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한 단어 27-365
‘고통을 잘 참고 담아 둔다’
‘분노를 잘 눌러 가라앉힌다.’
1.
수많은 치료-요법(thérapie 테라피)이 삶을 지탱해주는 시대.
테라피가 희소했던 시대보다
나은 세상이라고 보기도 어려운 시대.
삶이 번성할수록 테라피도 초세밀해지는 시대.
삶을 안과 겉으로 맞지탱하려는 시대.
그렇다고 해서 삶을 위협하는 요소를
사라지게 할 수도 없는 시대,
분명 쉽지 않은 시대를 산다.
2.
‘안추르다’
단어만 보더라도 ‘안+추르다’가 연상되지 않을까.
‘안’이라면 ‘속’일 테고
‘추르다’라면 ‘정돈하다’가 떠오를 것이다.
그러니 ‘안추르다’는 ‘속을 정돈하다’에 부합한다.
사전에 실린 뜻만 보자면
그저 가볍게 연상되는 이런 뜻과 크게 다르지 않다.
3.
‘안추르다’
속 썩이는 일이 한둘이 아니고
견뎌내야 하는 속앓이가 적지 않다.
마음에 담아두어서 해결될 일
사라질 일이 있을까마는
그런대로 우격다짐으로 속 깊이 묻어둘 일이라면
그나마 다행이다.
아예 마음에 담아두어야만 사라질 일은
만들지 않는다면 더욱 좋겠다.
4.
하지만
살아가는 일이
그저 일어나는 대로 받아들이고
필요 없는 것은 버릴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니 나는
하루하루 모든 이들이 속앓이하는 삶이 없길 바라면서
혹시라도 삭혀야 하는 일이 있다면,
‘먹는 테라피’, ‘쓰는 테라피’, ‘걷는 테라티’, ‘노는 테라피’에서
잠시 비켜서도 좋겠다.
그저 걷고, 먹고, 쓰고, 놀면서
또 할 수 있다면 분노를 담아두지 말고
쏟아내거나 흘려버리면 좋겠다.
가끔 억지로 ‘안추르한’ 일에
‘무시 테라피’도 좋지 않을까 싶다.