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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rden May 30. 2024

첫경험

아직 오지 않은 나의 첫경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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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연히, 궁금한 이야기 Y 에 소개되었던 치매걸린 할아버지 이야기를 보게되었다. 80대인 할아버지는 돌아가신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매일 잊어, 눈을 뜨면 할머니를 찾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아픈 이별을 매일같이 새롭게 하는 내용이었다. 할아버지에게 어제의 일은 알콜솜의 알코올처럼 쉽게 날아가버리지만 할머니와 처음 만나고 사랑했던 시절은 지워지지 않고 머릿속에 각인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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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에는 대학교 과 동기모임을 했다. 10명이 넘는 인원이 졸업 후 중년이 되어 가장 대규모로  모였다. 중년이 된 그 친구들과 나는 20대의 초의 젊고 싱그러운 우리와 설렘과 열기로 들뜬 교정으로 빠르게 돌아갔다. 우리가 거닐던 학교 주변의 낮과 밤, 흔들리던 불빛들과 불안한 청춘의 나날들이 마치 어제일이었던 것처럼 생생했다. 그저, 우리는 중년의 쭈글해져가는 몸안에 갇힌 아직도 청춘인, 달뜬 영혼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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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사를 한 나는 짐정리에, 두 아이의 학원, 하루 일과와 집안의 크고작은 일들을 챙기면서 내 기억력이 두손 가득 쥔 백사장의 모래같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아무리 그러쥐어도 쉴새없이 술술 빠져나가는 모래처럼 쉬이 잊고, 까먹고, 틀린다. 20대에 처음만난 친구들, 입술에 닿던 소주의 씁쓸하고 달큰하던 느낌, 첫 남자친구와 같은 기억들은 생생한데 어제의 일은 들은 적도 계획한 적도 없던 것처럼 아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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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한 번 들은 건 절대 잊지 않는 일곱살 난 우리 둘째. 아이들의 하루와 시간은 무척이나 농밀하게 흐른다는 생각도 나의 기억력에 대비되며 자주한다. 처음보는 것, 처음하는 것, 처음 배우는 것. 처음 투성이인 아이들의 하루는 매일이 얼마나 신나고 궁금한 것들 천지일까. 그러면서 이제 첫경험이 설레는 아이들의 하루보다, 어제의 일이 아닌 아득한 옛날의 일이 더 선명한 내가 할아버지의 시계에 가까워지는 것 같아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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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삶의 낙’ 은 내 지상최대의 가치이자 관심사이다. 지난해 시작한 골프로 나는 새로운 세계를 느꼈다. 여전히 내가 가슴뛸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게, 그런 취미생활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이 못내 설레었고, 나이들면서 나를 움직이게 하는 힘과 에너지가 그런 데서 온다는 사실을 알았다. 마흔이 넘는 해동안 함께해온 내 육체와 정신에 대해 아직도 새롭게 느끼고 경험할 수 있다는 것, 여전히 나에게 ‘첫경험’ 이라는 미지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조만간에는 잠깐 배우다가 그만두었던 민화에 다시 발을 들여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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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가슴뛰게 했던 첫경험은 무엇이었습니까, 또 당신을 가슴뛰게 할 첫경험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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