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격, 근엄, 진지. 이만큼 우리아빠의 인격과 인생을 잘 드러내는 말이 없다. 처음 인터넷에서 이 용어를 들었을 때, 단번에 아빠를 떠올린 나는 최초로 이 말을 만들고 사용한 사람을 안아주고 싶기까지 했다.
"거기 가든이네 집인가요?"
"아니다. 여기는 가든이 아빠, 엄마 집인데, 가든이가 있긴 있다."
휴대폰이 없었고, 전국민의 대부분이 집전화를 사용하던 나의 학창시절, 그때는 보통 친구들과 통화를 하려면 집으로 전화를 걸고 부모님이라는 관문을 거쳐야 했다. 내 친구들이 우리집에 전화를 걸어왔을 때, 아빠가 전화를 받게 되면 아빠는 이 집의 소유권이 당신에게 있음을 확실하게 못박았다. 이를 두고 친구들은 아빠의 위트와 재치를 칭찬했지만 중요한 건, 아빠가 위트나 재치로 그런 얘길 던진건 결단코 아니었고 그건 어디까지나 아빠의 진심이었다는 거다.
아빠는 정치외교학을 전공한 고등학교 사회, 그중에서도 정치선생님이었다. 그래서였을지 엄마에게 정치는 생활이었지만 아빠에게 정치는 학문이었다. 정치라는 말을 엄마가 입에 올렸을 때 그건 주로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욕하고 그들이 얼마나 민생에 무지하며 국민에게 무관심한가에 사용되었지만, 아빠가 말하는 정치란 민주주의의 태동과 원리, 의원내각제와 대통령제와 같은 학술적인 부분에 더 가까웠다. 그게 그리고 아빠가 삶을 인식하는 태도였다. 도덕적 개인, 사회의 정의로운 일원, 성실한 직업인. 그러니까 한마디로 우리아빠는 법없이도 살 사람이었다.
그러나 올바른것과 좋은 것은 언제나 일치하는가, 바른 사람은 착한 사람인가, 도덕적 개인은 선한 사람인가, 라고 물었을 때 멈칫하며 선뜻 답하기를 망설이게 되는, 그런 인물이 우리아빠였던 것 같다. 그걸 굳이 가리고 따져물을 필요가 있는가, 하면 그건 우리 가족의 평화와 안녕에 맞닿아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질문이었다.
아빠는 흠잡을 데 없는 개인이고 성실한 직장인이자 옳은 어른이었지만 그게 우리에게 좋은 아빠를 의미하는 건 아니었던 것 같다, 고 짐작하지만 좋은 아빠이고자 했던 것은 맞다. 아빠는 나도 아빠와 같은 어른으로 자랐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었으므로 나에게 넓은 세상과 그보다 깊은 학문의 세계를 보여주고자 애쓰셨다. 그러려면 나는 사회문제나 선두에 선 사회인에 대한 이해가 빨라야 했고, 그래서 국민학교 고학년 이후에는 그런 문제들에 대해 본격적으로 아빠에게 듣고 배우기 시작했다. 국민학교 5학년때쯤, 아빠는 나에게 신문 칼럼과 사설을 읽게 하셨고, 그에 대한 내 생각과 의견을 물어왔다. 금융실명제를 실시하는 것은 옳은가에서 시작해서 옳다면 왜 옳다고 생각하는가, 그 생각을 뒷받침할 근거는 무엇인가, 그 근거에 허점은 없는가, 반대의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뭐라고 주장하겠는가, 거기엔 어떻게 반박할 것인가, 에 이르기까지 집요하게 이어지는 질문에 나는 진저리가 날 지경이었지만 어쨌든 그때의 내가 있어서 나는 내 의견과 주장을 제대로 가지고 드러내는 법을 조금씩 배웠다. 그 땐 배웠다는 것도 몰랐지만 후에 내가 고등학생들에게 입시논술을 잠깐 가르치며 자기 생각과 의견이 아예 없는 무채색의 아이들을 숱하게 보았고 그 때, 아빠의 영향으로 나는 내 생각만큼은 굳건하게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이 내가 불리한 피지컬을 가진 최약체의 인간으로 살면서도 목소리의 크기나 논리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않고 어떤 무리의 틈바구니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뿌리를 내리는 밑거름이 되었다. 엄마가 나의 정서적 기반을 지지해주어 내가 태평하고 안일한 듯 누울 자리를 살필 수 있었다면 아빠는 팩트와 논리로 쐐기를 박으며 두 다리를 뻗을 수 있는 토양이 되어 주었달까.
그러나 아빠가 나에게 배움을 주는 아빠이고자 노력한 사실을 확신하는 것보다 내가 더 확신하는 건, 아빠가 추구하는 좋은 사람이 엄마에게 좋은 남편으로 가 닿았는가, 하면 전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아빠는 매사에 진지했고, 당신이 옳았으며, 상대에게 엄격했다. 엄마가 잘못을 저질러서 엄격했다기보다 그저 화가 난 감정이 다 소진되어야, 옆에 진화를 거들어주는 이가 있어야 자신의 화를 소화시키는 성격이었단 얘기다. 그러기 위해서 동굴로 들어가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했고 그 후에는 옆구리를 찔러서 억지로라도 웃게 해주는 가족들의 도움이 있어야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는 게 아빠의 감정회로였다. 아마도 아빠 역시 누군가의 조언이 필요하고 갈피를 잡아줄 커다란 존재가 필요했을 터였다. 어떤 때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하기도 했을 것이고, 또 때로는 남편과 아빠로서 방향을 잃고 표류하기도 했을 것이었다. 어른이라고 다 아는 건 아니니까, 가장이라고 다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그 당시 우리 가족에게 아빠는 하늘이자 지붕이었던 걸 감안하면 아빠의 실제 감정과는 상관없이 아빠가 동굴로 들어가는 시간은 우리 남매에게도 짙은 그늘을 드리우는 시간이었는데, 배우자인 엄마에게라면 말해 무엇할까. 그래서 내가 엄마 이야기에 '아빠가 무위로써 당신의 품위를 지키는 사이 엄마는 작위로써 우리의 안위를 지켜주었단' 는 내용이 들어가게 된 것이다.
우리 아빠에게 농담이나 장난같은 것들이 한 스푼만 들어 있었으면 어땠을까. 가족에게, 특히 부부사이에 옳고 그름을 가리고 시시비비를 따져묻는 것 만큼이나 어리석은 일도 없다. 감정이 상했더라도 그저 상대를 위해 배시시 웃어주면, 어깨만 한 번 토닥여주면 서로 개운해지는 게 가족사이의 일이고, 관계다. 특히 아빠처럼 법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이라든가 엄마같이 한 푼이 두 푼 되고 두 푼이 기어이 지폐도 된다는 걸 증명해보이는 사람처럼 가정에 충실한 사람들 사이에서라면 말해 무엇하랴. 그들 사이에 가려야 할 것은 옳고 그름이 아니라 격려아 인정, 위로와 타협 정도밖에는 없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그릇이 단단하지만 작은 원칙주의자인 아빠와 스케일은 컸지만 마음은 여린 엄마는 균형점을 잡으며 서로의 곁을 내어주는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었다고 확신한다.그러나 아빠의 경직된 어깨와 굳은 미간에는 그런 게 없었다. 혼자 짊어지고자 했고, 그렇게 혼자 강직하고자 했다.
나는 내 아빠가 우리 가정을 위해 한 헌신과 배려, 당신만의 희생을 다는 아니겠지만 잘 알고 있다. 아무런 망설임없이 가족들을 위해 선뜻 내어준 것들의 고귀함과 가치도. 아빠가 평생 엄마만을 사랑했다고 지금 내 앞에서 얘기한다면 나는 그 말이 진심이라는 걸 믿는다. 분명, 아빠만의 방식이 있었다. 그렇지만 아빠에게 빠져있던 유머나 유희, 낙관과 낭만같은 것들로 말미암아 아빠는 실재하는 양보다 삶을 더 팍팍하게 느꼈고, 주어진 걸 누리지 못했다. 그게 엄마와의 관계에도 독이 되었으며 나와 남동생에게도 의무만을 다한 아빠, 정도의 이미지로 남겨진 게 아닐까 생각한다. 책에 쓰여있질 않아서, 그런 건 학문이 아니라서, 마음에 대한 일을 몰랐던 아빠는 그래서 많이 외로웠을거고, 그런 아빠곁에 있는 엄마는 그걸 모르는 아빠를 보며 외로웠을 것 같다.
아무리 어른이라도, 많이 배웠어도, 훌륭한 업적을 이뤘어도, 누구나 마음속 깊은 곳에는 들키고 싶지 않은 웅크리고 앉은 아이가 하나씩은 숨어있다는 걸, 40대가 된 지금의 나는 안다. 그래서 지금의 나라면 먼저 아빠에게 다가가 그건 아무것도 아니야, 아빠. 다 괜찮아. 라고 말하며 아빠의 손을 꼭 잡아줄 수 있을 것 같다. 그치만 그걸 모르던 그 시절에 아빠는 나에게 날씨같았고, 아빠의 기분, 아빠의 말, 아빠의 존재가 Everything 이었던 내게 그런 말을 할 꺔냥이 있었을 리 없다. 또한 40대가 된 지금, 때론 피식 웃게되는 싱거운 유머나, 쓸모없고 무용한 농담 한마디가 고된 인생을 살아볼 만한 것으로 만들기도 한다는 사실을 안다. 마치 영화 <김씨표류기> 에서 똥이 마려워서 자살에 실패하고 샐비어 꿀물이 너무 달아서 마침내 살아야겠다고 결심한 주인공처럼, 쓸데없는 낙관이 인생을 살아갈 최소한의 희망을 주기도 한다는 걸 이제는 알게 되었다. 물론 극단적인 얘기다. 우리 아빠의 인생과 삶에 패배, 좌절, 실망이란 어울리지 않으니. 다만, 아빠의 인생에 그런 작고 달콤한 것들이 함께 했다면 아빠만의 방식으로 좋은 아빠와 남편이고자 했던 당신은 우리에게도 그걸 망설임없이 나눠줄 여유가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은 어쩔 수가 없다. 그걸 내가 이제 알고 있는 한, 아빠와 함께 나이들어가는 어른이 된 나는, 알았으니 이제라도 아빠안의 그 작고 어린 아이에게 다가가 다정하고도 따뜻하게 이야기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