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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텔라윤 Oct 15. 2024

샌들신고 발리 일출 트레킹, 와이낫?

발리 일출/일몰 여행


2024년 9월 발리, 오전 5시.

요란스럽게 닭 우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열흘 간의 짧은 여행이 후루룩 지나가고, 이제 하루가 남았다. 매일 온갖 동물들의 아침을 깨우는 소리에 잠깐씩 뒤척이긴 했지만, 무시하고 폭신한 이불속으로 파고들곤 했다. 여행이 끝나간다고 생각하니 정신이 번쩍 들었는지 본능적으로 몸을 일으켜 문을 열고 테라스로 나갔다.


그리고 마주한 발리의 황홀한 새벽.

(소리 있음 / 소리 들어보세요)

부지런한 할머니 비질 소리, 오토바이 소리, 또롱또롱한 새소리, 괴성을 지르는 닭소리, 그리고 눈을 씻어주는 듯한 아름다운 풍경까지.

(글을 쓰는 지금, 오라오라병이 도지는 듯하다.)



넋 놓고 발리의 새벽 풍경을 바라보며 다짐했다.

"나 다음번에 발리 오면 매일 아침 일출 볼 거야...."

2층 테라스에서 (Ubud, Bali)


Sunrise in Bali


"발리에 뭐 볼 게 있나?"

묻는 이에게 발리의 일출을 소개해주고 싶다.


발리에서 느끼는 자유로움의 8할은 날 것 그대로의 자연에서 온다. 발리도 많이 개발됐지만, 여전히 야생 상태 그대로 보존된 자연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우붓에는 높은 건물이 없기 때문에 2층까지만 올라가도 시야가 탁 트인다. 테라스에서 보는 일출도 좋지만, 조금 더 적극적으로 일출여행을 떠나고 싶다면 일출 트레킹에 도전해 보는 것도 좋다.


우리는 6년 전 신혼여행으로 발리에 왔을 때 바투르 화산 일출 트레킹에 참여했다. 떠오르는 태양을 함께 보며 우리의 새 출발을 기념하는 의미로.


오전 3~4시 무렵, 별이 쏟아지는 어두운 새벽, 삐걱거리는 봉고차에 몸을 실었다. 어딘가에 우르르 내려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산길을 작은 손전등에 의지해서 하염없이 걸었다. 꽤 험한 산길이라 젊은 청년들도 헉헉 거렸다. 바투르 산은 해발 1717m이다. 무념무상 한참을 오르다 보면 어느 순간, 날이 밝아오며 눈앞에 두둥실 떠다니는 구름을 만날 수 있다.


바투르 화산 일출 (2018. Bali)


다소 즉흥적으로 일출 트레킹을 하게 된 우리는 운동화도 없었다. ‘등산쯤이야 뭐.' 쉽게 생각하고 고쟁이 바지에 샌들을 신고 산에 올랐다. 점점 날이 밝아오며 샌들을 신은 채로 흙먼지를 뒤집어쓴 내 발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함께 산에 오른 여행자들이 엉망진창이 된 내 발을 발견하고 한심하고 안쓰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지만, 노 프라블럼~


6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그때의 무모함을 떠올리며 깔깔 웃는다. 쉽게 얻어진 것보다 조금 어렵게 얻은 것이 더 진하게 남는다.




나는 늘 사서고생한다. 덕분에 고단한 날도 많았지만, 내 인생에 '고생' 한 스푼이 더해질 때마다 덤으로 '믿음'도 한 스푼씩 얻었다.


처음 경험하는 일 앞에서는 망설여진다. 하지만 완벽하게 준비하지 않아도 괜찮다. 불확실성은 우리 인생의 기본 옵션이다. 몸으로 부딪혀서 경험하는 것이 가장 확실하다. 물론 고생인 걸 알면서 굳이 몸을 던져 고생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예측하지 못한 고생길과 마주하게 된다면 이렇게 생각해 보자.


’또 얼마나 흥미진진한 추억을 남겨주려고 이래...?'


남들 시선은 신경 쓰지 말자. '내 마음이 어떤지'가 가장 중요하다. 누가 뭐라든 내 마음이 괜찮다고 하면 마음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자. 나를 믿어주자.


함께 등반한 친구들
발리 산지기 같은 나 / 무식하고 용감했던 덕에 글감도 얻었다.
퉁퉁 부은 불쌍한 내 발 / 너가 고생이 많다.


Sunset in Bali


발리는 일출만큼 일몰도 아름답다. 해가 질 무렵, 동네를 잘란잘란* 하다 보면 때때로 핑크빛의 아름다운 일몰을 만날 수 있다.

*잘란잘란 : 산책하다


동네 산책길 일몰

하지만 동네에서 늘 여운 짙은 일몰을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발리의 아름다운 일몰에 푹 빠져들고 싶다면 바다로 가자.


우리는 짱구(Canggu) 해변에서 일몰 보는 걸 좋아한다. 짱구라는 지역은 비치클럽으로 유명한데, 꼭 비치클럽에 입장하지 않아도 일몰은 얼마든지 감상할 수 있다. 비치클럽은 유료지만, 일몰은 모두에게 무료다!


짱구의 바닷가에 도착하면 카트에서 옥수수 굽는 풍경을 볼 수 있다. 기름 쓱쓱 발라 노릇노릇 굽고, 선택에 따라 매운맛과 단 맛을 가미하여 조금 더 굽는다. 옥수수를 하나씩 손에 들고 근처에 식당이 보이면 빈땅 맥주도 한 병씩 산다. 감칠맛 나게 구운 옥수수와 빈땅 맥주 조합....

(오늘따라 오라오라병 증세가 심각하다.)



바다가 한눈에 잘 보이는 곳에 자리 잡고 앉아 일몰을 기다린다. 드넓은 바다, 반짝이는 물결, 힘 있게 밀려오는 파도, 그 위의 서퍼들. 눈앞에 가려지는 것 하나 없이 탁 트인 바다를 바라보고 있자면 또다시 무념무상이다.


바다와 한 몸에 된 듯, 내 몸과 마음도 결림 없이 자유롭다.

Sunset in Canggu(2024)


태양이 시야에서 사라졌다고 일몰이 끝난 게 아니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일몰 세리머니 시작된다. 이쯤에서 자리를 털고 일어나 바다로 가까이 가보자.


태양이 잠시 쉬러 간 사이, 하늘과 바다가 서로에게 물들어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경계 없는 아름다운 세상을 눈에 가득 담고 싶어 자꾸만 눈을 크게 떠본다.


하늘, 바다, 파도, 바람, 모래사장, 나, 또 다른 나들, 모든 게 있는 그대로 완벽하다.

Just be you.

우리가 기억하는 발리는 늘 이런 모습이다.

우리를 있는 그대로 품어주는 존재.

완벽하지 않아도 충분하다고 알려주는 존재.

너로 태어났으니 너로 살라고 자유를 주는 존재.

발리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별이 반짝이는 밤, 이대로 집에 돌아가기 아쉽다면 비치클럽에서 칵테일을 한 잔 마시자.


신나는 음악에 몸을 주체할 수 없다면 몸이 움직이는 대로 흔들어도 보자.

와이 낫?

당신의 넘치는 흥을 존중합니다.


여행은 삶의 본질이 무엇인지, 무엇을 누리며 살아야 하는지 다시 알아차리게 해 준다.


발리에서처럼 요란스럽게 나를 깨우는 동물들은 없지만, 매일 아침 눈 뜨면 새날이 시작되었음을 온몸으로 알아차리며 깨어난다. 남편과 반갑게 토닥이며 아침인사를 하고 서로를 응원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하늘을 올려다보며 계절을 만끽하고, 해질 무렵 변하는 풍경에 감탄하며 살아간다. 남편과 함께 산책하며 오늘 있었던 일, 앞으로 하고 싶은 일, 그리고 지난날의 추억을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하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발리의 환경을 내가 사는 곳으로 옮겨올 순 없지만, 발리에서 느낀 자유와 사랑은 언제 어디에서든 불러올 수 있다. 내가 살아 숨 쉬고 있는 지금 여기에서, 나답게, 자유롭게,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다.

웃고 사랑하며 매 순간을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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