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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rden Jul 20. 2023

잡담

관계의 씨앗

나는 프로잡담러다.

그때, 거기서, 그 말을 왜 했을까. 언제고 후회만 남기는 말들.

쓸 데 없는 에너지를 낭비하고

해도그만, 안해도 그만인  괜한 말들.

종내는 하지않았어야할 말까지 뱉게하고야마는

단초가 되는  쓰잘데기 없는 말들.

잡담에 대한 내 기억은 대부분 그렇다.

내가 프로잡담러인 것이 몸서리치게 싫은 이유도 그래서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보자.

학창시절 '내 심장의 반쪽을 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바로 너' 라는 내 최초의 다짐은

짝꿍이 된 그녀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가장 감명깊은 소설로 꼽았다는 사실을 알고부터였다.

당시 선생님들은 그 소설을 청소년이 읽으면 안될 불온하고 저급한 것으로 치부했었는데 하지말라는 짓을 기어이 하고야마는 우리 둘만의 공모,

선생님의 눈을 피해 규칙을 어겼다는 짜릿한 희열, 동급생들과는 다른 고차원 적인 것을 향유한다는  연결고리와 그 안에서 점차로 커지던 우리의 세계.

그렇게 나는 수다로 시작해 잡담으로 이어지던 쓸데없는 이야기끝에 소울메이트를 얻었다.


남편과 나는 매일밤 침대에서, 소파에서 하나마나한 시덥잖은 이야기들을 한다.

회의중에 똥이 마려워서 얼마나 당황스러웠는지, 어제 친구와 먹은 코다리조림을 상사가  또 먹자고 해서 맛있는 척을 하느라 얼마나 곤욕스러웠는지를,

옆집 여자가 얼마나 상스러운지를, 최고점에 처물려있는 내  삼성전자주식은 어떻게 할 것인지,

오늘 친구를 만나느라 다녀온 동네가 우리동네랑 어떻게 다른지, 어디가 더 좋았는가를,

회사의 미친놈을 욕하면서 좋은 사람은 되지 못해도 저런 인간은 결코 되지 않겠다는 다짐을 얘기하다보면

비생산적이고 비효율적이며 비경제적인 이야기들로 채워지는 밤시간은 결국 남편과 나 같은 곳을 바라보며 같은 그림을 그리는,

결이 같은 사람으로 만들어주었고, 모난 우리 둘을 조금씩 서로에게 맞춰갈 수 있게 다듬어주었다.

잡담은 하룻밤사이에 쌓는 만리장성보다도 힘이 세다.


곁가지를 치며 몸피를 불려가는 잡담들을 통해 나는

비로소 커다란 방향성과 인생에 대한 큰 그림의

마지막 퍼즐을 맞출 수 있다.


잡담은 서로간의 간극을 좁혀가는 과정을 잉태하고 있는 씨앗이자,

마침내 나와 같은 생각을 하거나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는 지구상에서의  마지막 한 명을 찾는 그 거창한 여의 시작이다.

시작은 미미하지만,

그 끝은 창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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