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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rden Feb 14. 2023

손절

시절인연과의 호우시절

손절(損切) ;

앞으로 주가(株價)가 더욱 하락할 것으로 예상하여, 가지고 있는 주식을 매입 가격 이하로 손해를 감수하고 파는  일. 이라는 뜻을 가진 주식용어인데,

돈 앞에서 인정도 사정도 없이 뒤돌아보지않고 단번에 한랭건조하게 뒤돌아서는 그런 단어다.

그 종목을 매수한 과거의 나를 매우 치는 심정으로

 다시는 마주치지말자며 미련없이 털고 돌아서버리는 그런.


백수린 소설 <시간의 궤적>에 보면 관계의 생로병사에 관한 얘기가 나온다.

관계의 파탄이나 단절의 순간이 아니라 어떠한 관계가 꽃처럼 피었다가 결국에는 져버리는 과정말이다.

어쩌다보니 무람없이 가까워졌다가 이내 멀어지고 결국 사그라들고 마는 과정을 어쩔 도리가 없이 지켜보고만 있는 우리에 관한.


우리가 이제와서 인연을 끊은 그들에게 ‘손절’ 이라는 말을 써서는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요즘 여기저기서 일방적을 참아야하는 관계,

나와 결이 달라진 이들과의 사이, 다투게 된 이들과의 인연을 마감(?) 하는 일에 ‘손절’ 이라는 말들을 쓰는 것을 많이 본다.

손절을 부추기는 이들의 댓글에 빠지지 않는 조언이 있다. 그게 바로 “님은 소중한 사람이에요, 당장에 손절하세요.” 라는 말.

소중한 나를 지키기위해 매몰차게 그이를 끊어내라는 충고다.

허나 언제나 처음은 있다. 그들과 내가 관계를 맺게된 데에는 필연적으로

가까워진 그 어떤 과정이나 사건, 계기가 분명히 있었을 것이고 그 안에서 나는 설레고 들뜨고 행복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거기에 손절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은 과거의 나를 부정하는 일이다. 그 인연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보낸 시간은 어떤식으로든 지금의 나에게 영향을 미쳤을, 내 조각이다.

그가 정말 소중한 나와 내 인생에 해악을 끼쳐서라기보다, 그냥 인연에는 때가 있어서 그렇다.

10년전이었다면 아무렇지 않았을 일이 지금에는 목에 걸린 생선 가시처럼 거슬릴 수 있고 그때 매몰차게 처낸 친구와의 일화를 지금에 떠올려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일 수 있다. 경제적으로 궁핍해진 내가 자존심을 지키고자 친구들을 밀쳐냈을 수 있고 나의 사회적 성공이 자연스레 지인들을 떨어져나가게 했을 수 있다. 그 모든게 시절인연이다.

그들과 언젠가 보냈을 호우시절, 그 시간들을 무자르듯 '손절'하는 것보다 내가 당사자가 아닌 타자가 되어 자연스레 흘려보내는 것 또한 소중한 내조각중 하나를 건져올리는 일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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