이 생긴 것.

모아나가 사는 동네에 한 가족이 이사를 왔다.

가족 중에는 내 또래의 젊은 청년이 있었고, 그 청년은 나처럼 낯선 제주 산간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모아나를 만났고, 모아나와 매일 산책하고 밥을 주며 좋은 친구로 지내고 있다고 했다.


그 무렵 모아나는 새로운 청년의 집에서 마당냥이로 지내고 있었다.




하루는 모아나가 보이지 않아서 기다리다가, 함께 산책 중이던 청년과 모아나와 마주쳤다.

모아나는 청년 곁에서 꼬리를 한껏 치켜올리고 신이 난 모습으로 총총 걸어오고 있었다.


"모아나~~"


내가 부르니 쭈뼛거리며 나에게 오긴 왔지만, 안절부절못하며 청년이 집으로 가는 뒷모습을 힐끔힐끔 쳐다봤다.

그리고 이내 나에게 등을 돌리고 엉덩이를 얄밉게 씰룩거리며 청년에게로 가버렸다.


"참나....ㅎ"


모아나는 날이 어두워지도록 나에게 돌아오지 않았다.

섭섭하면서도 안도했다.

모아나를 진심으로 예뻐해 주고 돌봐줄 사람이 있다는 것에.



모아나를 데리고 가고 싶었지만, 우리는 육지에서 살 집을 새로 구해야 했다.

그 집에서 모아나를 키울 수 있는 상황일지도 알 수 없었다.

모든 게 불확실한 상황이었다.


우선 집을 구하고 그때 데리고 올 계획을 세워도 된다고 생각했다.

안일한 생각이었다.


모아나의 새로운 청년 친구에게 부탁해 두었다.

우리 모아나 잘 부탁한다고.

참 착한 고양이라고….

청년은 고양이 덕분에 자기도 행복하다고 했다.

마음이 놓였다.


모아나에게 작별 인사하며 꼭 잘 지내고 있어 달라고 부탁했다.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씩씩하게 살아남아달라고.

매몰차게 뒤돌아왔지만, 뜨거운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모아나와 헤어지던 날


육지로 돌아오고 한 달 후,

모아나의 근황이 궁금해서 동네 이웃분에게 전화했다.


"모아나는 잘 있나요?"


"육지로 데리고 가신 거 아니에요?"


"네? 그게 무슨...."


"이사 가시고 나서 거의 직후부터 고양이가 안 보여서 데리고 가신 줄 알았어요."


"아닌데요, 저희가 안 데리고 왔어요."


"이사 가시고부터 안 보여요. 그 고양이."



또 다른 이웃분에게 전화했는데 똑같은 말을 했다.

우리가 이사 간 무렵부터 고양이가 안보였다고, 우리가 데리고 간 줄 알았다고.


매일 모아나를 만나던 자리


청년네 집 안에서 살고 있는 게 아닐까?

아니면 지난번처럼 영역 이동을 해서 멀리 여행을 간 걸까?

그럼 또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그것도 아니면 모아나가 워낙 살가우니 누군가 본인이 '간택'당한 줄 알고 데려간 게 아닐까?

모아나는 워낙 사랑스러운 고양이니까, 고양이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을 거라고.


그렇게 믿는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매일 만나던 곳


제주 고양이 카페에도 수소문해 보고 입양 사이트도 뒤적거려 보았으나 모아나의 흔적은 없었다.

4월이 되어서야 우리는 새로운 집에 자리를 잡았고, 6월에는 제주에 갈 기회가 있었다.



청년네 집으로 찾아가 보았지만 모아나는 없었다.

안 그래도 모아나가 갑자기 사라져서 청년도 슬퍼했다고, 그의 부모님을 통해 전해 들었다.


혹시, 그래도 혹시 모른다며 제주에 머무르는 내내 모아나를 만나던 장소에 가보았지만 너무 늦은 일이었다.

부르면 어디에선가 튀어나와 총총거리며 달려올 것 같은데.


그 후로 다시는 모아나의 부드러운 털을 쓰다듬을 수도, 모아나의 명랑한 목소리를 들을 수도 없었다.



모아나는 흔적도 없이 증발해 버렸다.



사는 동안 후회하는 일을 만들지 않으려 한다.

혹여나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내 선택에 대해 후회하지 않고 살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절실히 후회했다.

모아나를 두고 온 것을.

이 작고 여린 생명에 대해 안일하게 생각한 것을.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우리는 너무 늦게 사랑을 깨닫곤 한다.


제주 숲과 모아나.(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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