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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rden Dec 08. 2024

엄마의 엄마, 딸의 딸 2

내가 세상을 감각하는 방식

열 개를 다 잘했던 딸이었어도, 아쉬웠던 점 단 하나가 사무친다는 엄마. 엄마는 돌아가시기 얼마  우리집에 계시던 때의 할머니에 대서 가끔 말씀하시는데, 그 말씀을 하실 때면 여지없이 울먹거리신다. 더 모시다 내려보내 드릴걸, 더 살가운 딸이 될걸, 할머니가 붙박여 계시던 거실 한 켠이 아려오는 엄마는 후회되는 것 투성이다. 처음 엄마가 그 얘길 꺼낸 즈음에는 할머니를 계속해서 보고싶어하는 엄마가 유난스럽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할머니는 오래 사시다가 아주 할머니, 그러니까 더이상 아쉽거나 아깝다고 느끼지 않아도 될 연세에, 특별히 고통받지 않으시고 그저 노쇠하셔서, 호호할머니로 돌아가셨다. 엄마도 이제 손자가 있는 할머니고, 그정도로 할머니를 그리워 했으면 이젠 됐을 법도 한데 계속 할머니를 잊지 못하는 엄마를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그건 내가 멍청해서였다. 나에게는 일년에 두어번 보는 할머니였지만 엄마에게는 엄마였다. 나에게 끊임없이 사랑을 부어주는 엄마의 그 사랑이 시작된 원류, 내게 심어준 엄마의 뿌리깊은 나무가 시작된 태초의 곳, 그게 할머니였다.  엄마에게 돌아가셔서 아쉽지않고 안타깝지않을 나이란건 없다. 우리엄마가 나를 떠나는 날이 오면 나는 그날부터 깊은 슬픔에 빠질 것이다. 내가 눈감는날까지 자주 울 것이고 그보다 자주 엄마를 그리워할 것임에 틀림없다. 엄마에게라고 다를 것이 없다.



할머니는 어느순간 흑백으로 변해 내 기억속에서는 흐릿했고, 돌아가신 후로 나는 할머니를 쉽게도 잊었다. 아니 깊게 각인된 것이 없으니 더이상 떠오르지 않았다는 쪽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나이들어갈수록 할머니는 내 머리속에 비비드한 컬러로 번져가며 또렷해다. 그 분은 내가 하루일과에 치일때, 일상과 육아에 허덕일 때, 앞만 보고 달리느라 놓치는 것들에 대해서 놓치는 줄도 모르고 뛰는 데에 몰두할 때에는 좀체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셨다. 그렇게 정신없이 살다가 비로소 쉼이 필요해질 때, 큰 결정을 내려야할 때, 용기가 필요할 때, 나를 지켜야할 때, 할머니는 바람이 일어나고 풀이 눕는 곳에서 나에게 손짓하셨다. 밤하늘의 별이 내 가슴으로 쏟아져내리는 곳, 반딧불이가 방향을 인도하는 곳에서 나를 기다리셨다. 그곳에는 청개구리가 앉아있는 우물가와 모기향이 느리고 노곤하게 타들어가는 여름이 있다. 불지핀 아랫목과 키작은 시금치가 새파란 생명력을 증명해내는 눈쌓인 겨울밭이 다. 할머니는 내 마음의 심연에서, 내 정서의 밑바닥에서 내가 힘들고 지쳤을 때나를 불러주셨다. 내가 찾아간 것이 아니라 할머니가 부르셨다. 할머니와 나 사이에는 그렇게 느닷없이 떠올릴만큼 충분한 시간이 없고, 완성된 서사가 없다. 그런데도 할머니가 뜬금없이 나를 부르면 나는 당황스럽고 죄송한 마음이 다. 그건 내가 할머니를 그리워하는 모양이기도 했지만, 할머니가 내 가슴에 존재하는 방식, 그자체였다. 나에게 그런 정서와 마음이 있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란다. 지금 알고 있는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할머니를 그렇게 외롭게 하진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내리사랑이 있지만 가끔은 치사랑이라는 것도 있다는 걸 증명할 수도 있었을거란 부질없는 마음이 인다.




남편과 나는 둘다 도시에서 나고 자랐다. 남편에게는 어떤 시골에 관한 기억이나 정서가 전혀 없다. 그는 유년시절을 전부 도시의 아이로 자랐다. 그걸 결여나 결핍이라 부를 수는 없을테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시골에 관한 정서를 풍요와 충만이라고 부를 수는 있을 것이다. 나이들어가며 내가 여행을 떠올릴 때 그건 호화롭고 화려한 곳에서 특별한 사람이 되어 대접받고 누리는 것이 아니다. 소담스럽고도 투박한 시골집의 담벼락과 거기에 온전히 스며들어 그대로 풍경의 일부가 되는 며칠, 나는 그런 여행을 꾼꾼다. 그럼 거기에는 어김없이 할머니가 계신다. 자각하지도 못했지만 나는 계절의 순환과 시간의 흐름, 세월의 변화를 자연에서 읽는 사람이었다. 매일은 공기나 물과도 같아서 잊고 지내기 일쑤지만 문득 시간이 가고 있다는 걸, 계절은 순환하고 그렇게 세월이 흐른다는 걸 몸으로 느낄 때가 있다. 어디선가 타들어가는 불냄새가 날 때, 그건 서울에서라면 필시 법망을 피해 밤에 저지르는 불법소각이겠지만 나는 시골에서 모기를 쫓으려 피우는 여름의 불향 떠오르며 어둠이 내렸고 하루가 저물었음을 느낀다. 서울 근교의 들녘에서 황금빛 논에 반한 사람들이 삼삼오오 사진을 찍으려 몰려갈 때 나는 고개숙인 황금벼보다 다랗고 실한 메뚜기떼의 창궐이 떠올라 절로 미간이 푸려진다. 그게 내가  어가는 가을을 하는 방식이다. 도시 아이인 나에게 시골이란 일년에 고작 두세번 내려가서 일주일여를 머물다 오는 유배지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는 도시인인 남편이 상상하지 않는 선상에서 온몸으로 계절과 시간, 공간을 느끼고 음미한다. 참 신기한 일이다. 마도 그런 감각과 정서는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에 외갓집에서 만들어져 보관된 내 유년시절의 조각일 것이다.



할머니와 나 사이에는 엄마라는 접점밖에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아주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할머니와 엄마, 그리고 엄마와 나. 우리는 아주 작은 점들이 모여서 만든 선, 그 선들이 계속해서 쌓여 생겨난 면, 그 면들을 쌓아올려 만든 입체도형같은 것이었다. 우리 사이에는 끊어질 수 없이 단단히 이어진 연결고리가 있는거였다. 그걸 우리엄마가 첫째를 바라보는 눈빛과 첫째가 할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을 보며 이제서야 중간이 된 입장에서 깨닫는다. 첫째는 엄마가 많이 키워주셨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산이나 들로 강과 숲으로 많이도 다녔고, 동네 할머니들 틈바구니에서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들으며 자라났다. 할머니들이나 드실법한 간식을 먹고, 할머니들이나 좋아할 법한 나물을 캐면서, 요즘 아이들답지않게 그렇게 컸다. 나와 우리할머니 사이의 거리보다 우리엄마와 첫째는 가까이 살았고,  마음의 거리는 그래서 그보다 훨씬 더 가까울 것이다.




얼마전 친정엄마와 아이들과 제주로 떠났던 여행에서 첫째가 나에게 이런 얘기를 해왔다.


"엄마, 나는 이제 자연보러 다니고 엄마나 할머니랑 놀러다니는 게 재미가 없어."


정말 어쩔 도리가 없어서 그렇다는 첫째의 표정을 보고 나는 이 아이의 엄마로서 내가 또다른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음을 직감했지만 그볻다 앞서 생각했다. 이제 세상으로 몇걸음 내디디기 시작한 너는 세상이 못내 궁금하고 신기한 것 투성이이겠지. 그렇게 세상을 향해 막 헤엄쳐가기 시작한 네가 어린 시절 할머니와 만들었던 마음과 생각들은 네 가슴속 깊은 곳에 너도 느낄 수 없이 조용히 자리하고 있다가 네가 위태로워지거나 곤경에 처할 때, 어렵고 슬퍼질 때, 아니면 쉬고 싶다고 느낄 때 할머니는 가 어릴 때 느꼈던 할머니의 모습 스대로 불현듯 너를 찾아가 한참을 네 옆에 있어줄 것이다. 그리고 를 쓰다듬어줄 것이다. 그렇게 있다가 너는 더 큰 바다로 헤엄쳐나갈 힘과 용기가 채워졌다는 걸 느끼고는 털고 일어날 것이다. 마침내는 헤엄칠 것이다. 그리 생각하자 마음에 편안함이 밀려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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