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을 잊어. 미련을 버려.
그만 포기해. 미련을 버리란 말이야.
이제 좀 놔줘. 미련갖지마.
딴거해. 미련두지마.
미련은 그렇게 내가 한순간 쓰레기봉투에 담어서
분리수거하듯 버리는 게 아니다.
피부과에 가서 비립종을 제거해버리듯 떼는 게 아니다.
자존심, 사랑, 자신감. 동기부여, 욕심 그런 것들로 불붙어 뜨겁게 타오르던 열정이 실패로 돌아갔을때 그 마음은 한순간에 꺼버린다고 꺼지지 않는다. 불붙은 감정들은 실패와 화학작용을 일으켜 좌절, 오기, 슬픔, 집착, 체념 같은 불씨들과 찌꺼기들을 낳는다. 그것들은 마음속에서 자연연소하면서 활활 타오르다가 서서히 불씨가 작아져가고 마침내 소진되어버린다. 그 일련의 과정을 내가 당사자가 아닌 관찰자로 담담하게 바라볼 수 있을 때, 불씨가 정말 꺼진게 맞는지 뒤적거리며 확인해볼 수 있을 때, 비로소 미련은 사라진 것이다.
그렇게 미련은 어느 틈엔가 나에게 그런 열정이 있었나, 하고 내가 자각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저절로 떨어져나가는 것이지, 내가 매몰차게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버리려고 할수록 집요하게도 나를 따라다니다가 비로소 제풀에 꺾여 달아나는 것이지 어르고 달랜다고 순순히 물러나주지 않더라.
이상,
모든 걸 다 하얗게 태워 언젠가부터는
더이상 뒤돌아보지않는 고시낭인으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