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한 단어 22-365
약간 흐릿해지면서 사라지는
어설픈 거리
비몽사몽같은 잠에서
아련한 무엇인가를 떠올려보는 상태.
1.
‘해설피’
정지용의 시 ‘향수’의 한 구절에 나오는 말이다.
뜻을 알지 못해 한참 논쟁이 오갔던 표현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말에서 ‘구슬프다’를,
또 다른 사람들은 ‘무념무상하듯 한’ 모습을
떠올리고 싶어한다.
대략 ‘해+설핏하다’는 말로 생각이 모아져
해가 설핏하게 지는 모습,
해가 흐릿해지며 석양을 물들게 하는 모습
2.
‘설핏하다’
밝은 빛이 약해져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이다.
엮어둔 짚이 촘촘하지 못하고 사이가 벌어진 모양이다.
둘 사이의 거리가 조금씩 멀어져 듬성듬성해지는 상황이다.
풋잠이나 얇은 잠에 빠져드는 상황이다.
3.
‘설핏하다’
선명한 기억이
흐릿해져 조금씩 사라지는 모습이다.
살다보면 가끔 이런 희미하게 스러지는 순간이
그리울 때가 있다.
무엇이든 확실해야 하고
어떤 것이든 확고해야 하며
똑부러지게 분명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다.
하지만
무엇이든 설핏해지고
어떤 것이든 설핏해지며
설핏하고 설핏해지는 사실로도 좋은
그런 상태가 필요할 때가 있다.
그것은 그리움일지 모른다.
4.
여름이 희미하게 물러가는 듯하다.
지난한 계절이 맥없이 흘러가는 모습이 애처롭다.
광장의 시대도 어쩔 수 없이,
흘러갈 것이며
그 그리움으로만 살아내야할 것이다.
그러니
흐릿해지는 계절 아쉬워말고
그 설핏한 촉감으로 느긋하게
나의 시간을 떠나보내자.
가을 낙엽 흩날리기 전에 날려보내자.
새 시간이 바짝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