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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글샘 Jun 18. 2024

상처를 거부할 용기

그래, 나 수학 못 한다! 근데 뭐?



학습 부진의 늪


    초등학교에서의 '학습'에 대해 흔히 하는 대표적인 오해가 있다. 바로 초등에서의 공부는 쉬울 것이라는 생각이다. 중, 고등학교에서야 비로소 심각한 문제가 되는 '학습 부진'의 원초는 대개 초등학교에서부터 시작한다. 초등학교에서도 특히 5, 6학년을 맡아 지도하면 알게 된다. (물론 학급, 학교 수준 등에 따른 편차는 있겠지만) 대다수 교실에서 이미 학습 부진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거나, 학습 부진 학생이 되기 직전의 아이들을 쉬이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을. 학습 부진에 대해서도 이야기는 많지만, 한 편의 글로 다룰 수 있는 주제는 아니기에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한다.


    경력이 얼마 되지 않은 초임 무렵의 이야기이다. 6학년 교실 속, '영은이'는(역시 가명이다.) 밝고 활기찬 모습이 인상적인 아이였다. 삼 남매 중 막내라는 영은이. 두 살 위의 오빠 덕분에 태권도를 함께 배우며 발차기를 잘하게 되었다는 영은이. 하지만 키가 작아 태권도에서 늘 동생들과 연습을 한다는 영은이. 영은이는 3, 4학년 여학생의 평균에도 훨씬 못 미치는 작은 키를 늘 콤플렉스로 생각하여, 키 크는 데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열심이었다. 그 결과 달리기도 잘하고, 줄넘기도 잘하고, 싸움도 잘하게 되었다는 영은이(당연하다. 영은이의 싸움 상대는 대개 친오빠이다.). 까맣게 그을린 얼굴과 작은 키 때문에 왠지 '검은콩'을 연상케 하던 영은이는 통통 튀는 탱탱볼 같이 활기찼다. '수학 시간'만 빼고.


수학 시간이 왜 이렇게 많아요?


    영은이는 '수학 부진' 학생이었다. 처음에 나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새 학년의 첫날부터 내게 다가와 스스럼없이 굴었던 학생이니까. 언어 표현력이 어찌나 좋은지, 모든 말을 재미있게 하는 재주가 있었으니까. 그리고 대개, 말을 잘하는 아이들은 학업 성취도도 나쁘지 않으니까. 영은이가 내게 "선생님, 6학년은 주간학습안내에 수학 시간이 왜 이렇게 많아요?"하고 물었을 때에도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모든 아이들에게 교과에 대한 선호가 있듯, 수학을 싫어하는가 보다 짐작했다. 3월 두 번째 주 즈음이었던 것 같다. 정신없이 '진단 평가 주간'을 맞이하고, 아이들이 없는 교실에서 홀로 영은이의 수학 시험지를 채점하다 나는 까무러칠 듯 놀랐다. 영은이의 실력이 대략 초등학교 3학년 수준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 날 쉬는 시간에 영은이를 따로 불러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영은이는 비밀을 들킨 사람 같은 얼굴로 울먹이며, 3학년에 들어서면서부터 수학이 갑자기 어려워져서 싫었다고 했다. 한 번 이해를 못 하기 시작하니까 점점 더 못 하게 되어 이제는 수학이 정말 싫다고 했다. 당연히 그랬을 것이다. 나선형으로 구성된 교육과정 속에서 특히 '수학'은 해당 학년에서 꼭 이해하고 넘어가야만 다음 단계를 이해할 수 있는, 위계를 가진 교과이기 때문이다. 나는 영은이의 말에 공감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학 공부를 바로 시작해야 하는 이유를 말했다. 수학 공부는 마치 계단을 오르는 것과 비슷해서, 가장 높은 계단까지 오르려면 어쩔 수 없이 가장 낮은 계단에서부터 차근차근 오르는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렇기에 앞으로 수학 시간에는 친구들과 같이 교과서를 풀지 말고, 영은이 수준에 맞는 공부를 하며 차근차근 수준을 높여보자고.


    수학 공부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아이를 설득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영은이가 걱정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수학 실력이 아닌 '친구들의 시선'. 6학년 여학생이라, 늘 솔직하고 당찬 영은이여도 친구들의 시선은 쉬이 무시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이에 나는 고민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잠깐 지나가는 친구들의 시선보다 영은이의 수학 실력을 키우는 게 백 배는 더 중요한 일이라는 설명을 더했다. '너 자신을 알라.'는 명제는 무언가에 대해 알지 못하는 상태를 직면할 용기를 강조하기에, 오래도록 이어져 온 거라 말했던 것도 같다. 혹시라도 쉬운 수학 문제를 푼다는 이유로 놀리는 친구가 있다면, 모르는 것을 알기 위해 공부하는 것은 전혀 놀림거리가 될 수 없단 말로 맞서라고 했다.


곱셈구구 연습하는 6학년


    그렇게 영은이와 나의 수학 수업 중 보충 수업이 시작되었다. 2학년 교육과정에 나오는 '곱셈구구'도 가끔은 헷갈린다는 영은이에게 곱셈구구 단순 연습 학습지를 계속해서 풀게 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이제 '곱셈구구'는 눈 감고도 외울 수 있다고 좋아하는 영은이에게 3학년 수학 문제집을 선물했다. 영은이는 영특한 아이였다. 이해력이 나쁘지 않아 수학 원리를 설명하면 곧잘 이해하고 문제를 풀어냈다. 모르는 문제를 해결해 내려 노력하는 끈기도 있었다.


    수업 상황을 살펴 눈치껏 질문하고, 주어진 문제를 열심히 풀어내는 영은이 덕분에 나는 수학 수업과 보충 수업을 수월하게 병행할 수 있었다. 나는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진도에 맞는 수학 개념을 설명하고, 문제를 스스로 풀게 한 후 정답을 풀이하는 방식으로 수학 수업을 진행했는데, 수업 진행 속도와 영은이의 문제풀이 속도는 잘 맞아떨어졌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다른 아이들은 자신의 수학 문제를 해결하느라 영은이가 3학년 문제집을 푼다는 사실을 알아챌 틈이 없었던 것이다.


    영은이의 수학 실력이 일취월장하던 어느 날이었다. 아마도 영은이가 (두 자리 수)와 (한 자리 수)의 곱셈 중, 받아 올림이 두 번 있는 문제를 풀던 즈음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받아 올림 개념은 이해했지만, 한 문제 안에 두 번의 받아 올림이 나오자 영은이의 문제 풀이 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 수업 진행 속도와 영은이의 문제 풀이 속도가 엇갈리기 시작한 것이다. 문제를 푸는 시간이 지나고, 풀이가 시작되었음에도 계속해서 문제를 푸는 영은이를 이상하게 여긴 한 아이가 말했다.

  "선생님, 김영은 설명 안 듣고 딴짓해요!"

  모든 아이들의 시선이 영은이에게로 꽂혔다. 영은이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딴짓한 거 아니야


    당황한 것은 영은이 뿐이 아니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영은이의 마음이 다치치 않을까? 아니 그것보다, 모든 아이들 앞에서 영은이가 3학년 문제집을 푸는 이유를 말해도 되는 걸까? 내 머릿속에도 오만가지 생각이 스쳤다. 나보다 먼저 용기를 낸 것은 영은이었다.

  "나 딴짓한 거 아니야. 내 수준에 맞는 수학 문제 푼 거야."

  영은이는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작지도, 주눅 들지도 않은 평소와 똑같은 목소리였다. 영은이의 말에 아이들 머리 위로 물음표가 떴다.

  "그게 무슨 소리야? 수준에 맞는 수학 문제는 문제집이 아니라, 교과서지!"

  한 아이가 영은이의 말에 반론을 제기했다. 여기저기서 '맞아!', '쟤 혹시 밀린 학원 숙제 한 거 아니야?'와 같은 말들이 이어졌다.


  "나는 아직 6학년 수학 못 풀어. 그래서 수학 시간마다 내 수준에 맞는 문제집 풀면서 진도 따라가려고 노력하는 중이야."

  영은이는 어느샌가 특유의 당당한 태도를 되찾고는 크게 말했다. 한 손으로는 보란 듯이 3학년 수학 문제집도 들어 보였다. 영은이의 말에 당황한 것은 오히려 아이들이었다.

  "야, 아무리 그래도 무슨 6학년이 3학년 문제집을 푸냐?"

  한 아이가 던지듯 말했다. 별생각 없이 한 말이었겠지만, 이쯤 되면 교사의 지도가 필요하다는 판단으로 내가 막 개입하려던 참이었다.


  "그게 뭐? 내가 수학을 못 해서 할 수 있는 부분부터 차근차근 풀어나가면서 실력을 키우겠다는데? 못 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야.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 게 더 부끄러운 거야. 선생님이 모르면서 노력 안 하는 게 훨씬 나쁜 거랬어. 3학년 문제집 푸는 거, 나는 하나도 안 부끄러우니까 그렇게 말해도 상관없어."



어떤 명제


    3학년 문제집을 보고 별생각 없이 말을 던졌던 아이는, 영은이의 대답에 더 이상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다. 대신,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아이들은 영은이에게 박수를 쳐 주기 시작했다. 나의 백 마디 말보다 영은이의 용기 있는 행동 한 번이 아이들에게 훨씬 인상적이었던 것이다.


    어떤 명제는 특정 상황을 만나 더욱 반짝이기도 한다. 한창 사춘기인 6학년 아이들은 대개 모르는 것이 있어도 질문을 하지 않는다. 친구를 포함한 타인의 시선, 혹은 순간의 부끄러움을 감내할 용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을 알기에 그간 '모르는 것을 묻는 것'은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고, 용기 있는 행동이란 사실을 나는 얼마나 강조했던가. 그날 영은이는 담임교사인 나도 하지 못했던 일을 해냈다. '모르는 것이 생겼을 때는 자신의 무지를 솔직히 인정하고, 알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올바른 행동'이라는 잔소리는, 영은이 덕분에 우리 반에서 비로소 살아 숨 쉬는 명제가 되었다.


    그날 이후 아이들은 스스럼없이 질문을 던졌다. 나의 문제풀이가 이해되지 않을 때, 자신이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언제까지고 내게 설명을 요청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얼마나 대단하고 소중한 변화인지. 영은이는 6학년 1학기에 3학년 1, 2학기 수학을, 6학년 여름방학에 4학년 1, 2학기 수학을 따라잡고, 6학년 2학기 말에는 6학년 기본 수학 문제를 대략 풀어내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졸업식 날, 영은이가 눈을 반짝거리며 했던 말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선생님 덕분에 이제 더는 수학 시간이 무섭지 않단 말. 중학교에 가서도 절대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겠단 말. 지난한 과정을 통해 '노력이 가진 힘' 직접 느꼈기, 영은이가 내게 한 약속을 꼭 지킬 거란 걸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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