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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글샘 Jun 30. 2024

폭주 기관차도 멈추게 하는 것

부모의 존재감에 대한 고찰



그 아이가 싫은 이유


    교사이기 이전에 사람이기에 만나고 싶지 않은 유형의 사람이 있다. 극내향인인 나는 에너지가 차고 넘치거나, 내 예상치를 벗어나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꺼린다. 오늘의 주인공 '민후(100% 가명이다.)'가 그랬다. 이제 막 발령을 받은 신규 시절의 이야기이다. 출산휴가에 들어가시는 선생님의 자리를 이어 전담 교사로 처음 학교에 출근을 하게 되었다.


    수업하기 어려운 고학년 교실에서도 민후는 단연 눈에 띄는 학생이었다. 민후를 싫어하게 된 계기가 있다.(지금은 아니기에 공개적으로 밝힐 수 있음을 밝힌다. 어느덧 성인이 된 민후는 나와 여전히 연락을 주고받는 소중한 제자 중 하나이다.) 수업 중 어느 애니메이션 영상 자료를 보조 자료로 활용했던 날이다. 애니메이션에는 주인공 인물들과 귀여운 강아지 한 마리가 등장했다. '컹컹!' 하는 귀여운 울음소리와 함께 강아지가 등장하던 순간 모든 아이들이 '귀여워~'를 연발했다. (비록 그림이지만 그 강아지는 객관적으로 보아도 참 귀여웠다.) 그리고 민후의 입에선, '하핫, 저 개나리!' 하는 뜬금없는 욕설이 튀어나왔다.


    너무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기에 민후도, 나도, 아이들도 당황했다. 영상을 멈추고 민후를 바라보니 본인도 적잖이 당황하여 벌게진 얼굴로 '죄송합니다.' 하고 사과를 했다. 아이가 충분히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으므로, 방금의 행동은 수업 상황에 어울리는 행동이 아니었으니 조심하라는 경고를 주고 동영상을 이어서 시청했다.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영상에 다시 강아지가 등장했다. 그때였다. 민후는 또다시 '하, 저 개나리 좀 봐라!' 하고 말하며 크게 웃었다.


화(火), 걷잡을 수 없는 불과 같이


    민후의 두 번째 욕설을 듣고 나는 잠시 고민했다. 민후와 부딪히고 싶지 않은 지극히 인간적인 마음과 교육적 지도가 꼭 필요한 상황이란 교사로서의 판단 사이에서 갈등했다. 또 이런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을지 감이 잘 오지 않았다. 모른 척 넘어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은 교실, 교사로서의 판단이 이겨야만 하는 공간이었다.


  "민후 너, 지금 친구들이랑 선생님 다 들으라고 그런 욕을 한 거야? 지금 여기가 어딘지 몰라?" 다시 영상을 멈추고 애써 엄한 표정을 지었다. 온몸의 피가 얼굴로 쏠리는 듯했다. 당연했다. 나는 내향인이자 생 초짜 교사(!)였고, 주목받는 것과 누군가와 갈등하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민후의 얼굴이 빨개졌다. 민후는 이번에도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욕이 나왔어요." 하고 말했지만, 그다지 반성스럽지 않은 말투였다. 한 번은 실수라 하지만, 두 번은 아니지 않은가. 심지어 불량한 태도도 마치 초보 교사인 나를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졌기에 나는 큰 결심을 했다. 아이들 앞에서 민후를 크게 야단칠 결심이었다.


    "어떻게 하면 욕이 자기도 모르게 나올 수가 있는 거지? 친구들 앞에서, 그리고 선생님 앞에서 부끄럽지도 않은 거니? 왜 공부하러 모인 교실에서 친구들이, 선생님이 그런 심한 욕을 들어야 하는 거야? 첫 번째는 실수라 치지만 어떻게 똑같은 실수를, 그것도 5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반복하니? 수업 시간에 심한 욕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크게 말한 것,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 건데?"


    말을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감정이 올라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큰 목소리와 빠른 말투로 민후에게 '화'를 내게 되었다. 화라는 감정은 참 알 수 없는 모습이 있어서, 내가 의도적으로 불러일으킨 감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마른 장작에 불이 붙듯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갔다. 나도 처음 보는 내 모습이었다. 초짜 교사에게서 전혀 예상치 못한 모습을 본 아이들은 모두 얼어붙었다.


운명의 장난


    민후도 마찬가지였다. 민후는 아까와는 전혀 달라진 태도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는 '정말 죄송합니다. 다시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겠습니다.' 하고 말했다. 이후 수업을 어떻게 진행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언뜻 기억이 나는 건,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던 교실 분위기와 쥐 죽은 듯 조용했던 아이들의 모습, 그리고 교실을 나오며 사시나무처럼 떨리던 몸이다. 이후 민후는 내 수업 시간에는 최대한 조용히 조심하는 모습을 보였고 나는 무탈히 그 해를 마무리했다.


    업무를 새로 분장하고, 다가올 다음 해를 준비하는 시기가 되었다. 학교를 통틀어 경력이 가장 적은 나에게 대단한 선택권은 주어지지 않았다. 아이들이 다소 거칠고, 생활지도가 어렵다고 소문이 나 모두가 기피하는 6학년에 가게 될 것이란 이야기를 듣게 되었을 때도 괜찮았다. 단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민후'가 6학년에 올라간다는 사실이었다. 부디 민후만은 우리 반이 아니길. 얼마나 간절한 마음으로 바랐는지 모른다. 그리고 2월, 학급 추첨을 통해 받아본 명렬표 속에서 나는 민후의 이름을 발견하게 된다. 이 무슨 심술궂은 운명의 장난인지!


다시 시작하자


    3월의 첫날, 설렘과 기대로 가득 차 교실에 들어오는 아이들과 내가 담임 선생님이 되어 좋다고 기쁨을 표현하는 아이들 사이에서 민후는 그저 덤덤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담임이 되어 알게 사실. 민후와 아이들 사이에는 크고 작은 갈등잦았다. 민후는 모둠 활동을 하다가도, 수업 짝과 이야기를 하다가도, 평소 사이가 별로 좋지 않은 친구와도, 때로는 죽고 못 살 같이 친한 친구와도 갈등을 겪었다. 아직 3월이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나는 거의 매일같이 아이들 사이의 갈등을 중재해야 했고 대부분 민후가 함께인 상황이었다.


    학기 초에는 아이들의 원활한 학교 생활을 위해 여러 장의 안내장을 배부하고 수합을 하게 되는데, 그중 하나인 민후의 '학생기초조사서'를 받고 나는 잠시 멈칫했다. 대개 6학년쯤 되면 기초조사서의 필수 항목에만 답변 후 회신하거나, 학생이 직접 적어오기도 하는데 민후의 기초조사서는 달랐다. 민후 어머니가 작성하신 '기초조사서'에는 매우 단정한 글씨체와 세심한 마음이 꾹꾹 눌러 담겨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선생님이 참고하면 좋을 사항'을 알리는 [비고란]을 차지한 편지였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민후 엄마예요. 올해 민후의 담임 선생님이 되어 주셔 감사합니다. 민후가 집에 와서 작년에 ㅇㅇ과목을 가르치셨던 선생님이 담임 선생님이 되었다며 얼마나 좋아했는지 몰라요. 다른 반 친구들이 모두 부러워한다고요. 올 한 해 민후 잘 부탁드립니다. 사실 민후가 ~~(가정 사정)을 이유로, 3학년 때 전학을 하게 되었고 학교 생활을 힘들어했어요. 작년까지도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는데, 아이가 학교생활에 대해 좋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처음이라서요. 올 해는 뭔가 다를 것 같은 마음이 들어 이렇게 글로 먼저 인사를 드립니다. 민후가 말투와 표현은 다소 거칠지만 알고 보면 마음이 여리고 눈물이 많은 아이예요. 잘못한 일이 있으면 꼭 엄하게 지도해 주시고, 언제든 제게도 연락 주세요. 다시 한번 잘 부탁드려요, 선생님.



    기초조사서를 제출한 날도 민후는 어떤 갈등을 겪었다. 나는 민후를 방과 후에 잠시 남도록 했다. 그리고 민후에게 기초조사서를 읽어 보았느냐고 물었다. 한껏 잔소리를 듣고 혼날 것으로 위축되어 있던 민후는 예상치 못한 질문에 당황하여, 기초조사서를 읽어보지는 않았다고 답했다. 이에 나는 기초조사서의 내용을 읽어 보면 좋을 것 같으니, 한 번 보라고 종이를 건넸다. 글을 읽는 민후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나는 어머니가 민후를 생각하시는 마음을 절대 잊어서는 된다고, 작년까지 그리고 어쩌면 오늘까지 민후가 보였던 모습을 다 잊어버릴 테니 내일부터 새롭게 다시 시작하자이야기했다.


부모, 넘을 수 없는 그 존재감


    '개과천선'이란 말은 민후를 위해 만들어진 말이었을까? 민후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학교 생활을 누구보다 제대로 하는 아이가 되었다. 민후는 더 이상 고슴도치처럼 날카롭게 가시를 곤두세우고, 언제든 싸울 준비를 마친 아이가 아니었다. 재치 있는 말과 귀염성 있고 센스 있는 행동으로 점차 인기도 많아졌다. 민후는 그간 이런 모습을 어떻게 숨기고 살았던 걸까?


    학원 가기 싫은 아이들이 하교 후 학교에 남아 재미있게 시간을 보내던 어느 오후, 한 아이가 내게 "선생님, 김민후 진짜 사람 된 거예요. 얘 3학년 때 전학 왔을 때 진짜 장난 아니었어요!" 하며 갑자기 말을 꺼냈다. 민후는 빨갛게 달아 오른 얼굴로 말했다. "야, 인간적으로 옛날 얘기는 하지 말자~". 그에 나도 "그래, 얘들아. 옛날 얘기는 하지 말자, 우리. 지금이 중요한 거야, 그렇지?"하고 민후를 바라봤다. 어느새 귀까지 빨개진 민후가 부끄러운 듯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고개를 끄덕였다.


    민후를 변화시킨 것이 내가 아니라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안다. 민후 어머니가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적어 보냈던 기초조사서가 그 증거이다. 한 아이를 기르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지만, 한 아이의 탄생은 오롯이 한 가정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렇기에 아이를 진정으로 위하고, 진정으로 잘 키우고 싶어 하는 학부모를 마주할 때면 절로 고개를 숙이게 된다. 이제는 어엿한 성인이 되어 사회인으로서 본인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민후에게 진한 사랑과 응원의 메시지를 전한다. 고작 6학년, 어린 나이에 이미 환골탈태의 저력을 보여준 바 있기에 민후는 언제, 어디서, 무엇이든 다 잘 해낼 것이다. 모든 게 서툰 신규 교사였던 내게 부모의 존재감을 새삼 일깨워준 민후 어머니에게도 진심 어린 감사의 인사를 함께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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