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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rden Feb 07. 2023

약속

약속의 함정과 행복의 유예


사람은 평생에 걸쳐 쓸 총량의 에너지를 갖고 태어난다.

에너지총량의 법칙과 같은.

이 에너지를 시기별로 균등하게 안배할 것이냐,

어떤 한 시기에 몽땅 다 써버릴 것이냐,

그건 사람마다 다를 것인데 나의 경우, 후자였다.


나는 20대 후반에 새벽에는 수영, 밤늦게는 헬스를 했다.

수영엘 안 가는 날은 EBS의 귀가 트이는 영어랑 이지잉글리시를 들으면서 영어공부를 했고 헬스를 안 하는 날에는 요가를 했다.

새벽에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고,

어떤 날엔 새벽에 굶은 채로 집에서 나와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벤티 사이즈에 샷을 추가한 다음

도서관에서 아침부터 두근거리는 심장으로 신문을 읽으며 하루를 시작했다.

 두 눈 말똥거리는 두근거림이 저녁까지 지속된 적도 있다. 당시에는 그런 각성상태가 마치, 삶을 대하는 내 태도와 같다고 느껴졌고

하루하루가 어떠한 결과로 향하는 과정인 것만 같아서 그 하루를 허투루 보내는 것을 용납하지 못했던 것 같다.


내가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돌이켜보면 이 모든 게 '나 자신과의 싸움'이었는데,

그게 다 '약속'의 탈을 쓰고 있어서다.

'나 자신과의 약속'

이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약속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순간

당초 세웠던 계획을 수정하거나 늦추거나 혹은 취소하는 일은 마치 준엄한 약속을 깨는 것처럼 죄책감을 주고 열패감이 들게 한다. 그래서 그이는

무거운 몸과 마음을 질질 끌고도 자신과의 싸움에서

혈투를 벌이도록 유도하려고 악속이라는 탈을 씌운 게 틀림이 없다.


나름대로의 방식대로 치열한 20대를 보냈지만,

나의 30대는 눈부시거나 멋진 결과의 총체였다기보다는, 그저 20대의 하루하루가 모여 또 하루가 되었을 뿐인,

말하자면 1 X 1 =1 , 1은 아무리 곱해도 1일뿐인, 티끌은 아무리 모아도 티끌을 벗어나지 못하는,

그런 날들이 또 있을 뿐이었다.

그때, 내가 놓친 것은 대단한 결과가 아니라 내가 평생을 써야 하는 에너지를 이미 다 소진했다는 걸 간과한 사실이었을지 모른다.


그래서인지, 지금의 나는 무척 게으르고 무기력하고 무계획적이다.

언제든 나와의 싸움에서 장렬하고 처절하게 참패할 준비가 되어있다.

이미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만, 더 격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은, 그런 상태랄까.

더 이상은 나 자신과는 약속하고 싶지 않다. 아니,

나 자신과는 싸우고 싶지 않다. 그건 약속이 아니다. 약속의 탈을 쓴 혹사이자 싸움일 뿐.


아이를 둘이나 출산한 내가, 아랫배가 좀 나와있으면 어때,

시원한 맥주 한 캔을 한 다음날 얼굴이 좀 푸석푸석하면 어때,

오늘걱정은 내일모레에 하면 어때,

다음 달의 카드값은 그다음 달과 다다음달의 나에게 전가 좀 하면 어때.

그놈의 약속 좀 안 하면 어때, 약속 좀 어기면 어때.

그저 나에게는 한없이 관대하고 너그럽게, 그렇게 살고 싶다.

오늘의 행복을 내일로 모레로 유예하지 않고 오늘 누리면서 보내고 싶다.


대신, 이제는

내가 아니라 남과 겨뤄보고 싶다. 아무것도 안 하고 싶느라(?) 바빠서 아직 수강신청은 못했지만

꽃피는 봄이 오면 배드민턴을, 탁구를, 테니스를 꼭 배워보고 싶다.

헬스와 요가, 수영과 같은 안으로 수렴하는 나 자신과의 싸움 말고,

남과 겨뤄서 이기며 밖으로 발산하는 그런 스포츠에 도전해보고 싶다.

고갈된 에너지를 쥐어짜 내며 나 자신을 닦달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부대끼며 밖으로 분출되어 새롭게 고이기 시작하는 에너지를

내면으로 끌어들여 결국에는 나 자신을 벼릴 수 있는 단단한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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